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이 싫은’ 수의사가 25년간 동물원에 남아 한 일

김지숙 기자 2026. 1. 1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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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청주동물원 김정호 진료사육팀장 책 ‘아프다고…’ 출간
“방치된 동물의 고통 줄이는 것이 수의사의 일”
지난 2023년 실내동물원에 살던 사자 ‘바람이’를 구조하는데 큰 역할을 한 김정호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이 최근 책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를 출간했다. 청주동물원 제공

충북 청주시 공영동물원인 ‘청주동물원’은 여느 동물원과 다르다. 동물원이지만 정작 동물을 보기 어렵다. 사육장은 산비탈에 있고, 동물원이면 흔히 들려오는 활기찬 음악도 없다. 대신 산새 소리가 있고 멀찍이서 편히 사람을 바라보는 산양·염소가 산다. 수달사에는 수달을 배려해달란 취지의 ‘수달 기상 예상 시간 오후 2시’라는 안내문이, 포토 포인트(사진 촬영 지점)에는 우리에 갇힌 동물의 심정을 겪어보란 뜻으로 ‘호모사피엔스 사육장’이 마련돼 있다.

비록 “사람에게 불친절한 동물원”이지만, 이곳은 국내 어느 곳보다 ‘동물을 위한 동물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24년 국내 첫 거점동물원(정부가 지정한 권역별 모범·중심 동물원)으로 지정된 이곳에서 지난 25년간 위기에 처한 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해온 사람이 있다. ‘수의사계의 이국종’이라 불리는 김정호 진료사육팀장(수의사·52)이다. 자신을 “동물원이 싫은 수의사”라 소개해 온 그가 최근 책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를 펴냈다.

책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김 팀장은 13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 책을 “현장의 경험을 기록한 업무 일지”라 소개했다. 그의 설명처럼 책은 전국에서 호랑이 사육장이 가장 좁았던 산 중턱 동물원이 야생동물보호소(생추어리)로 거듭나는 과정의 변화와 노력을 빼곡히 담았다.

지난 2021년 호랑이사 확장·이사 당시 마취 작업 중인 김정호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 청주동물원 제공

청주동물원은 과거 다른 동물원처럼 새 먹이주기 체험을 하고 방문객을 늘리려 희귀동물 전시를 했다. 하지만 2018년 웅담 채취용 반달곰 세 마리를 데려오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점차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야생동물과 토종 동물을 보호하는 공간이 됐다. “언젠가 동물원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당장 없애기는 힘들”기 때문에 “남은 동물들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김 팀장의 뜻이 통한 덕이다.

지난 2023년 여름,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갈비사자 바람이’가 대표적이다.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경남 김해의 한 실내동물원에서 앙상한 갈비뼈를 드러낸 채 방치돼 갈비사자라 불렸던 바람이는 청주동물원으로 구조된 뒤 평온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바람이 뿐이 아니다. 반려동물로 길러지다 버려진 거북이, 사람 손에 자라나 고양이 간식을 좋아하게 된 사자, 야생성을 잃은 산양과 장애로 야생에서 살아가지 못하는 독수리가 청주동물원의 ‘식구’다.

그는 자기 일을 “방치된 동물의 고통을 줄여주는 일, 동물이 살아있는 동안 덜 불편하게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책은 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무던히 애쓴 수의사의 기록이다. 건강검진을 위해 마취했던 여우가 갑작스레 사망한 날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미련스럽게도 통증을 표현하지 않는 동물들!” 특히 온몸에 종양이 퍼져나가면서도 죽을 때까지 고통을 감췄던 사자 ‘먹보’는 지금까지도 “마음을 먹먹하게 하는 동물“ 중 하나다. 그가 동물들에게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다”고 되뇌는 이유다.

이런 경험들은 ‘움직이는 진료실’과 ‘야생동물 공개 건강검진’ 등 청주동물원만의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계기가 됐다. 움직이는 진료실은 트레일러 차량에 마취 및 응급 장비를 꾸려 치료가 시급한 동물을 찾아 나서는 의료지원사업이다. 거점동물원으로서 충남·강원지역 동물원 동물들의 건강검진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천연기념물인 산양과 황새가 다치거나 치료가 필요할 때 “야생으로 출동”한다.

김정호 청주동물원 진료사육 팀장과 아기 고라니. 청주동물원 제공

다른 동물원의 ‘먹이주기’·‘만지기’ 체험을 대체할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생각해낸 건 ‘공개 건강검진’이다. 책을 쓰던 당시 아이디어 수준이었던 공개검진은 지난해 4차례 진행했다. 김 팀장은 “재미없어하시던 분도 계셨지만, 뱀의 심장 소리를 공개한 프로그램은 매우 흥미로워했다”며 “결국 ‘뱀이나 사람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같은 생명’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런 공감을 점차 늘려가면 동물을 이용하는 체험이 결국 사라질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다만 그는 동물을 돌보는 일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한 일이라고 했다. “많은 애를 써야 하고, 기쁨은 잠깐이며, 오래 슬프고 종종 그립다”고 한다. 그런데도 동물 곁을 지키는 이유는 뭘까. “동물이 살 만하다면 그곳은 사람도 충분히 살만한 곳일 것”이기 때문이고, “소외된 동물의 보호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로 확장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늘 ‘시골마을 수의사’가 꿈이라 말하는 그는 이렇게도 썼다. “동물을 위해 하는 일이라지만 사실은 나를 위한 일이다. 동물이 귀하게 대접받으면 그 동물을 다루는 나의 일도 근사해지니 말이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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