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민성 대장 증후군, 왜 여성에게 훨씬 더 흔할까
여성호르몬이 장 세포 연쇄반응 촉발
장에서 뇌로 가는 통증 민감도 높여

2024년 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랜싯 공중보건’(The Lancet Public Health)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20가지 주요 질병 중 근골격계 질환, 정신 질환, 두통 질환 등 비치명적 질환은 여성에게서 더 많이 발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코로나19, 교통사고, 심혈관 질환, 호흡기 및 간 질환 등 조기 사망으로 이어지는 질환은 남성 유병률이 더 많다.
전 세계 수억명을 괴롭히고 있는 과민성대장증후군(IBS)도 여성에게서 훨씬 많이 발생하는 질환 가운데 하나다. 전체 환자의 약 3분의 2가 여성이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은 복통과 설사, 변비 등을 일으키고 복부 팽만감을 수반하는 질환으로 생활에 큰 불편을 주지만 딱히 즉효약은 없는 까다로운 질환이다.
전문가들은 호르몬이나 스트레스, 특정 음식이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것은 생리 주기 중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수치가 변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 호르몬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장에 영향을 주는지는 규명하지 못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이 생쥐 실험을 통해 그 수수께끼를 풀 단서를 찾아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에스트로겐이 장 점막에 있는 두 가지 유형의 인접 세포간 소통(파라크린 상호작용)을 강화하고, 그 결과 뇌로 전달되는 통증 신호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 공동저자인 홀리 잉그라함 교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며 “새로운 잠재적 약물 표적도 발견했다”고 말했다.
2021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이번 연구에도 참여한 데이비드 줄리어스 교수는 “장에 정교한 통증 감지 시스템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 연구는 호르몬이 어떻게 이 시스템에 작용해 통증을 높이는지를 밝혀냈다”고 말했다.

‘에스트로겐–PYY–세로토닌’ 잇는 통증 회로
연구진은 따라서 이 세포에 에스트로겐 수용체가 분포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이 세포엔 에스트로겐 수용체가 없었다. 수용체는 엉뚱하게도 장내 세균이 생성하는 화합물을 감지하는 엘(L)세포에 집중돼 있었다. 엘세포는 식욕 조절과 관련이 있는 피와이와이(PYY)라는 호르몬을 분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PYY의 새로운 기능이 발견됐다.
실험 결과 에스트로겐이 엘세포에 결합하자 복잡한 연쇄 반응이 일어났다. 먼저 에스트로겐은 엘세포가 PYY 호르몬을 분비하도록 했다. 그러면 PYY는 주변의 장크롬친화세포에 작용해 세로토닌을 분비하도록 했다. 그런 다음 세로토닌은 통증을 감지하는 신경섬유를 활성화했다.
이어 연구진은 암컷 쥐에서 난소를 제거하거나 에스트로겐, 세로토닌 또는 PYY를 차단하면 생쥐의 장 통증이 크게 감소하는 걸 확인했다. 또 검증을 위해 암컷과 비슷한 수준의 에스트로겐을 수컷 생쥐에게 투여하자 장의 통증 민감도가 암컷과 같은 수준으로 증가하는 것도 확인했다.
에스트로겐을 맞은 엘세포에선 올에프알78(Olfr78)이라는 또 다른 분자의 수치도 증가했다. 세포막에 분포하는 이 분자는 장내 세균이 음식을 소화할 때 생성되는 대사산물인 단쇄 지방산을 감지하는 수용체 단백질이다. 이 수용체가 많아지면 엘세포는 지방산에 과민해져 더 많은 피와이와이를 분비하게 된다.

독성 음식 섭취 피하려는 진화적 배경이 뿌리
포드맵이란 유제품이나 밀, 일부 과일과 채소에 함유된 올리고당, 이당류, 단당류 및 폴리올(당알코올) 등의 발효성 탄수화물을 가리킨다. 이런 물질은 소장에서 완전히 소화되거나 흡수되지 않은 채 대장으로 넘어가 그곳의 미생물에 의해 발효 과정을 거친다.
우유,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등의 유제품, 밀로 만든 파스타와 빵류, 콩류, 꿀, 감미료 등이 대표적인 포드맵 식품에 해당한다. 견과류에선 캐슈너트와 피스타치오, 과일에선 사과와 망고, 수박, 채소류에선 양파, 마늘, 아스파라거스 등이 포드맵 식품에 속한다.
포드맵 식품은 과민성 대장 증후군에 걸린 경우 복통과 설사 등의 증상을 유발한다. 따라서 포드맵 식품 섭취를 줄이면 올에프알78의 활성이 약해지고, 결국 엘세포에서 통증 신호 전달 물질인 피와이와이의 생성도 억제된다.
연구진은 남성은 에스트로겐 수치가 낮아 정도는 약하지만 남성의 장도 똑같은 경로를 거친다고 밝혔다. 또 남성의 경우 테스토스테론 효과를 차단하는 약물을 복용할 경우 이 경로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과민성 대장 증후군의 새로운 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예컨대 장크롬친화세포의 PYY 수용체를 차단하는 약물을 치료제로 쓸 수 있다. 기존 치료제인 알로세트론은 세로토닌 수용체를 차단한다. 사이언스는 하지만 이 약은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왜 에스트로겐이 과민성 대장 증후군에 관여하게 됐을까? 잉그라함 교수는 진화적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임신 후기에는 에스트로겐 수치가 극도로 높아지는데, 바로 그 시기에 장의 민감도가 높아져 태아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독성 음식 섭취를 피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대신 그 대가로 과민성 대장 증후군 위험도 높아진다. 연구진은 임신 중인 생쥐를 대상으로 이를 검증해볼 계획이다.
물론 이번에 밝혀진 것이 사람한테도 그대로 나타날지는 인체 연구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또 이번 연구는 왜 어떤 여성은 IBS에 걸리고 다른 여성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못한다.
*논문 정보
A cellular basis for heightened gut sensitivity in females.
DOI: 10.1126/science.adz1398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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