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아의 금쏭달쏭] "토익도 아닌데 950점 경쟁"… 점점 심해지는 신용점수 인플레?

유진아 2026. 1. 14.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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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AI가 생성한 이미지. [구글 제미나이]


#4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한 은행에서 신용대출 상담을 받았다가 적잖이 당황했다. 상담 직원은 최근 은행의 대출 기준이 크게 올라 신용점수 910점으는 한도 산정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A씨는 "신용점수 관리도 꾸준히 해왔고 연체도 없는데 기준이 이렇게 높아졌는지 몰랐다"며 "900점이 넘는데도 높은 신용점수가 아니라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최근 A씨처럼 신용점수가 900점대 초반까지 올랐는데도 은행 대출이 막히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신용점수가 전반적으로 상단에 몰리는 이른바 '신용점수 인플레이션'이 확산되면서, 과거 기준으로는 충분했던 점수대가 더 이상 대출을 보장하지 못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 대출 차주의 평균 신용점수가 빠르게 올라가면서 대출 기준과 소비자 체감 사이의 간극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공시월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신규 취급한 분할상환식 주택담보대출 차주의 평균 코리아크레딧뷰로(KCB) 신용점수는 950.6점으로 집계됐다. 평균 신용점수는 3월 935.2점에서 4월 937.8점, 5월 942.6점, 6월 945.6점, 7월 947.8점으로 매달 올랐고, 8월에는 950점을 넘어선 뒤 9·10·11월에도 950점대를 유지했다. 2022년 말(905점)과 비교하면 3년 새 45점 이상 상승한 수치다.

일반 신용대출 차주의 평균 신용점수 또한 2022년말 899.4점에서 지난해 11월 기준 921.6점으로 올랐다. 특히 은행권에서 가장 보수적으로 심사하는 신용한도대출(마이너스통장)은 차주 평균 신용점수가 960점에 육박했다.

신용점수는 개인이 빌린 돈을 약정된 기간 내에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을 점수로 수치화한 지표다. 개인신용평가는 1점부터 1000점까지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이뤄지며, 점수가 높을수록 대출 금리와 한도 산정에서 유리하게 작용한다. KCB 기준으로는 1000점 만점에서 900점 이상이 1등급(고신용자)에 해당한다. 하지만 현재는 930~940점대 초반 초우량차주마저 대출 승인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신용점수 인플레이션이 심화된 배경으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어진 대규모 신용사면 정책이 꼽힌다. 신용사면은 신용정보에 기록된 연체·채무불이행 등의 부정적 이력을 삭제해 차주가 빠르게 금융거래에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통상 연체 이력은 최대 5년간 신용평가에 반영되지만, 신용사면을 받으면 이러한 신용 제약에서 벗어나게 된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 약 250만명을 대상으로 신용사면을 실시했고, 윤석열 정부도 2024년 약 290만명의 연체 기록을 삭제했다. 여기에 더해 이재명 정부는 370만명 규모의 신용회복 지원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연체 이력이 신용평가에 반영되는 범위가 잇따라 축소되면서 신용점수가 하락할 요인이 구조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금융 플랫폼과 핀테크 서비스 확산도 영향을 미쳤다. 신용점수 조회와 관리가 일상화되면서 소액 대출과 상환을 반복해 점수를 끌어올리는 사례가 늘었고, 통신비·공과금 납부 이력 등 비금융 정보까지 신용평가에 반영되면서 전반적인 점수 수준이 높아졌다. 점수가 내려가기보다는 유지되거나 오르기 쉬운 구조가 자리 잡은 셈이다.

신용점수가 상향 평준화되면서 차주 간 신용도를 가려내는 변별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신용점수가 상단에 몰릴수록 점수만으로 차주의 상환 능력을 가려내기 어려워졌고, 은행들은 신용평가사의 점수를 대출 심사의 절대 기준이 아니라 컷오프 지표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일정 점수 이상에서는 소득 수준, 직장 안정성, 기존 대출 규모, 내부 신용평가모형 결과가 승인 여부와 한도를 좌우한다.

이에 과거에는 고신용자로 분류돼 은행 대출이 가능했던 차주들조차 점수를 유지하거나 오히려 높였음에도 대출에서 밀려나, 금리가 높은 2금융권으로 이동하거나 필요한 시점에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대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신용자가 대출 승인을 거절당하는 사례가 늘어나면 신용점수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며 "이는 금융시스템 전반에 대한 신뢰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진아 기자 gnyu4@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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