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그라운드를 떠나지 않았다…‘야구 장인’ 롯데 김민재 코치, 별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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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가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를 떠나보냈다.
롯데 김민재 코치가 14일 오전, 담도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박진만과 함께 선 유격수 자리에서, 한국 야구의 '전승 신화'를 완성한 이가 김민재였다.
"선수로도 우승해봤고, 코치로도 우승했다. 다들 코치 힘들다고 하지만, 현장에 있으면 가장 행복한 것 아닌가. 난 여전히 야구가 좋다"며 웃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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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WBC 4강,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신화의 주역
담도암 투병 속에서도 현장을 지킨 ‘야구 장인’

[스포츠서울 | 김민규 기자] 한국 야구가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를 떠나보냈다. 롯데 김민재 코치가 14일 오전, 담도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53세. 지난해 마무리캠프 이후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지만, 그는 끝까지 그라운드를 놓지 않았다. 진짜 ‘야구 장인’이었다.
김민재 코치는 부산중앙초–경남중–부산공고를 거쳐 1991년 고졸 신인으로 롯데에 입단했다. 이듬해 1992년, 정규시즌 83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로 이름을 남겼다. 안정적인 수비로 그라운드를 지킨 유격수, 부산 출신 프랜차이즈 스타로 11시즌 동안 롯데의 중심에 섰다.

그의 야구는 늘 기본과 안정이었다. 리그 정상급의 핸들링과 풋워크로 평가받았고, 그 신뢰는 대표팀에서도 이어졌다.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신화의 한 축이었고,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진만과 함께 선 유격수 자리에서, 한국 야구의 ‘전승 신화’를 완성한 이가 김민재였다.
2002년 SK(현 SSG), 2006년 한화를 거치며 두 차례 프리에이전트(FA)를 경험했다. 꾸준함과 자기관리의 상징이었다. 2009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은 뒤에도 그는 야구 곁을 떠나지 않았다.

2010년 한화 코치로 지도자의 길에 들어서 KT 1군 수비코치, 두산 1군 작전코치, SSG 1군 수석코치를 거쳤다. 두산과 SSG에서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달성했다. 그리고 2023년, 친정 롯데로 돌아와 수석코치로 현장을 지켰다. 올해는 롯데 드림팀(3군) 수석코치를 맡을 예정이었다.
투병 중에도 그는 현장을 지켰다. 마지막까지 선수 곁에 있었고, 마지막까지 야구를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의 부재가 더 크게 느껴진다.
"선수로도 우승해봤고, 코치로도 우승했다. 다들 코치 힘들다고 하지만, 현장에 있으면 가장 행복한 것 아닌가. 난 여전히 야구가 좋다"며 웃은 사람이다. 이제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
빈소는 부산시민장례식장 402호실. 발인은 16일 오전 11시, 장지는 영락공원이다. km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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