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국가산단, ‘공장이 많은 도시’에서 ‘청년이 머무는 도시’로 전환 선언
방림 유휴공장 재생부터 청년 주거·문화 인프라까지…Again 1969, 구미의 두 번째 도약

"국가산업단지" 하면 여전히 '회색 도시'가 떠오른다. 공장과 굴뚝, 출퇴근만 반복되는 산업의 풍경이다. 구미 역시 오랫동안 그런 이미지로 규정돼 왔다. 그러나 이제 구미는 그 익숙한 공식을 스스로 깨기로 했다. 공장에 문화를 입히고, 일만 하고 떠나는 도시가 아닌 '살고 싶어서 머무는 도시'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2026년 구미 국가산업단지가 다시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섰다.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 산업화를 떠받쳐 온 생산의 공간은 이제 문화와 생활, 청년의 시간이 스며드는 공간으로 변화를 시작했다. 일하고 떠나는 산업단지가 아니라 일하며 살고 관계가 만들어지는 산업단지로, '공장이 많은 도시'에서 '청년이 모여드는 도시'로의 전환이 구미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 문화선도 산단, 변화의 기점.
구미 국가1산단은 1969년 국가 1호 공업단지로 지정된 이후 전자·정보통신 산업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어온 상징적 공간이다. 수출 주도형 성장의 전진기지로 국가 경제를 떠받쳐 왔지만, 조성 50년을 넘기며 산업시설 노후화와 정주·문화 환경 부족이 누적됐고, 이는 청년 인구 유출이라는 구조적 한계로 이어졌다. '일하러 오는 공간'에 머문 산업단지는 더 이상 다음 세대를 붙잡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에 구미시는 산업 경쟁력 강화만으로는 국가산단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산업 기능은 유지하되 문화·정주·생활 요소를 결합해 산업단지를 도시의 일부로 재편하는 전략적 전환에 나섰다. 공장 중심의 공간을 사람과 일상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으로 그 출발점이 바로 문화선도산단이다.
문화선도산단으로 지정되면 산업단지 통합브랜드 구축과 상징 랜드마크 조성, 구조고도화·재생사업, 특화 문화프로그램 운영 등이 패키지로 추진된다. 토지 용도 변경과 용적률 완화 등 특례 적용도 검토되며, 산업단지를 '일하는 곳'에서 '머무는 곳'으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구미시는 올해 3월 공모에 선정돼 총 2821억 원 규모의 10개 패키지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단일 시설 조성을 넘어 문화·산업·정주·환경 개선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은 종합 전환 사업으로, 구미 국가산단의 기능과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변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 방림 부지, 산업유산 위에 쌓는 복합 랜드마크.
문화선도산단의 상징 공간은 국가1산단 내 약 4만 평 규모의 방림 유휴공장 부지다. 한때 생산의 현장이었던 이곳은 철거 위주의 개발에서 벗어나, 기존 산업시설의 구조와 기억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재해석돼 문화·첨단산업·상업·휴식 기능이 어우러진 복합 랜드마크로 탈바꿈한다. 산업유산을 지우는 개발이 아니라, 산업의 시간 위에 새로운 도시의 시간을 덧입히는 재생이다.

부지 전반에는 광장형 공원이 조성되고, 기존 공장동은 전시·체험·교육이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재구성된다. 청년문화센터를 중심으로 카페와 상업시설, 휴식·편의 공간이 유기적으로 배치돼 '방문–체류–소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간 구조가 형성된다.

낮에는 연구와 창작, 학습이 이뤄지고, 저녁에는 공연과 전시, 소규모 모임이 이어진다. 주말이면 시민과 근로자, 방문객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산업단지 안에서 문화가 소비되고 관계가 형성된다. 청년에게는 일과 문화가 결합된 생활 거점이, 시민에게는 닫혀 있던 산업단지로 들어오는 새로운 도시의 장이 열린다.

이 공간에는 산업의 미래도 함께 담긴다. 첨단반도체연구단지와 HAI(Human AI)센터를 중심으로 연구·실증 기반을 구축하고, 휴·폐업 공장 리모델링을 통해 중소·벤처기업 성장 공간을 마련한다. 여기에 구미산업화역사관(가칭) 조성이 연계돼 대한민국 산업화의 현장을 다음 세대와 공유하는 교육·문화 자산으로 확장될 전망이다.

△ 정주·환경·산업을 잇는 2조 원대 전환 프로젝트.
문화선도산단을 중심으로 구미 국가산업단지 전반의 환경 개선과 정주 인프라 확충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구미시는 산업단지 환경조성사업을 통해 총 1089억 원 규모의 환경개선 사업을 확정하고, 산업단지를 생산 중심 공간에서 생활 공간으로 전환하기 위한 물리적 기반을 단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공단동 일원에는 주차·편의시설 확충과 강변야구장 리모델링을 통한 열린 문화광장이 조성되며, 상모·사곡·임오 지역에는 다목적체육관이 들어선다. 산동 확장단지에는 수영장을 포함한 다목적체육관과 청년문화센터가 조성돼 체육·문화·커뮤니티 기능이 결합된 복합 인프라로 운영될 예정이다.
정주 여건 개선도 병행된다. 청년드림타워 조성을 통해 산업단지 근로자의 주거 수요를 흡수하고,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 호텔은 기업 방문객과 연구·비즈니스 인력의 체류 거점으로 활용된다. 산업단지는 출·퇴근 공간을 넘어 주거·업무·문화가 연결된 하나의 생활권으로 확장되고 있다.
여기에 도시재생혁신지구, 제2구미대교, 방산혁신클러스터, 반도체 특화단지, 이차전지 재사용 실증기반, 구미–군위 간 고속도로 등 굵직한 국책사업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추진되고 있다. 문화선도산단을 축으로 한 2조 원대 중·장기 종합 전환 프로젝트가 구미 국가산업단지 전반에서 현실화되며, 산업·도시·생활 구조를 동시에 재편하는 대전환이 본격화되고 있다.

△ 공모 이전부터 시작된 '선제적 준비'.
구미 문화선도산단 유치는 공모 이전부터 이뤄진 준비 과정의 연장선에서 추진됐다. 구미시는 2024년 9월 정부 종합계획 수립 단계부터 정책 방향을 검토하며 산업단지의 역사성과 함께 문화·정주 기능 강화를 필요성으로 제시해 왔다.
정부 계획 발표 이후에는 문화선도산단 지정을 목표로 내부 검토와 준비에 착수했고, 그 결과 2025년 3월 최종 선정으로 이어졌다. 발표평가 과정에서는 김장호 구미시장이 직접 산업단지의 현황과 향후 전환 방향을 설명했다. 서울·인천 등 광역지자체가 참여한 경쟁 구도 속에서 기초지자체장이 직접 발표에 참여한 점도 주목을 받았다.
구미시는 실무 부서를 중심으로 사업 구상과 추진 계획을 정리해 왔으며, 이러한 준비 과정이 문화선도산단 선정으로 연결됐다는 평가다.

△ Again 1969, 개척자의 방식으로.
구미시는 이번 문화선도산단을 국가1산단 조성 원년인 1969년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프로젝트로 규정한다. '어게인(Again) 1969'라는 키워드에는 산업화의 출발점에서 다시 한 번 도약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1969년 낙동강 모래밭 위에서 출발한 구미 국가산업단지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압축 성장사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지금 구미가 선택한 변화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산업화의 출발점에서 과감한 결단을 내렸던 그때처럼, 다시 한 번 '개척자의 방식'을 꺼내 드는 선택이다.
공장에 문화를 입히고, 회색 산업단지 위에 사람의 시간을 쌓는다. 산업유산을 지우는 개발이 아니라, 산업의 역사 위에 문화와 미래 산업이라는 새로운 시간을 겹쳐 올리는 재생이다. 생산과 효율 중심의 공간은 이제 생활과 관계, 창조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문화선도산단 전환은 국가산업단지의 기능과 방향을 재정립하는 출발점"이라며 "산업단지를 청년과 시민이 머물며 생활과 문화를 함께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 나가겠다"고 말했다.

맨땅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왔듯, 구미는 다시 한 번 처음처럼 길을 연다.
Again 1969.
구미 국가산업단지가 다시 선택한 구미만의 개척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