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카메라] 손끝으로 읽는 운명…미아리 고개 옆 '그 골목' 이젠
[앵커]
눈으론 세상을 볼 수 없지만 손끝으로 타인의 삶을 읽어주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울 미아리 고개 옆, 시각장애인 역술인 얘기입니다. 오래 자리를 지키며 미래 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지만, 세월에 밀려 이 골목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밀착카메라 이은진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기자]
[대한뉴스 제 593호 (1966년 10월) : 이 미아리 고갯길은 종래의 언덕 높이보다 3미터를 깎아내려 복잡했던 차량 소통이 훨씬 완화됐습니다.]
이 고개가 뚫리던 날을 시각장애인 이도병 씨는 기억합니다.
[이도병/시각장애 역술인 : 25살에 왔죠. 양쪽으로 쭉 방이 싸니까 이제 한 칸씩 얻어가지고…]
이씨는 두 살 때 백내장으로 시력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이 먹고 살 방법은 안마나 역술, 둘 뿐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씨는 이곳에 작은 철학원을 차렸습니다.
[이도병/시각장애 역술인 :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쓰는 판입니다. 연, 월, 일시 글씨를 써서 손님한테 설명을 합니다.]
누군가에겐 미신이었고, 다른 누군가에겐 마음 열어놓는 상담소였습니다.
30년을 쓴 점판, 이씨는 이걸로 삶을 이어갔습니다.
[이도병/시각장애 역술인 : 우리 아들이 장가가는데 이 여자가 괜찮겠나 그런 것도 물어보고. 또 이사 가는데 어느 집으로 가야 되나 이런 거 물어보고…]
점술에 쓰는 산통과 주판알은 어쩌면 도구일 뿐입니다.
중요한 건 누군가의 앞날을 함께 고민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도병/시각장애 역술인 : 1전 2전 3전 이렇게 하지. 이건 산통이에요. 처음 보시죠 이런 건? {이렇게 숫자에 따라서…} 괘를 만드는 거예요. 점괘를.]
올해 첫 손님인 기자 이름도 눌러 담습니다.
[이도병/시각장애 역술인 : 은진. 은혜 은자는 9획이지 아마? 보배 진자가 10획이고. (합쳐서) 19가 좀 나빠요. 성실하게 살면 되지 뭐…]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 사람들은 이씨와 대화하며 웃고 울었습니다.
입소문이 났고 장사가 잘 됐습니다.
주변에 시각장애인 철학관이 하나둘 늘었습니다.
[이도병/시각장애 역술인 : 눈 보이는 사람은 거기 신경 쓰고, 여기 신경 쓰고 그러지. 우린 영적인 눈이 발달했지.]
[윤병관/시각장애 역술인 : 대한민국 팔도에서 다 손님이 왔었어요. 제주도에서도 오고 강원도 인제에서도 오고.]
한때 이런 철학원 100여 개가 있었습니다.
미신이라 무시받고 집값 떨어진다는 원망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명맥이 다해 갑니다.
점성촌 입구입니다.
원래 이 자리에 이곳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었는데요.
지난 해 이것도 철거가 됐고요. 이렇게 쓰레기만 남았습니다.
[이도병/시각장애 역술인 : 여기 다 우리 친구인데 죽었어요. 집을 팔았는데, 뭐 개발한다 그러는데 모르겠어요.]
남은 역술인은 다섯명 남짓.
이 동네에 이런 사연이 있었다는 사실도 잊혀져 갑니다.
[김지수/서울 노고산동 : GPT에 생년월일 다 기입하고 검색하니까 더 쉽고 재밌게 풀어주더라고요. 굳이 돈 주고 안 보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 이렇게 문을 닫은 가게들은 더 늘어날 겁니다.
하지만 남은 이들은 여전히 이곳에서 손끝으로 운명을 읽습니다.
어쩌면 삶이 막막해 찾아올 누군가를 위해섭니다.
[화면출처 KTV 대한뉴스]
[영상취재 변경태 최무룡 이지수 영상편집 김동준 VJ 김수빈 작가 강은혜 취재지원 장민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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