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사찰음식에 엄지척. 알카라스-신네르 짧지만, 굵은 한국 꿈의 맞대결

김종석 기자 2026. 1. 1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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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랭킹 1, 2위. 현존 양대 스타 초현실적 국내 무대
- 추진력과 디테일 시너지, 성숙한 관전 문화 호평
- 짧은 방한 일정에도 한국의 맛과 환대에 감동
- 호주오픈 앞둔 두 맞수, 다시 한국을 기약
현대카드 슈퍼매치에서 맞대결을 펼친 세계랭킹 1위 카를로스 알카라스와 세계 2위 얀니크 신네르. 현대카드 제공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세계 테니스 랭킹 1, 2위인 알카라스와 신네르. 이분들이 제 손님으로 방한한다는 다소 '초현실적인 사실'이 묘한 뿌듯함과 흥분을 줍니다.' 

  이런 느낌은 비단 정태영 부회장뿐이 아닐 것 같습니다. 세계랭킹 1위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와 2위 얀니크 신네르(이탈리아)가 새해 첫 맞대결을 한국에서 치르는 모습을 지켜본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10일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를 가득 메운 1만2000명 관중은 물론이고 TV나 모바일 시청자라면 현존 최고의 양대 테니스 스타가 국내 코트에서 네트를 사이에 두고 플레이하고 있다는 걸 '꿈의 무대'라고 여길 만합니다. 알카라스와 신네르는 최근 2년간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우승컵을 4개씩 양분한 최대 맞수입니다. 향후 적어도 5년 이상은 세계 테니스 판도에서 양강 구도를 굳힐 것으로 보입니다. 

  신년부터 세계적인 스포츠가 성사될 수 있었던 데는 두 선수 섭외를 주도한 세마 스포츠마케팅의 추진력과 '슈퍼'라는 타이틀로 국내에서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와 콘서트를 주최한 현대카드의 디테일이 결합한 덕분이라는 평가입니다. 아무리 멋진 잔치를 유치해도 판 자체가 허술하다면 호평을 기대하기는 힘들 겁니다. 이번 매치를 유치한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실내 스포츠 행사를 위한 최적화된 시설을 갖추고 있어 세계 최고의 경기장을 경험한 알카라스와 신네르 역시 엄지척할 정도였습니다.

슈퍼매치 시상식에 참가한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과 주원홍 대한테니스협회장, 알카라스, 신네르. 이성환 세마 스포츠마케팅 대표 등 주요 인사. 

알카라스와 신네르가 연초 개인적으로는 낯설기만 한 세계 테니스의 변방인 한국의 초청을 기꺼이 응한 데에는 최근 지구촌을 강타한 K컬처의 효과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K팝, K푸드, K 애니메이션 등 한류 문화의 저변이 확대되면서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은 20대 알카라스와 신네르에게도 한국은 직접 방문하고 싶은 나라가 된 겁니다.

  경기 후 알카라스는 "한국 팬들이 에너지 넘치는 응원을 보내줘 좋은 경험이었다. 한국에는 볼거리가 많아서 비시즌 때라도 다시 오고 싶다"라고 만족감을 드러냈습니다. 신네르 역시 "가득 찬 팬들 앞에서 경기하면서 마치 홈 코트에서 경기하듯 편안함을 느꼈다.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았다"라며 한국 팬에 대한 감사 표시를 했습니다.

  한층 성숙한 관전 문화도 박수받을 만했습니다. 여자프로 테니스(WTA)투어나 서울오픈 챌린저 같은 굵직한 대회가 국내에서 해마다 열리면서 경기장을 찾은 팬들도 테니스 특유 관전 에티켓이 몸에 밴 것 같았습니다.

알카라스와 신네르 경기를 지켜보는 SK그룹 최태원 회장. 최 회장은 평소 테니스를 즐기는 애호가로 알려졌다. 세마 스포츠마케팅 제공.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윤용일 대한테니스협회 미래 국가대표 전임감독은 "두 선수의 경기 내용은 베스트로 하기에는 호주오픈도 있고 좀 조절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최고의 그라운드 스트로크가 인상적이었다"라며 "관중의 수준 높은 관전 태도도 인상적이었다. 어수선한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테니스 인기와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어 테니스인으로서 기분이 좋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경기에는 유명인들도 대거 직관에 나섰습니다. 평소 테니스를 즐기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그룹 엑소의 세훈, 배우 이서진과 송강호, 테니스 애호가인 가수 윤종신, 산다라 박 등이 자리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경기는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인도, 이스라엘 등에도 해외 중계가 이뤄졌습니다.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모습을 널릴 알릴 기회가 된 겁니다.

 알카라스와 신네르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방한 경기 관련 사진을 올리며 팬들과 직접 소통했습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1만2000명 팬들을 향해 K 하트를 날리는 알카라스.

알카라스와 신네르는 18일 개막하는 호주오픈을 앞두고 있어 짧은 방한 일정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지난해 유니클로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로저 페더러는 서울 북촌, 광장시장 등 명소를 방문하면서 김밥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한 것과 비교할 때 제한된 활동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좀처럼 맛보기 힘든 한국의 맛을 느끼는 기회를 흡족하게 여겼습니다. 알카라스와 신네르는 서울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서 정관 스님이 직접 만든 사찰음식 코스를 즐겼습니다. 사찰음식의 대가 정관 스님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 시즌 3에 출연해 해외에서도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웰컴 이벤트로 진행된 탁구 대결도 흥미로운 볼거리였습니다. 사전에 탁구 대결을 제안받은 두 선수는 흔쾌히 테니스 못지않은 탁구 실력을 과시했습니다. 

  경기 도중 신네르는 관중석에 있던 어린 학생에게 라켓을 건네고, 대신 경기에 뛰게 해 팬들의 폭소가 터졌습니다. 이 학생은 알카라스와 랠리를 주고받다가 포인트까지 따내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이 장면은 신네르가 즉흥적으로 연출한 장면이었습니다. 신네르는 이날 오전 행사에서 라켓 가방을 들고 사인을 받으러 온 어린 학생을 기억하고 있다가 코트로 불러들인 겁니다. 

웰컴 이벤트에서 알카라스와 신네르가 탁구하고 있다. 현대카드 제공

외신에는 두 선수가 한 경기를 뛰는 데 초청료로 1인당 230만달러(약 33억5000만원)를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호주오픈 준우승자보다 많은 금액이라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호주오픈 우승 상금은 한화 약 40억5000만 원입니다. 

  하지만 홍미영 세마 스포츠마케팅 부사장은 "외신에 전해진 초청료는 사실과 다르다. 금액 공개는 계약조건 위반이라 밝히긴 어렵다. 다만 그보다 낮은 조건으로 성사됐다"라고 전했습니다. 

  경기를 마친 뒤 알카라스와 신네르는 주최 측이 마련한 전용기에 나란히 몸을 싣고 호주오픈이 열리는 멜버른으로 향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은 채 우정 어린 대결을 펼쳤지만, 호주오픈은 맹수가 우글거리는 정글과도 같습니다. 알카라스는 4대 메이저 대회 가운데 유일하게 호주오픈 우승 트로피만 수집하지 못했습니다. 우승하게 되면 커리어그랜드슬램이라는 위업을 이룹니다. 신네르는 호주오픈 3연패에 도전합니다. 

카를로스 알카라스.
얀니크 신네르.

알카라스와 신네르를 국내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물론 둘 다 "할 게 많고, 볼 게 많은 한국에 꼭 다시 오고 싶다"라는 덕담을 남긴 채 출국했습니다. 

  환호와 감동 속에 막을 내린 슈퍼매치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한국 테니스의 위상을 돌아보는 계기도 됐습니다. 알카라스와 신네르가 떠난 뒤 국내 테니스계에는 유망주 발굴과 육성, 국제 경쟁력 강화, 저변 확대라는 해묵은 과제가 남았습니다.

  몇 년 후 이번 '초현실적인 맞대결'에서 영감을 받은 한국의 꿈나무가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떨치는 날을 마주할 수 있을까요. 연초를 맞아 기분 좋은 상상이라도 해보게 됩니다.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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