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47년 신정체제 무너지나...시민들 분노한 진짜 이유는
현상유지·점진개혁·외부개입… 이란, 어디로

47년간 이어진 이란의 '이슬람공화국' 신정 체제가 중대한 갈림길에 놓였다. 과거 이란에서 발생했던 시위들이 기존 체제를 인정하는 연속성 위에 부분적인 개혁을 요구했던 반면, 지금 이란을 휩쓰는 시위는 신정 체제의 변화를 정면으로 요구하고 있어서다. 미국은 군사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이란 시민들은 외세의 개입이 아닌 내부의 자발적 변화를 통한 체제 개편을 원하고 있다.
"'12일 전쟁' 후 불만 누적이 근본 원인"
지난달 28일 이란에서 시위가 발생했을 때 거리로 나온 시민들과 상인들이 내세운 명분은 이란 리알화 가치 폭락과 그에 따른 경제위기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시위에 나타난 반정부 구호 등을 봤을 때 이는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시위대의 기저에 깔린 가장 큰 불만은 지난해 6월 이스라엘과의 '12일 전쟁' 패배 이후로도 요지부동인 이란 정부의 태도라는 것이다.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알리 바에즈 이란 프로그램 책임자는 11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란 정부는 그간 (경제적) 번영이나 (다양한 정치체제가 존재하는) 다원주의를 희생하는 대신 안전과 보안을 보장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며 "그러나 지난해 '12일 전쟁'에서 이란이 패배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더욱이 전쟁 패배 이후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정권이 노선 변화를 요구하는 이란 시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면서 신정 체제에 대한 거센 불만에 기름을 부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WSJ는 "이란 정부는 경제제재 완화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이란 핵 협상에 무심했고,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국내 정치·경제 개혁도 시행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선택지 많지 않은 이란 정부

이런 상황에서 이란 정부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우선 중국·러시아 등 동맹의 지원이나 무력을 동원해 현재 체제를 유지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하지만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다. 엘리 게란마예 유럽외교관계위원회(ECFR) 중동·북아프리카 프로그램 부책임자는 이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중국,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였던 시리아와 베네수엘라 정권 지도자들이 강제 축출된 것을 봤을 때, 이란이 중러에 의존한다고 해서 정권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짚었다. 또한 그는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서 전쟁을 일으키거나 핵 개발을 서두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는 자살 행위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란 정부가 시민들의 요구대로 자발적인 체제 변화에 나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슬람 율법학자 중심의 현 정부 체제를 개편하는 것이다. 202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이란의 인권운동가 나르게스 모하마디를 비롯한 시민운동가 17명은 3일 성명을 통해 "이란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슬람공화국으로부터의 체제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이란 내에서는 현 지도부가 주도하는 새로운 정치체제 도입이나 헌법 개정 등과 관련한 논의도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미국 등 외세의 무력 개입을 통해 이번 혼란이 마무리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게란마예는 11일 WSJ에 미국의 군사적 개입으로 하메네이가 축출될 경우 "이란의 잔존 정부 구성원들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축출 이후의) 베네수엘라와 비슷하게 보다 실용적인 자세를 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경우 '하메네이를 뺀 이란 정부'가 계속 이란을 통치하게 되는 셈이다.
다만 이는 이란 시민사회가 가장 원하지 않는 결론이다. 미국 싱크탱크 국제정책센터(CIP)의 시나 투시 연구원은 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엑스(X)에 대학생과 노동자 단체 등 이란 내 15개 시민단체가 올린 성명을 공유하며 "이란 내 활동가들은 외국의 개입과 새로운 독재자를 거부하고 있다"고 썼다. 영국의 서아시아 전문 싱크탱크 보르세바자르재단의 에스판디야르 바트망헬리즈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의 하메네이) '참수 작전'은 이란 정권의 본질(기존 지도부와 정치 체제)은 보존한다는 점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의미한다"며 "지금까지 시위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의 희생이 헛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혁 기자 dinn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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