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후 뜰 기술 선점, 대학이 앞장설 것"
특정전공 벗어난 초학제 실험
교수 100명·실험실 100개서
뇌·AI물질·에너지 등 연구
1만㎡ '넥스트랩' 설립 추진
日선 '평생연구' 존경받는데
한국선 기초과학 전공생 향해
"힘들고 돈 안되는데 왜 하냐"
미래 안보이니 의대쏠림 심화

"일본에서는 평생 연구에 매진한 과학자가 존경받고 노벨상도 거머쥐지만, 한국에서는 기초과학 전공생이 입학하기 전부터 '왜 그 수능 점수로 그걸 전공하냐'는 말을 듣습니다."
유재준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64)은 대한민국 과학이 처한 위기를 '비전의 부재'로 규정했다. 그는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사회에서 알아주지 않으면 고민하게 되고 이탈하게 된다"며 "이 길을 걸으려는 친구들에게 비전을, 사회의 공감대를 심어주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자연과학대 설립 50주년을 맞아 향후 50년의 과제로 학문 간 칸막이를 허무는 초학제 실험 '넥스트 랩(NEXST Lab)' '소버린 사이언스(과학 주권)' 확보 등을 내건 이유다.
소버린 사이언스란 한 나라가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연구 주제·데이터·기술·규칙을 스스로 정하고 키우는 과학 연구 체계를 말한다. 다른 데에서 개발된 기술을 복제·추종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자체 과학 기반을 확보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인공지능(AI) 시대에 이르기까지 선두 국가·기업을 빠르게 쫓아가는 전략을 썼다면, 이제는 '이 기술은 한국이 앞서간다'는 가시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목표다. 유 학장은 "과학엔 국경이 없다지만, 과학자에겐 국적이 있고 연구의 중심지도 존재한다"며 "우리가 중심이 돼야 인재 유출을 막고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서울대 자연과학대가 제시한 초학제 실험이 넥스트 랩이다. 유 학장은 "지금 대학은 10~20년 전 지식을 가르치고 있지만 앞으로는 미래 10~20년 뒤에 떠오를 기술을 선점해야 한다"며 "학제 칸막이를 없애고 학문적 기반을 넓게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넥스트 랩은 미국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연구개발센터(FFRDC)를 벤치마킹해 정부·기업과 협력하는 공동 연구의 장이다. 교수 100명, 실험실 100개가 모여 10개 이상의 의제를 논의하는 1만㎡ 규모로 구상하고 있다.
유 학장은 "지식을 전수하는 단과대별 대학 시스템은 1970~1980년대에 빠르게 인재를 양성해냈지만, 새로운 시대에는 전환이 필요하다"며 "반발을 최소화하면서도 유연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넥스트 랩이 새로운 교육·연구 제도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실화의 첫발도 뗐다. 서울대 수학과 83학번이자 참고서 '쎈수학' 등을 만든 홍범준 좋은책신사고 대표가 지난 13일 1000억원을 쾌척하며 시설 설립과 석학 초빙·인건비 등 재원이 마련됐다.
이곳에서 다루게 될 향후 유망 연구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뇌, AI물질, 바이오·에너지, 기후 등 과학이 풀지 못한 문제가 많다. 이들 분야를 키우고 지원하는 건 정부 몫이다. 유 학장은 "당장 성과가 없어도 계속 투자해야 답을 찾을 수 있고 설령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이곳에서 길러진 인재가 산업 분야로 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서 핵폭탄을 개발해 승전국이 돼본 경험을 토대로 끊임없이 과학기술에 투자하고 있죠. 경제 선진국에서 과학 선진국으로, 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사회로 발전하려면 이런 수십 년 단위의 장기적인 투자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학부생도 비전을 갖고 의대 진학이 아닌, 과학 연구를 택할 수 있겠죠."
한편 최근 대학가를 휩쓴 AI 커닝 문제에 대해선 "학생들에게 AI를 사용하지 말라고 할 게 아니라 현명하게 쓰도록 가르치고 새로운 평가 방식을 도입해야 하는 문제"라고 역설했다. 유 학장은 "인간 지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는 AI를 내 몸과 마음처럼 잘 활용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이를 통해 증강된 지성인을 길러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이렇게 하기 위해선 교수들부터 바뀌고 정책도 개선돼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고 짚었다.
[정주원 기자 / 사진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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