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전설’ 신치용 “잔머리 안 굴린 게 성공비결”[이헌재의 인생홈런]

선수 시절 신치용은 좋은 세터였다. 하지만 누가 봐도 특급이라고 할 만한 선수는 되지 못했다. 배구 명문인 성균관대에 진학했고, 1980년에는 잠시 태극마크를 달기도 했지만 주요 국제대회에 출전한 정도는 아니었다.
신치용 본인도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군대를 제대한 후 그가 여러 실업팀 중 한국전력공사(한전)에 입단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신치용은 “내가 나고 자란 곳이 경남 거제다. 한전에서 잠시 선수 생활을 하다가 곧 은퇴하고 평사원으로 전직하려 했다”라며 “당시 내 꿈은 시험을 봐서 과장 직함을 다는 것이었다. 한전 거제 지점장이 돼 안정적으로 살고 싶었다”라며 웃었다.

그는 성실한 코치였다. 1995년까지 무려 12년간 묵묵히 코치직을 수행했다. 그해 삼성화재가 배구단을 창단하면서 그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누구나 원하던 감독 자리를 제안받고도 그는 그리 내켜 하지 않았다. 신치용은 “당시만 해도 (공기업인) 한전은 평생 정년이 보장된 회사였다. 삼성은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이었지만 성적이 안 좋으면 한두 해 하고 잘릴 것이었기에 선뜻 결정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의 결심을 굳혀준 사람은 농구 선수 출신인 아내 전미애 씨였다. 전 씨는 “매일 배구로 시작해 배구로 끝내는 하루하루를 살지 않나. 제대로 지원해주는 팀에서 꿈을 한 번 현실로 만들어보라”고 조언했다. ‘배구 명가(名家)’ 삼성화재의 시작이었다.

삼성화재의 지원은 화끈했다. 삼성은 어느 분야에서건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는 문화가 있던 시절이었고, 배구단 창단을 주도한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은 승부욕에 관한 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었다. 세터 신영철을 시작으로 김세진, 신진식 등 당대의 최고 스타들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데려왔다. 1997년 처음 참가한 슈퍼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신치용의 삼성화재는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강팀으로 거듭났다.
신치용이 지휘봉을 잡은 동안 삼성화재는 모두 19차례 결승전 무대에 올라 16번이나 정상에 우뚝 섰다. 슈퍼리그에서 8회 우승했고, 2005년 프로 출범 후 챔피언결정전에서도 8회 우승했다. 대표팀을 지휘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했다.
감독 시절 그의 좌우명은 신한불란(信汗不亂)이었다. 땀을 믿으면 흔들림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선수들에게 무조건 많은 훈련을 시킨 건 아니다. 신 대표는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선수들에게 가르치려고 한 적이 없다. 다만 선수들이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려 했다”고 했다.

20년 가까이 최정상을 지킨 그가 말하는 명장(名將)의 비결은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 것”이다. 신치용은 “선수, 지도자를 해 온 50년 넘게 잔머리 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되면 무조건 그길로 갔다”라며 “그렇게 해야 절대 후회가 남지 않는다. 옳은 길을 가면 잠시 불편할 수는 있지만 결과는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지킨 또 하나의 원칙은 “감독이 돋보이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감독이 주인공이 되려 하는 순간 선수들의 마음이 돌아선다. 선수와 경쟁하는 감독이 되어서 안 된다”라며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선수들에게 맡겨야 한다. 선수가 마음이 우러나서 해야 훈련이건 경기건 100%가 나온다”고 했다.
선수들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그는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곤 했다. ‘팀워크’를 만들어 내려고 일부러 선수들을 더 혼내고, 엄하게 대하기도 했다는 것. 선수들끼리 모여서 감독 뒷담화를 하다 보면 자신들도 의식하지 못한채 하나로 뭉치곤 했다. 신치용은 “배구는 감독이 아닌 선수들이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선수들끼리 하나가 되면 된다. 감독은 외로운 사람이고, 감독 자리는 고독을 이겨내야 하는 자리”라고 했다.

감독은 선수들이 최선의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인 동시에 최선을 플레이를 고안해내는 사람이기도 해야 한다.
신치용은 “조훈현 같은 바둑 전설들은 모든 수를 복기한다고 하지 않나. 내 경우에는 한 세트 25점이 어떻게 났는지 모두 복기했다. 심지어는 다른 팀 경기를 복기한 적도 있다”라며 “그렇게 모든 경기가 머리 속에 들어가 있으면 결정적인 순간 어떤 작전을 써야 할 지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반복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움직임이 좋은 상태라면 작전 성공률이 높아진다”고 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신치용의 머리는 여전히 검은색이다. 흰머리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모발 역시 풍성하다. 이 때문에 그는 “머리 염색하셨어요”, “혹시 가발인가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는 “태어나서 한 번도 염색을 해 본 적이 없다. 아마 평생 잔머리를 쓰지 않고 살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며 웃었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그는 대표이사로 사는 요즘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매일 오전 5시가 되기 전 집이 있는 경기 용인 수지에서 출발해 출근하기 전 사우나를 한 시간 씩 한다.
걷는 걸 좋아하는 그에게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워 내에 있는 사무실은 ‘꿈의 직장’이다. 평일 오전과 오후 점검 삼아 넓은 공원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1만 보 걷기가 된다.
주말에는 인근 광교산을 오른다. 왕복 3, 4시간짜리 산행을 통해 땀을 흘리고 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신 대표는 “주말에 산을 타면서 기른 하체 힘으로 일주일을 버틴다. 가끔 지인들과 골프도 즐기는데 골프 역시 걷는 운동이라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에게 배구 코트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 신 대표는 언젠가 자신의 배구 인생을 총망라한 책을 써 볼 생각이다. 자신의 성공과 실패를 가감 없이 독자 및 후배들과 나누겠다는 생각이다. 또 국내 무대가 아닌 해외에서의 코트 복귀도 고려하고 있다. 그는 “국내 무대에서는 이미 제자들이 너무 잘해 주고 있다. 퇴직 후 기회가 된다면 몽골이나 캄보디아 같은 개발도상국에서 배구 지도 봉사를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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