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의 기후 1.5] 바다, 에너지 안보의 시작 (2/5)

박상욱 기자 2026. 1.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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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322)

유럽을 중심으로 에너지전환이 이론에서 현실 정책으로 거듭난 2000년대 무렵만 하더라도 영국의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2000년, 천연가스(148.1TWh), 석탄(120TWh), 원자력(85.1TWh)이 전체 전력 생산의 93.6%를 차지했죠. 2006년엔 석탄 발전량이 무려 148.9TWh까지 늘어나며 37.5%까지 비중을 높였고, 이어 천연가스(140.83TWh), 원자력(75.45TWh) 순으로 전력 생산의 대부분을 감당했습니다. 이후 석탄 발전량은 잠시 감소세에 접어들어 2009년엔 최저 103TWh까지 떨어졌지만, 이내 2012년, 무려 142.8TWh로 반등하며 석탄 발전비중은 39.2%에 달했고, 이어 천연가스(100.17TWh)와 원전(70.41TWh) 등 3개 주력 발전원이 전체 전력 생산의 86%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아래의 그래프에서 확연히 드러나듯, 2012년을 정점으로 석탄 발전량은 급격히 줄었습니다. 가스 발전량 또한 2016년 143.1TWh를 정점으로 2024년 86.3TWh까지 줄었고요. 석탄, 천연가스와 함께 영국 전력 생산의 주축을 맡았던 원자력 발전량은 2000년 85.1TWh에서 2008년 52.5TWh까지감소했다 2016년엔 71.7TWh로 다시 늘었습니다. 이후엔 다시 감소세로 돌아서 2024년엔 2000년 대비 47.7% 수준인 40.6TWh를 기록하게 됐죠.

전통의 세 발전원을 대체한 것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체 에너지'로 불렸던 발전원들이었습니다. 2017년, 육상풍력 발전량은 28.7TWh를 기록하며 석탄(22.5TWh)을 넘어섰고, 이듬해엔 해상풍력으로 26.5TWh의 전력을 생산하며 당시 석탄(16.8TWh) 발전량을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2019년, 해상풍력 발전량은 32TWh에 달해 31.9TWh의 육상풍력마저 넘어섰죠. 육지와 바다의 바람으로 만든 전력량은 당시 천연가스(133.09TWh)에 이어 가장 많은 전력을 생산했던 원자력(56.18TWh)보다도 많았습니다. 이 둘을 묶어 '풍력'이라고만 볼 경우, 이미 풍력발전은 영국의 '제2 발전원'이 된 셈이죠. 그리고 2023년, 해상풍력은 홀로 49.7TWh의 전력을 생산하며 당시 원자력 발전량(40.6TWh)을 넘어섰고, 전체 풍력 발전량이 제1 발전원인 천연가스 발전량의 약 81%에 달할 정도로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2024년, 해상풍력으로 48.5TWh, 육상풍력으로 34.7TWh의 전력을 생산하면서 전체 풍력 발전량은 천연가스(86.3TWh)에 맞먹는 83.28TWh에 이르게 됐습니다.

영국에 기반한 글로벌 기후 에너지 싱크탱크인 Ember는 지난해 영국 해상풍력의 25주년을 맞아 영국 해상풍력의 25년사(史)를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석탄의 나라'에서 '석유·가스의 나라'를 넘어 '바람의 나라'로 거듭나게 된 주요 계기를 정리했습니다. 2000년, 잉글랜드 노섬벌랜드 해상에 2MW급 풍력터빈 2기가 설치된 블리스 해상풍력발전단지가 준공되고, 이듬해 왕실 자산을 관리하는 공사인 크라운 에스테이트가 첫 해역 임대에 나서면서 해상풍력 프로젝트들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엔 RPS(Renewable Portfolio Standard, 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 제도)가 시행되면서 기존 에너지 공급자들이 의무적으로 재생에너지를 공급해야만 했고요. 이러한 기본적인 제도의 틀이 마련된 가운데, 2008년엔 기후변화법이 통과되면서 재생에너지 확대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 결과, 영국은 2008년 전 세계 최대 규모의 해상풍력 국가로 발돋움하게 됐고요. 지난주 연재에서 설명해 드린 것처럼, 영국은 이때부터 2021년 중국에 해상풍력 발전량 1위 자리를 내어주기 전까지 '압도적 1위'를 지켜냈습니다.

영국 해상풍력의 확산을 이끈 건 기후변화법만이 아닙니다. 2011년, 망 연계 및 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해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력망 연결을 기다리는 기간을 단축했습니다. 그리고 2013년엔 정부 차원의 해상풍력 산업전략을 발표하고, 에너지법에 대한 왕실의 승인이 있었죠. 영국에서 바다는 '왕실의 자산'인 만큼, 왕실의 승인은 더욱 빠른 해상풍력의 확대를 가능케 했습니다. 2014년엔 그저 '공급 의무'에 기대지 않고, 본격적으로 시장의 원리에 따른 재생에너지의 확대를 의미하는 CfD(Contract for Difference, 차액계약제도)가 첫선을 보였습니다. 전력 판매의 도매가를 사전에 설정해 도매가격이 기준보다 낮으면 정부가 보전하고, 반대로 기준보다 높아 발전사업자가 초과 이익을 볼 경우엔 이를 정부에 반환하는 겁니다.

영국의 해상풍력이 이처럼 '완성형 시장'으로 자리잡자,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지멘스는 영국 헐 지역에 대규모의 터빈 블레이드 공장을 짓기 시작했고, 2017년 이 공장은 준공됐습니다. 그리고 2022년부턴 CfD 경매가 해마다 진행되기 시작했고, 지난 2024년엔 6번째 경매를 통해 5GW의 해상풍력 프로젝트가 입찰됐습니다. 석탄과 증기를 기반으로 산업혁명을 시작한 나라가 어떻게 이리 짧은 시간 안에 전환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오랜 시간 정부에서 기후 및 에너지 정책을 담당하다 글로벌 싱크탱크 E3G에서 글로벌 청정에너지 외교를 담당하고 있는 매튜 웹 부국장에게 그 배경을 물었습니다.

“영국의 탈석탄은 약 150년에 걸친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매우 중요한 이정표였습니다. 영국은 석탄과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산업 성장과 확장을 이뤄왔기 때문이죠. 지난 15년간의 핵심적인 변화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필연성에 대한 인식입니다. 이는 2008년 제정된 기후변화법을 통해 법적 구속력을 갖는 목표로 구체화됐죠. 둘째는, 이후 정부가 이를 실제 정책으로 신속하게 이행했다는 점입니다.

기후변화법 제정 당시만 해도 영국엔 노후 석탄화력발전소들이 있었고, 당시 이 발전소들은 수명연장 등을 위한 새로운 투자 사이클에 진입해야 하는 시점이었습니다. 정부는 이 시점에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신규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담대한 결정을 했고, 대신 재생에너지, 특히 육상풍력과 해상풍력에 공공의 지원을 쏟는 것을 택했습니다.

물론, 이 전환은 단번에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오랜 기간 여러 단계에 걸쳐 진행됐죠. 1970~1980년대, 영국 석탄 산업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호주나 인도네시아산 석탄 대비 영국의 석탄은 경제성 측면에서 경쟁이 안 됐던 겁니다. 당시엔 환경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로 점차 석탄에서 벗어나는 흐름이 먼저 나타났습니다. 환경 문제가 이유로 등장한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고, 환경을 이유로 에너지전환에 더욱 박차를 가하자 기술의 발전과 비용의 하락이 뒤따르게 됐죠.

특히, 북해와 요크셔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석탄 산업이 쇠퇴한 이후, 이 지역들은 심각한 위기에 빠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해상풍력은 단순 에너지원이 아니라, 이 지역에 새로운 번영의 활로를 열어줄 수 있는 산업으로 인식됐습니다. 해상풍력은 그저 전력 생산만의 문제를 넘어 해운과 항만, 서비스 등 광범위한 해양 산업 전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에너지전환이 단순히 환경 정책이나 에너지 정책이 아닌, 지역의 경제와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진 이유입니다.”
매튜 웹 E3G 글로벌 청정 전력 외교 부국장
영국 상무부에서 해상풍력을 담당하는 칼 존 스페셜리스트 또한 2008년의 기후변화법을 중요한 터닝포인트로 꼽았습니다.

“핵심 동인은 2008년의 기후변화법에서 시작됩니다. 영국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목표를 일찍이 설정한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법적 의무로 만들었고, 이는 곧 전력 시스템의 탈탄소화, 수송부문의 탈탄소화, 기타 에너지 및 산업부문의 탈탄소화를 의미했습니다. 결국,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이 설계됐고요.

북해엔 전통적인 석유·가스 산업이 존재하고, 과거 탄광 산업 또한 매우 규모가 컸지만, 이에 기반해 에너지를 생산하면 이산화탄소 배출은 막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목표와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죠. 이후 영국이 산업의 탈탄소, 국가의 탈탄소에 나설 수 있던 것은 정당들과 정부 부처 전반에 걸쳐 이 약속이 광범위한 지지를 얻은 덕분이었습니. 정부조직개편을 통해 에너지와 환경이 합쳐지기도 하고, 지금의 에너지안보넷제로부(DESNZ, Department of Energy Security and Net Zero)로 이어져 탄소중립 달성에 집중할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죠.”
칼 존 영국 상무부 해상풍력 스페셜리스트

그 결과, 영국의 해상풍력은 25년 새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2000년, 잉글랜드 노섬벌랜드 해상에 위치한 블리스 해상풍력발전단지는 2MW 터빈 2기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블레이드 길이는 32m에 최대 높이는 92m로 지금의 해상풍력터빈에 비하면 매우 작은 크기에 불과했죠. 설치 기술 또한 발달하기 전인 만큼, 연안과 발전기의 거리는 불과 1.6km밖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수심이 5~8m로 얕아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2025년 4월에 스코틀랜드 모레이만에서 상업운전을 시작한 모레이웨스트 해상풍력발전단지는 개별 터빈뿐 아니라 전체 발전단지 규모 면에서도 블리스 단지와 비교가 어려울 만큼 대형화가 이뤄졌습니다. 전체 발전단지의 규모는 블리스의 4MW에서 882MW로 220배에 달할 만큼 커졌고, 설치된 터빈의 발전용량 또한 개당 14.7MW로 커졌습니다. 터빈 1개만으로 블리스 단지 전체 용량의 3배에 달하는 셈입니다. 블레이드의 길이는 108m로 3배 이상이 됐고, 높이 또한 260m로 높아졌습니다. 이젠 35~54m의 수심에도 설치가 가능해지면서 연안과의 거리 또한 22km로 멀어졌습니다.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터빈을 이젠 더 넓은 곳에 설치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첫 터빈과 가장 최근의 터빈 사이 공통점을 찾자면, 모두 '해외 기업'의 터빈이라는 점입니다. 블리스 해상풍력발전단지에 쓰인 것은 덴마크의 베스타스 사가 만든 V66/2000이라는 터빈이고, 모레이웨스트 해상풍력발전단지에 쓰인 것은 독일-스페인의 지멘스가메사가 만든 SG14-222DD라는 터빈입니다.

2000년 고작 4MW 규모로 시작했던 영국의 해상풍력은 2025년 기준 16GW 이상으로 확대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려움과 갈등, 우려는 어떻게 다뤄지고, 해결됐을까요. 다음 연재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보다 자세히 들어보겠습니다.

영국과 우리나라의 해상풍력을 돌아본 다큐멘터리 〈바다, 에너지 안보의 시작〉은 다음의 링크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다시보기] 바다, 에너지 안보의 시작 (1부)
https://youtu.be/kO_kCdt95nM?si=yqZAqgf6vnWhSTh6

[다시보기] 바다, 에너지 안보의 시작 (2부)
https://youtu.be/72mxqYlArJM?si=dCtVWzCftSGNj3os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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