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 높은 창원지역서점인증제] (상) 현황

장유진 2026. 1. 12.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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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 살린다더니…” 조건 맞추기 ‘하늘의 별 따기’

시 도서관사업소, 2015년 첫 시행
공공기관 우선 납품 등 혜택 부여

운영시간 주 50시간 이상 등 기준
순수 판매만 해당돼 충족 어려워

문화 교류 공간 역할도 인정 안 해
1인 서점 등 영세 가게 “취지 무색”

“서로가 닿을 수 있는 길이 아닌 거죠. 우리 같은 동네 서점을 위한 지원 사업은 아니란 판단이 들어서 목소리를 내야겠단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일곱 해째 창원 사파동에서 서점 ‘주책방’을 운영해 온 주선경 대표는 5년 전 ‘창원지역서점인증제’ 신청을 준비하다 느낀 무용함을 기억한다. 당시 그가 봤을 창원시 도서관사업소의 ‘창원지역서점’ 인증 신청 접수 공고문은 ‘동네 서점 살리기’ 일환으로 창원지역서점의 인증 신청을 받는다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주 대표는 이 사업이 살리고자 하는 대상에 자신의 서점은 영원히 포함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소규모로 책방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창원시가 내건 지역 서점의 인증 기준이 하늘의 별보다 높았다.

12일 창원 의창구에 위치한 동네서점 ‘어느날, 산책’의 도서 판매·전시 공간 모습./전강용 기자/

창원시 도서관사업소가 2015년부터 시행한 인증제 신청 기준은 크게 네 가지다. △창원시 관내에 방문용 매장을 운영하며 사업자등록증 상 도·소매, 서점업으로 등록된 도서판매를 주종으로 하는 서점일 것 △서적 총판업 매장은 제외되며 문구류 판매 외 다른 업종과 겸업(인쇄업 등)을 하는 서점은 심사 후 제외 대상으로 결정 △신청일 기준 1년 이상 주 50시간 이상 운영 △규모 16.5㎡ 이상, 판매 면적은 별도 비율을 충족해야 함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해당 조건을 부합해 현장 실사 등의 과정을 모두 통과한 후 지역서점으로 인증되면 △창원시도서관사업소 도서구입 시 인증서점과 수의계약 체결 △공공기관에서 도서 구매할 경우 인증서점에서 우선구매 △인증서점 판로 확대를 홍보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주선경 대표는 “애당초 시간 기준을 보고 그냥 포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창원시의 인증 기준 조건 중 그를 가장 체념하게 만든 건 주 50시간 이상 가게 문을 열어둬야 한다는 점이었다. 주 대표는 “보통 동네 책방들은 영업시간이 짧은데, 그 기준을 충족할 수가 없으니 다들 지역 서점 인증은 받기 어려울 거다. 시와 책방 운영자 간에 생각하는 동네 서점의 정의 자체가 다른 것 같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소규모 1인 책방이 창원시의 지역서점 인증을 받으려 한다면 주 5일 영업 기준 하루 10시간 이상 가게를 운영하거나, 주 6일 8시간 이상 또는 휴일 없이 주 7일 7시간씩 일해야 신청 접수라도 해볼 수 있다.

주 대표의 포기 이후에도 수년째 변하지 않은 운영 시간 기준이 부담스럽기는 현시점에서 지역서점 인증을 받고자 준비 중인 다른 책방들에도 마찬가지다.

창원 성산구 서점 ‘텍스트힙’의 북큐레이션 모습.

2024년 창원시의 지역서점 인증을 받고자 신청서를 접수했던 책방 ‘텍스트힙’의 조문주 대표는 “사실상 1인 서점은 안된다는 조항이지 않나. 우리 책방 역시 혼자서 운영하고 있지만, 저녁마다 책 읽는 모임 프로그램을 여는 방식으로라도 50시간 이상 영업시간을 채워 도전해 봤다. 그런데도 실사 과정에서 탈락 통보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도서관사업소 측에서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시간은 책을 판매하는 운영시간 이후이니 정상적인 영업시간으로 인정해 줄 수 없다고 하더라. 책방이 문화적인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면 오히려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허탈함을 표했다.

창원 성산구 서점 ‘텍스트힙’의 북큐레이션 모습.
지난 6일 찾은 창원 성산구 서점 ‘텍스트힙’에서 한 방문객이 책을 둘러보고 있다.

순수 책 판매 시간만을 운영시간으로 인정해 주는 창원시의 기준에 여가 시간까지 포기하며 가게 문을 열고 매달려 본 1인 책방 운영자도 있었다. 성산구에서 서점 ‘어느날, 산책’을 운영하는 심상희 대표는 “지역서점 인증을 받고 싶어서 주 6일 책방 문을 열어 간신히 50시간 이상 운영을 유지해 봤었다. 개인적으로 건강 관리를 위해 주에 두세 번씩 가던 운동조차 끊고 서점에만 집중했는데도, 주어진 결과는 건강 악화와 탈락이었다”고 말했다. 심 대표의 발목을 잡은 건 인증 서점 조건 기준의 또 다른 조항인 겸업 금지의 원칙이었다.

그의 책방 ‘어느날, 산책’은 매장 내에서 책을 읽고 독서 모임을 하다 가는 손님들을 위해 공간 일부에서 1000원 대로 커피와 차를 판매했었다. 이를 위해 휴게음식점 등록을 마쳤지만, 사업자등록증 상 표기된 주 업종은 지역서점인증 조건과 일치하는 서점업이다. 가게 규모가 33㎡(10평) 이상이면 도서 전시·판매 면적 비율이 51% 이상이어야 한다는 기준도 지켰다.

심 대표는 “공고 상 제외 대상에는 겸업 금지에 ‘인쇄업 등’이라고만 표기돼 있어 휴게음식점 등록이 문제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음료 판매 매출은 전체 매출의 10%도 차지하지 않는데, 이것 때문에 책방이 서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며 허무함을 드러냈다.

12일 오후 창원 의창구의 동네서점인 ‘어느날, 산책’의 도서 전시·판매 공간과 휴식 공간 전경./전강용기자./

책방이 문화적인 교류의 공간으로 사용될 때 인증 조건을 더 지키기 어려워지는 현실은 창원의 또 다른 서점 ‘책방 19호실’에서도 체감 중이다. 여섯 해째 가게를 운영해 온 박지현 책방 19호실 대표는 “지역에서 책방을 오래 하다 보면 다른 동네 책방들의 존재를 다 파악하게 되지 않나. 그런데 지역서점인증제에 선정된 곳들의 목록을 살펴보면 제가 아는 동네 책방은 한 곳도 없었다. 대다수의 인증 서점이 학습지 판매나 도서 납품을 위주로 하는 곳들이었다”는 말을 전했다.

이러한 실태에 전문가는 지자체가 지역 서점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독서 생태계 조성을 더 우선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영미 동의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창원시의 현 지역서점 인증 제도 기준은 지역서점의 문화적 역할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서점이 지역에서 독서 생태계를 조성하고, 복합 문화공간으로서 역할하고 있다는 부분을 인증 조건에서 고려해야 함이 마땅하다. 서점이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간단한 음료와 휴식 공간을 내어주는 건 복합문화공간으로서 갖춰야 할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데,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글·사진= 장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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