[김인권의 트렌드 인사이트] ‘카츠(活)’, 일본 움직이는 행동의 경제

2026. 1. 1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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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권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일본에서는 수년 전부터 묘한 단어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어떤 행동이든 끝에 ‘카츠’(活)를 붙인다. 취업 준비는 취활(就活), 결혼 준비는 혼활(婚活),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활동은 종활(終活)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접미사가 이제 더 이상 인생의 중대 이벤트에만 붙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요즘 일본 사회에서는 정말 사소한 행동까지 ‘활동’으로 승격되며 하나의 트렌드로 소비된다.

가장 대중적인 사례는 ‘포이카츠’다. 포인트(point)를 모으는 활동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이미 일본인의 일상 언어가 됐다. 신용카드 결제, QR 결제, 설문 응답, 걷기 앱, 심지어 냉장고 정리 앱까지 모두 포인트 적립과 연결된다.

포이카츠 전문 앱과 잡지, 유튜브 채널이 등장했고 ‘월 1만엔은 포이카츠로 만든다’는 이야기도 이제는 생활 팁처럼 들린다. 소비는 더 이상 ‘쓰는 행위’가 아니라 ‘획득하는 행위’로 재정의되고 있다.

카츠의 확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걷는 행위를 콘텐츠로 만든 ‘아루카츠’, 혼자 밥 먹는 시간을 긍정하는 ‘히토리카츠’, 사우나를 즐기는 ‘사카츠’, 책 읽기를 습관화하는 토쿠쇼카츠, 사진 찍기를 엽서·포스터·인테리어 등으로 활용·관리하고 커뮤니티에 공유하는 ‘샤신카츠’까지 등장했다. 공통점은 단순하다. 원래 혼자 하던 행동을 ‘의식적인 활동’으로 끌어올리고 기록·공유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일본 특유의 유머 감각이 빛난다. 도시락을 싸 먹는 행위를 콘텐츠화한 ‘벤토카츠’, 냉동식품만으로 한 달을 버텨보는 ‘레이토카츠’, 그리고 압권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목표로 한 ‘나니모시나이카츠’다.


SNS에는 소파 사진 한 장과 함께 “오늘도 아무것도 안 함, 성공”이라는 인증이 올라온다. 성실함마저 잠시 쉬어가도 된다는 일본식 자기 합리화이자 위트다.

이 현상은 일본 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맞닿아 있다. 장기 저성장, 실질임금 정체,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사람들은 거창한 성공보다 ‘통제 가능한 작은 성취’를 원한다. 카츠는 그 욕망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하루 만 보 걷기, 한 달 포인트 목표 달성, 주 3회 사우나 방문처럼 목표는 작고 성과는 즉각적이다. 성취감은 숫자와 뱃지, 랭킹으로 시각화된다. 실패해도 부담이 적고, 성공하면 기분이 좋다.

기업들은 이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금융사와 유통사는 포이카츠를 중심으로 결제 생태계를 확장했고, 지자체는 걷기 카츠 앱을 통해 주민 건강 관리와 지역 소비를 동시에 유도한다. 출판업계는 ‘OO活 입문’ 시리즈를 쏟아내고, 광고 문구는 더 이상 “이 제품을 사라”가 아니라 “이 활동을 시작하라”고 말한다. 소비는 물건 중심에서 행동 중심으로 이동 중이다.

카츠가 흥미로운 이유는 ‘노력’을 재포장하는 방식에 있다. 일본 사회에서 노력은 오랫동안 의무이자 부담이었다. 그러나 카츠는 이를 게임으로 바꾼다. 힘들면 그만두면 되고, 잘하면 스스로를 칭찬하면 된다. 강요가 아닌 선택, 경쟁이 아닌 기록 중심의 문화다. 이 느슨함이 오히려 참여의 문턱을 낮춘다.

이 흐름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역시 취업, 재테크, 자기계발 피로가 누적된 사회다. 그러나 많은 활동이 여전히 성과 압박과 비교 경쟁에 묶여 있다.

일본식 카츠 문화는 다른 길을 보여준다. 행동을 잘게 쪼개고, 의미를 붙이고, 성과를 가볍게 즐기는 방식이다. 포인트, 헬스케어, 지역 서비스, 콘텐츠 플랫폼을 결합한 일본의 실험은 한국 기업과 지자체에도 충분히 참고할 만하다.

결국 카츠의 본질은 유행어가 아니다. 불확실한 시대에 개인이 스스로 삶의 리듬을 회복하려는 시도다. 오늘도 일본 어딘가에서는 새로운 ‘OO활’이 태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웃음을 동반한 문화로 자리 잡은 이유는 분명하다.

작지만 확실한 만족, 그리고 ‘나는 오늘도 무언가를 했다’는 즐거운 성취감, 이 사소한 확신이 일본 사회의 소비와 일상을 조용히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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