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가 다른 여성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파도처럼 밀려든 마음들 [플랫]
지난해 연말 공개된 <여성은 우울을 먹고 자란다> 기획은 우울증을 겪어온 청년 여성 28명의 목소리를 통해, 개인의 생애와 한국 사회의 민낯을 ‘우울’이라는 키워드로 파고든 기획이었습니다.
타고난 기질, 유전적 요인, 가정폭력, 성폭력, 성차별 등 사회적 요인은 청년 여성들의 마음에 우울의 균열을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인터뷰 참가자들은 “여성들과의 연대 덕분에 살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언젠가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겠다고도 전했습니다.
기획이 공개된 후, 플랫 입주자님들도 “살아 있길 잘했다!!!” “연말연시 우울했는데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여자들 새해 복 많이 챙깁시다” “분명 이 기사로부터 뭔가를 얻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등 많은 공감과 지지를 해 주셨는데요. <여성은 우울을 먹고 자란다> 기획·연재한 우혜림 기자의 취재후기를 ‘경향신문 여성서사 아카이브 플랫’이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플랫 입주자 여러분.
<여성은 우울을 먹고 자란다>를 기획·연재한 경향신문 우혜림 기자입니다.
[여성은 우울을 먹고 자란다]“여자가 왜”,“딸이니까”…가정·사회·구조가 만든 ‘조용한 학살’
이 기획은 시작부터 창대했습니다,라는 무용담을 늘어놓고 싶습니다만 변변찮은 고백으로 시작해야겠습니다. 이 기획은 순전한 ‘운’에서 출발했습니다.
일간지 기자는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매일매일 기사 거리를 갈구하는 존재입니다. 지난 9월 10일도 그러한 날이었지요. 그날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었습니다. 아이디어를 찾던 중 한국 젊은 여성의 자살률이 전 세계 1위라는 보도를 접했습니다. 여성의 우울증 비율이 높다는 것은 익히 알던 사실이었고, 팬데믹 시기 잠깐 보도되기도 했었죠. 그 이후에도 여성의 우울증 비율은 높아졌지만, 이를 주목하는 기사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새롭지 않은’ 그 통계들을 보면서, 문득 지난 탄핵 광장에서 응원봉을 들고 나온 여성들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을 향해 가장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들이 왜 가장 조용하게 사라지고 있을까?’ 호기심에 불과한 의문을 채우기 위해 인터뷰이를 찾았고, 이에 응해준 한 분께서 엑스(X·옛 트위터)에 홍보하면 이를 공유해 주겠다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통계 너머의 목소리를 들려달라”는 게시글을 올린 이유였습니다.

메일로, 쪽지로, 문자로, 여성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곧 답장을 주겠다는 답장조차 할 수 없어 새벽까지 휴대폰을 붙들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파도처럼 밀려 나온 여성들의 존재가 제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우리의 이야기가 필요하다’고요. 안일한 마음으로 구상한 하루 치 기사는 그렇게 몇 달 치의 기획이 되었습니다.
한 가지 짚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여성의 우울증 비율은 남성의 2배지만, 자살률은 남성이 여성의 2배입니다. 기사의 댓글에서도 이 통계를 가져오며 ‘왜 남자는 얘기하지 않느냐’고 묻는 분들이 계셨는데요.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보다 높은 것은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자살의 방식이 다소 극단적이라는 점이 이유로 분석되곤 했지요. 하지만 젊은 여성의 자살률이 급증하는 것은 한국만의 현상입니다. 우울증과 같은 심리적 요인이 자살의 원인으로 지목된 점도 여성의 특징이지요. 남성의 경우 실직 등 경제적 요인이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남성의 자살이 ‘사건’이라면, 여성의 자살은 ‘서사’인 셈입니다. 여성들이 우울해지는 삶의 ‘과정’을 따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입니다.
이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설득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팀 내부에서도 여러 의견이 오갔는데요. 젊은 남성을 함께 다루자는 의견도, 모든 세대를 분석하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공평성’을 맞추기 위해서요.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달을 끙끙 앓는데 한 선배가 말씀해 주셨어요. “여성의 이야기를 하려면 여성을 다루는 이유를 설명해야지 남성을 다루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기획을 시작할 용기를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처음 기획을 구상할 땐 우울의 원인에 따라 인터뷰이들을 분류하려 했습니다. ‘이 사람은 이래서 우울하다’고 규정해 유형화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울의 원인은 복합적이었고, 그런 식의 단정은 위험할 뿐더러 정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생애 과정을 보여 주기로 했습니다. 이 방식을 택하니 우울이 축적되는 과정, 어린 시절부터 겪은 차별과 폭력의 경험이 현재의 우울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 줄 수 있었습니다. 분절되고 흩어지는 듯한 여성들의 경험이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되는 모습을 보여 주고자 했습니다.

꼭 보여 주고 싶었던 부분은 이들이 나약한 피해자로 머물지 않고 ‘살아남아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란 점이었습니다. 이 기사에선 의도적으로 전문가의 의견을 배제했습니다. 여성들 자신이 스스로에 대한 전문가였습니다. 그 사실을 밀고 나갔고, 여성은 우울을 먹고 ‘자란다’는 표현으로 중의적 의미를 담고 싶었습니다.
[여성은 우울을 먹고 자란다]‘여자들아 살아만 있자’…살기로 했다, 우리 잘못이 아니니까
인터뷰이분들과 얘기하고, 보내오신 답변들을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한 생각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미래가 궁금하다.’ 살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감히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목소리를 내는 행위 자체가 가진 힘 때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힘을 기사에 불어넣어 주신 인터뷰이분들께 감사합니다. 손이 부족해 차마 다 듣지 못했지만,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신 여성분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플랫 입주자분들께서도 그런 날이 있으시겠죠. 몸이 무겁고, 화장실조차 갈 수 없고, 세상은 바뀌지 않고, 내 자신이 무가치해 보이고, 내게서 도망치고 싶은 날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인터뷰이분의 말을 빌려 써내린 이 기사의 마지막 말처럼, 우리 같이 살아가요.
기사를 뜻깊게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우혜림 기자 saha@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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