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연의 인사이트 노트]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가치를 찾아라

김태현 기자 2026. 1. 1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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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AI는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일합니다. 하지만 회의실에 흐르는 미묘한 침묵의 의미, 보고서 행간에 숨은 고민은 여전히 읽지 못합니다. 바로 그 빈틈이, 여성 리더 당신이 꽃피울 무대입니다.

[우먼센스] 2026년,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가 밝았습니다. 역동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새해의 출발선에서, 저는 우리 시대의 가장 뜨거운 화두인 '인공지능(AI)'과 '여성 리더십'을 나란히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싶습니다. 언뜻 기술과 리더십은 가장 먼 단어처럼 보이지만, 사실 지금 이 순간 가장 운명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지금도 현장 곳곳에서 묵묵히 버텨내고 있는 여성 리더 여러분께 이 말씀부터 건네고 싶습니다.

"그동안, 정말 많이 애쓰셨습니다."

우리가 몸담아 온 조직은 태생적으로 남성 중심의 '군대식 위계'와 '속도전'이 지배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나를 따르라"는 식의 카리스마와 효율성은 리더십의 불문율이었지요. 그 견고한 성벽 안에서 여성 리더들은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를 낮추는 법을 먼저 배워야 했습니다. 프로답게 보이기 위해 감정을 숨겼고, 강해 보이기 위해 타고난 섬세함과 공감력은 잠시 접어두어야 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강점이 '물러터졌다'거나 '너무 감성적'이라는 말로 폄하되는 아픔도 감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게임의 룰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정답이 AI 시대를 맞아 근본부터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효율'의 왕좌가 무너지고, '감각'의 시대가 온다

AI가 불러온 거대한 지식 혁명은 "내 자리는 안전할까?"라는 막연한 불안과 "앞으로 어떤 사람이 살아남을까?"라는 인재상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과거 유능한 리더의 조건이었던 빈틈없는 논리적 분석, 상명하달식의 빠른 보고, 방대한 정보 처리 능력 등 이 '전통 영역'은 이제 AI가 인간보다 훨씬 더 빠르고 완벽하게 해냅니다. AI는 업무의 효율성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여놓았고, 우리가 알던 역량의 개념조차 바꿔놓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을 떠올려볼까요? '코딩'만이 4차 산업혁명의 구원자라며 너도나도 코딩 학원으로 몰려갔습니다. 하지만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그 믿음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인간이 며칠 밤을 새워 짤 코드를 AI는 단 몇 초 만에, 그것도 오류 없이 뱉어냅니다. 가장 안전한 성역이라 믿었던 기술의 영역이 가장 먼저 AI에게 자리를 내어준 것입니다.

이 거대한 지각변동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지금 '무엇(What)'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How)' 진화시켜 가느냐입니다. 파랑새 같은 유망 직종을 찾아 헤매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파랑새를 찾아 헤매고 다녔으나, 결국 파랑새는 집에 있었던 것처럼, 해답은 지금 내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내 일의 본질을 다시 규정하고 진화시키는 데 있습니다.

AI는 내 밥그릇을 뺏는 경쟁자가 아니라, 나를 빛내줄 '지렛대'

많은 분이 AI를 내 밥그릇을 위협하는 약탈자로 바라보며 두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비틀어보세요. AI는 우리를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기능'에서 해방시켜, 더 높은 차원의 '가치'로 비상하게 해주는 강력한 지렛대입니다. 물론, 제대로 알고 주도적으로 활용한다는 전제하에 말이죠.

법조계를 예로 들어볼까요? 과거의 유능한 변호사는 밤새워 판례를 검색하고 서면을 작성하는 '기능'에 시간을 쏟았습니다. 이제 그 일은 AI가 처리합니다. 그렇다면 변호사는 사라질까요? 아닙니다. 기능의 굴레에서 해방된 변호사는, 억울함에 손을 떠는 의뢰인의 눈을 바라보며 그 마음을 어루만지고, 재판부의 미묘한 심리를 읽어 판세를 뒤집는 '전략가'이자 '치유자'로 진화합니다.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AI가 차가운 데이터로 영상 판독과 생존 확률을 계산할 때, 의사는 환자의 삶의 의지를 북돋우고 가족들의 불안을 잠재우는 '따뜻한 조언자'가 됩니다. 학교에서는 지식 전달자가 아닌 잠재력을 깨우는 '멘토'로, 기업에서는 데이터 분석을 넘어 고객의 숨은 니즈를 읽어내는 '통찰자'로 이동합니다.

AI가 패턴과 계산, 지식과 정보의 영역을 맡을수록, 인간은 비로소 관계(Connection), 판단(Judgment), 공감(Empathy)이라는 고유의 영역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더 인간답고 본질적인 것들에 집중할 시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일의 품격이 차가운 '기술'에서 따뜻한 '인문(人文)'으로 넘어가는 이 거대한 전환점. AI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과 가장 인간적인 공감 능력이 경쟁력이 되는 이 시점은, 그동안 조직의 틈새를 메우며 유연한 소통을 해온 우리 여성 리더들에게 비로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의 무대입니다.

명함 속 '직함'을 버리고, 당신만의 '동사'를 찾아라

그렇다면 이 변화의 파도 위에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저는 "명함 속 직함 대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가치를 찾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마케팅 팀장입니다", "재무 책임자입니다"라는 소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습니다. 기존 '명사(Noun)'로 된 직함은 당신이 앉은 자리를 설명할 뿐, 당신이 만들어내는 변화와 가치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명사는 강물 한가운데 박힌 바위와 같습니다. 시대의 물살이 바뀌면 깎여 나가거나, 이끼가 끼어 도태될 뿐입니다. '은행원'이라는 명사에 갇혀 있으면 창구 업무가 사라질 때 내 존재 가치도 소멸한다고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당신의 업(業)의 가치를 '동사(Verb)'로 풀어 보세요. 어떤 동사로 설명할까 고민하다 보면, 구르는 돌처럼 가치를 찾아 이동합니다. 유연해지고, 방향이 생기며, 생각지 못한 방향에서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 중견기업의 여성 리더는 자신의 역할을 이렇게 바꿨습니다. 과거 "팀의 근태와 성과를 관리하는 관리자"에서 "AI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성원의 숨겨진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들의 강점을 연결해 시너지를 설계하는 코치"로요. 그가 바꾼 것은 직함이 아니라 자신을 설명하는 동사였습니다.

직군별로 구체적으로 상상해볼까요? 재무 담당자는 '숫자를 정리하는 사람(기능인)'에서 '기업의 리스크를 맥락적으로 읽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디자인하는 사람(가치 창출자)'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마케터는 '광고를 집행하는 사람'에서 '고객의 숨은 욕망을 해석하고 우리 브랜드와 고객의 삶을 잇는 사람'으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HR 담당자는 '급여와 채용을 관리하는 사람'에서 '조직의 문화를 북돋우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혁신을 싹틔우는 정원사'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자영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치킨집 사장님이 "나는 닭을 튀겨 파는 사람이다"라고 자신을 정의한다면, 로봇 팔이 튀김기 앞에 서는 순간 그는 설 자리를 잃습니다. 하지만 "나는 맛있는 음식으로 손님에게 위로와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다"라고 정의한다면 어떨까요? 닭을 튀기는 고된 노동은 로봇에게 맡기고, 그는 손님의 표정을 살피고, 더 아늑한 공간을 만들고, 단골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데 집중할 것입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의 가게는 더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공간이 됩니다.

요양보호사 또한 "나는 환자를 수발드는 사람이다"가 아니라 "나는 외로운 이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존엄을 지켜주는 사람이다"라고 사고할 때, AI 돌봄 로봇은 경쟁자가 아니라 내 서비스를 돕는 훌륭한 파트너가 됩니다.

AI는 수백 장의 보고서를 요약할 순 있지만, 그 보고서를 쓴 팀원의 행간에 숨은 고민은 읽지 못합니다. 데이터는 처리할 수 있어도, 회의실에 흐르는 미묘한 공기와 침묵의 의미는 감지하지 못합니다. 바로 그 빈틈, '맥락'과 '마음'이 있는 곳이 우리들이 이동할 자리입니다.

당신의 '공감'과 '섬세함'이 무기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사람을 살피고, 전체적인 맥락을 읽고, 유연하게 관계를 연결하는 능력. 우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이 역량은 사실 우리 여성들에게 전혀 낯선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우리가 알게 모르게 조직 안에서 발휘해왔던, 가장 잘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딱딱한 지시보다 부드러운 대화를 선호하고, 수직적 명령보다 수평적 공감을 중시하며, 결과의 숫자 이전에 과정의 맥락을 살폈던 당신의 그 '섬세함'. 과거 군대식 조직에서는 '약함'으로 오해받아 숨겨야 했던 그 기질이, 사실은 시대를 앞서간 무기였습니다.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흉내 낼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역량'이 당신 안에 이미 있었던 것입니다.

여성 리더 여러분, 이제는 당당하게 누구보다 주도적으로 AI 파도에 올라타십시오. '효율'과 '단순 기능'은 AI라는 유능한 비서에게 과감히 맡기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영역에서 AI를 가장 잘 쓰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내 분야의 AI 전문가는 엔지니어도 과학자도 아닌, 매일 그 일을 부딪치며 고민하는 바로 '당신'이어야 합니다.

AI에게 '기능'을 넘기고 남은 시간은 오롯이 '인간적인 역할'을 찾으십시요. 보고서의 행간을 읽어내고, 숫자 뒤에 가려진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흩어져 있는 아이디어와 사람을 유연하게 연결하십시오. 기존의 남성적 리더십의 공식이 깨진 틈을 여성적 리더십이 비집고 꽃피울 기회의 토양입니다.

오늘 밤, 잠들기 전 펜을 들어 당신의 일의 가치를 올리는 동사를 적어보시길 권합니다. '작성하다', '판매하다', '관리하다' 같은 기능적인 단어는 지워버리세요. 그 빈자리에 '~을 연결하다', '~에게 영감을 주다', '~을 해결하다', '~를 동기부여 하다', '~를 응원하다', '~를 위로하다' 같은 인간적인 동사를 채워 넣으십시오. 그렇게 찾아낸 동사들이 앞으로 당신을 지켜줄 가장 단단한 갑옷이자 우아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명함에 적힌 직함은 회사를 떠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지지만, 당신이 세상에 제공하는 가치,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의 '동사'는 영원히 당신의 서사로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AI 시대, 기능인으로 남아 서서히 대체되시겠습니까, 아니면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가치 창출자로 진화하시겠습니까? 그 답은 이제 여러분이 선택할 '동사'에 달려 있습니다. 가장 당신다운 방식으로 본질적이고 인간적인 가치를 향해 움직이고, 연결하고, 창조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억눌려왔던 당신의 진짜 인간적인 역량이 만개(滿開)할 시간입니다.

CREDIT INFO

김희연 전 LG디스플레이 전무.  은행원에서 시작해 증권사 IT 애널리스트를 거쳐 LG디스플레이 최초 여성 전무까지 오른 33년 경력의 리더십 전문가입니다. AI 시대 인간의 가치에 대한 통찰을 담은 '공감 지능 시대'를 출간했으며, 현재는 작가이자 강연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성과에서 조직의 성과로, 차가운 데이터에서 따뜻한 공감으로의 전환을 강조하는 그만의 리더십 철학을 전합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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