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울리는 유사수신, 진화하는 수법들]<4>출금은 막고, 항의하면 차단…피해 키운 ‘통제 시스템’

권종민 기자 2026. 1. 1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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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S Korea'가 2024년 12월 달서구 죽전동 대구지사에서 회원들을 모아 놓고 FX마진거래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피해자 제공

유사수신행위를 '범죄'로 인식하는 결정적 분기점은 수익이 줄어드는 순간이 아니다. 본보 취재 결과,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전환점은 출금과 소통이 '통제'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돈이 잘 벌리는지보다는 투자한 돈을 꺼낼 수 있는지, 운영진에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지가 범죄 여부를 가르는 핵심 신호였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출금 통제는 갑작스럽게 이뤄지지 않았다. 초기에는 약속한 수익 일부를 지급하며 신뢰를 쌓는다. 이후 '시스템 점검'과 '시장 상황 조정' 등을 이유로 이자 지급이 늦어지기 시작하고, 내부 공지를 통해 운영방침이 서서히 바뀐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표현이 '원금 이상 출금 금지', '회사 계획에 따른 순차 처리'다.

한 피해자는 "처음에는 이자만 조금 늦는 줄 알았다"며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시스템상 출금 버튼이 사라졌고, 문의를 해도 '기다리라'는 말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서야 내가 투자자가 아니라, 관리 대상이 됐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한 DK그룹 카카오톡 단체 메시지방. 출금 지연 이유를 묻거나, 원금 반환을 요구한 투자자들이 강제로 퇴장 당했다. 피해자 제공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DK그룹 내부 공지에도 이 같은 흐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공지에는 '데일리 계정에서 원금 이상 출금 금지', '회사 승인 없이 임의 출금 불가', '운영 일정에 따라 순차적으로 처리' 등의 문구가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피해자들은 이러한 방침이 투자 시점에는 전혀 설명되지 않았고, 사실상 원금 회수를 봉쇄하는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출금 통제와 함께 나타난 또 다른 특징은 소통 차단이다. 일부 투자자들은 단체 채팅방에서 출금 지연 문제를 묻거나, 원금 반환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강제로 퇴장 당했다고 말한다. 연락이 끊기거나 전화·메신저가 차단된 사례도 적지 않다. 피해자 B씨는 "단톡방에서 쫓겨난 순간, 더 이상 정상적인 투자 구조가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며 "그 이후로는 회사 소식조차 들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투자자가 직접 사무실을 찾아간 경우에는 갈등이 더욱 심화됐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일부는 원금 반환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업무방해로 경찰을 부르겠다"는 말을 들었다. 피해자 C씨는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을 뿐인데, 마치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며 "그때부터는 두려움이 앞섰다"고 말했다.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위반 혐의로 재판 중인 'SPS Korea' 회장의 과거 강연 모습. 피해자 제공

이 같은 '통제 시스템'은 DK그룹의 사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취재진이 확인한 FX마진거래(장외해외통화선물거래)와 관련한 'SPS Korea' 유사수신 사건 공소장에서도 유사한 정황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공소장에는 출금을 요구한 투자자들에게 '시장 변동성', '시스템 오류'를 이유로 시간을 끌다가 연락을 끊은 정황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수사기관은 이를 단순한 운영 미숙이 아니라, 범죄사실 확산을 늦추기 위한 고의적 통제로 판단하고 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SPS Korea 피해자들은 "2020년 5월부터 출금이 막힌 상태였지만, 회사 운영진은 지속적으로 강연을 다니며 새로운 프로그램을 출시해서 투자금을 받았다"면서 "일부 난동을 부리는 회원이나, 지사장들과 친분이 있는 몇몇에게는 긴급자금 명목으로 돈을 조금씩 줘서 달래기도 했다"고 전했다.

금융범죄 전문가들은 이러한 방식이 유사수신 범죄의 피해를 키우는 핵심 장치라고 지적한다. 한 전문가는 "정상적인 투자라면 항의와 질문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출금 제한과 소통 차단은 투자 구조가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이자, 투자자를 고립시키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출금과 소통이 동시에 막히는 순간, 투자자는 사실상 그 구조를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되면서 피해 규모는 급격히 커진다"고 덧붙였다.

피해자들은 DK그룹의 사례 역시 이처럼 전형적인 수순을 밟았다고 입을 모았다. 투자자가 고객이 아닌 '관리 대상'으로 전환되고, 문제 제기는 '통제해야 할 변수'로 취급되면서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것이다. 성시형 법무법인 애플 대표변호사는 "출금 제한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경고 신호"라며 "이 단계에서 즉시 외부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종민 기자 jmkwon@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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