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당담] ‘브레이킹 배드’의 시대

이병욱 게임시나리오 작가 2026. 1. 1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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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계 정세와 한국 정치 뉴스를 함께 보다 보면 자꾸 한 단어가 떠오른다.

처음에는 감당하기 힘든 병원비와 장애를 가진 아들, 그리고 곧 태어날 둘째에 대한 걱정으로 돈을 벌기 위해 마약을 만든다.

한국 정치판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영달'이 아닌 '공익을 위한 헌신'이 정치행위의 목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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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협상 생략하고 막 가는 정치판
FPS게임 아닌 현실의 결말은 파국뿐

요즘 세계 정세와 한국 정치 뉴스를 함께 보다 보면 자꾸 한 단어가 떠오른다. 바로 '브레이킹 배드'다. 아주 유명한 미국 드라마 제목인데, 원래 뜻은 "나쁜 짓을 하기 시작하다", 더 노골적으로는 "이제 막 가보자"라는 속어에 가깝다. 드라마 내용도 평범한 화학교사가 말기 암 선고를 받고, 마약 딜러이자 중독자인 제자와 협업해 최상품의 마약을 만들어 판다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감당하기 힘든 병원비와 장애를 가진 아들, 그리고 곧 태어날 둘째에 대한 걱정으로 돈을 벌기 위해 마약을 만든다. 하지만, 갈수록 범죄에 깊숙이 연루되면서, 아주 극단적으로 '막 가는'(Breaking Bad) 악당이 된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딱한 사정이라도 있지, 실제 세상에서는 딱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아주 대놓고 처음부터 막 나가는 짓을 서슴지 않고 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으로 미군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했다. 전투기를 동원해 베네수엘라의 대공망을 파괴하고, 해킹을 해서 도시의 전기를 끊었다. 그리고 미군 특수전 최상급 부대인 델타포스를 여러 대의 헬기에 태워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거처로 침투시켰다.

이 장면을 게임으로 바꿔보면, 장르는 FPS다. 외교와 협상은 로비 화면에서 이미 스킵됐다. 매치가 시작되자마자 화면에는 미니맵과 타깃 마커가 뜨고, 플레이어는 전투 맵 한가운데로 강하한다. 목표는 단순하다. '마두로 확보'. 최상급 장비를 두른 특수부대 캐릭터들이 헬기에서 하강하고, 경호 NPC들은 리스폰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총성이 멎은 뒤 컷신이 재생되고, 적 진영의 보스는 체포 상태로 이송된다. 미션 성공. 사망자는 경호원 NPC 수십 명, 민간인 NPC 수십 명이 집계되고, 플레이어 팀의 사망자는 0이다. 이 가상의 FPS에서 플레이어는 도널드 트럼프, 적 진영의 보스 캐릭터는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다.

세상은 FPS가 아니다. 국제정치와 국내 정치는 본래 수많은 변수와 선택지가 얽힌 정치·외교 시뮬레이션 게임에 가깝다. 외교는 장기적인 신뢰 수치로 관리되고, 동맹과 제재는 수십 턴에 걸쳐 효과가 누적된다. 무력 사용은 정말 '막 가는' 행위다.

한국 정치판도 마찬가지다. 여당 대표였던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여러 행위, 강선우 의원의 '보좌관 갑질' 논란에 이어 공천 뇌물 의혹 행위, 김경 민주당 서울시의원의 행위,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의 여러 가지 행위, 다들 브레이킹 배드다.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도 법정에서 여전히 막 가고 있고, 국민의힘도 꾸준히 막 가고 있다.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결말은 파국이다. 주인공은 끝내 모든 것을 잃는다. 돈은 저주가 되고, 가족은 등을 돌리며, 그가 쌓아 올린 세계는 폭력과 죽음으로 끝난다. '막 가기'는 언제나 처음엔 사소했고, 합리화할 수 있었으며, 잠깐은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끝은 정해져 있다. 길이 아닌 곳으로 막 가다 보면 절벽 아래로 추락하거나,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야만의 늪에 빠진다.

'전투 승리'가 목적인 FPS 장르의 게임이 아니라, '평화 수치' 달성이 목적인 정교한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 '개인의 영달'이 아닌 '공익을 위한 헌신'이 정치행위의 목적이어야 한다. '브레이킹 배드'는 드라마로만 보고 싶다. 현실에서는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다.

/이병욱 게임시나리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