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껍질을 벗기면 남는 빈약한 상상력…그럼에도 아름다운 '보이' [씨네:리포트]

강지호 2026. 1. 13.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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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 기사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TV리포트=강지호 기자] 화려한 색감과 독특한 노래가 새로운 디스토피아로 향하는 문을 연다. 감각적인 미장센과 독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그려냈지만 서사적 알맹이는 아쉬운 영화 '보이'(이상덕 감독·영화특별시SMC)다.

오는 14일 개봉하는 영화 '보이'는 조병규, 유인수, 지니, 서인국까지 신선하고 감각적인 캐스팅과 함께 근미래 가상의 도시 포구 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근미래 디스토피아로, 단 한 번의 사랑이 모든 것을 뒤흔들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네온-느와르다. 제35회 스페인 판씨네 영화제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된 뒤 국내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영화 '보이'는 개봉 전부터 파격적인 캐스팅으로 화제가 됐다. 주연 배우 로한으로 출연하는 조병규는 2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를 알렸다. 학교 폭력 논란에 휩싸였던 그는 지난 11월 폭로자를 상대로 한 40억 손배소에서 패소한 후 1심 판결에 불복에 항소를 진행하고 있다. 또 다른 주연인 그룹 엔믹스 출신 지니는 이번 작품을 통해 첫 연기에 도전함과 동시에 스크린에 데뷔하게 됐다.

▲ 감각적인 디스토피아 '텍사스 온천'…네온빛 상상력의 출발

'보이'는 네온빛 상상력에서 출발해 감각적인 디스토피아 '텍사스 온천'을 만들어 냈다.

독특한 리듬의 음악과 함께 '텍사스 온천' 차가 비탈길을 달리며 막을 올린 영화는 시작부터 색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조병규는 이전 작들과는 다른 영화적 서사를 가진 얼굴로 돌아왔다. 든든한 파트너 유인수는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그의 곁에서 함께한다.

세상의 끝, 버려진 사람들이 모여든 '텍사스 온천'은 재미있는 미장센이 가득한 공간이다. 찜질복은 유니폼이 되고, 익숙하지만 전혀 다른 모습으로 꾸며진 건물 내부는 미술팀의 정성이 엿보인다.

의상도 감각적이다. 극 중 유인수가 맡은 교한과 조병규가 맡은 로한의 '애정'을 상징하는 진주 목걸이, 지니가 맡은 제인의 모습까지, 어느 장면에서 영화를 멈춰도 화보 같은 연출과 구도를 자랑한다.

특히 모자장수 역으로 분해 카우보이 모자, 텍사스 서부극에 나올 것 같은 의상을 선보이는 서인국은 독특한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해 내며 시선을 끈다. 그의 천막 안에 함께하는 백마와 자개장은 동서양의 미학을 함께 보여주는 재밌는 요소다.

비아이(B.I)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만큼 독특하고 젊은 감각의 음악도 큰 포인트다.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느껴지는 '보이'에서 강렬한 테크노 사운드는 영화의 색을 결정한다.

▲ 영화와 뮤직비디오 사이…멈춰버린 이상덕 감독의 세계관

디스토피아 팬들의 입맛을 당기게 하는 매력적인 설정을 가지고 있는 '보이'는 멈춰버린 세계관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예술 영화 같은 미장센과 독특한 연출로 베이스 리듬에 맞춰 포문을 연 '보이'는 이야기 대신 이미지가 각인되는 영화다. 디스토피아 장르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세계관은 더 뻗어나가지 못했고 그로 인해 이야기는 빈약해졌다.

앞서 진행된 간담회 당시 이상덕 감독은 '보이'의 출발을 설명하며 "큰 이야기를 쓰겠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로한과 제인이 뛰어가는 이미지에서 출발한 '보이'는 서사의 확장 과정을 거쳤지만 세계관에 대한 명확한 설정이 없어 전개를 따라가는 관객의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운다.

조병규, 유인수, 서인국의 열연은 뛰어났으나 이 때문에 여자 주인공인 지니의 아쉬운 연기력도 부각됐다. 연기에 처음 도전한 만큼 내로라하는 배우들 사이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았겠지만 매력적이고 새로운 마스크도 이를 가리기에는 부족했다.

트와이스, 헤이즈, 볼빨간 사춘기 등 다양한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던 이상덕 감독의 특징은 분명 '보이'가 가진 매력이다. 어느 장면에서 영화를 멈춰도 아름답고, 빛을 쓰는 방식, 배우들의 얼굴을 담아내는 카메라의 시선까지도 참 어여쁘다.

하지만 '텍사스 온천'이라는 디스토피아 속 보여지는 노동의 구조, '망한 세상'이라는 설정에도 사용할 수 있는 휴대전화, 알 수 없는 화폐 개념, 티켓의 역할, 암시만이 가득한 인물 관계, 시장이나 알 수 없는 병 등 관객이 자연스럽게 가지게 될 의문 중 영화를 보고 풀리는 것은 없다.

아름다운 미장센과 독특한 음악은 '보이'를 감싸는 화려한 포장지가 됐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풀어본 포장지 속에는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탄탄한 세계관이 없기 때문에 90분이라는 러닝타임은 느낌표로 시작해 물음표로 끝이 난다.

그럼에도 상상을 덧붙이길 좋아한다면,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꾸며진 디스토피아가 보고 싶다면 '보이'가 가진 매력이 긍정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신이 믿는 사랑만이 진짜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이야기'라는 캐릭터 자체의 이야기에 집중한다면 영화를 또 다른 맛으로 감상할 수 있을 듯하다. 폭력적으로 이어지는 사랑의 방식과 "형이 준 건 다 가짜야"라는 로한의 대사는 결국 '보이'가 디스토피아적 설정보다는 그 안의 인간에게 집중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취향은 갈리겠지만 이상덕 감독의 뚜렷한 특징은 분명 누군가에게는 미식일 듯하다. 앞으로 그가 보여줄 더 풍부해질 상상력에 기대를 걸어본다.

1월 14일 개봉. 러닝타임 90분. 15세 이상 관람가.

마지막 한마디. 모자장수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강지호 기자 khj2@tvreport.co.kr / 사진= 영화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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