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시장의 선전포고 “급진적? 내 할 일 하겠다”

장필수 기자 2026. 1. 1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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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아닌 주변부 약자가 핵심 지지층… “극소수에 집중된 부야말로 급진적”
조란 맘다니 신임 뉴욕시장이 2026년 1월1일 미국 뉴욕시청 앞에서 열린 공식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읽던 중 미소 짓고 있다. AP 연합뉴스

“저는 수만 명의 사람들과 함께 서 있습니다. 동쪽 뉴욕의 이발소, 라과디아공항에 주차된 택시 안 대시보드에 놓인 휴대전화, 모트헤이븐의 병원과 엘바리오의 도서관에서 오랜 기간 방치됐던 수많은 시민, 안전화 차림의 건설노동자들, 온종일 일해 무릎이 아픈 할랄 음식 노점상들과 함께 서 있습니다.”

미국 뉴욕시 역사상 첫 무슬림 시장인 조란 맘다니(34)는 2026년 1월1일 “오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는 말로 취임사를 시작하자마자 그간 정치에서 배제돼왔던 “뉴요커”를 하나하나 언급했다. 민주사회주의자인 그는 이날 뉴욕시청 앞에서 열린 공식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기 전 이슬람 경전 쿠란에 왼손을 올리고 취임 선서를 했다. 역대 뉴욕시장은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했는데, 맘다니는 이러한 관행과 결별을 택했다. 취임 선서를 주재한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의원은 “부유층과 소수만을 위한 정부가 아닌 모두를 위한 정부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과 비전을 줬다”고 평가했다.

쿠란에 손 올리고 취임 선서

2021년 뉴욕주 하원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한 맘다니는 아프리카에서 온 이주민이다. 인도계 무슬림인 그는 우간다에서 태어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7살 때 부모를 따라 뉴욕으로 왔다. 이민 1.5세대인 그의 눈에 비친 뉴요커는 “브라이턴비치에 사는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로스빌에 사는 이탈리아인, 우드헤이븐에 사는 아일랜드 가족들”이었고 “세인트올번스에 사는 흑인들”과 “베이리지에 사는 팔레스타인계” 사람들이었다. 그가 지켜본 뉴요커들은 월스트리트를 걷는 백인이 아니라 뉴욕의 주변부를 맴돌았던 사회적 약자였다. 이들은 결국 정치 신인이던 맘다니의 핵심 지지층이 돼 그를 뉴욕시장 당선으로 이끌었다.

‘뉴욕은 누구의 것인가?’ 맘다니는 취임사의 상당 부분을 이 질문을 향한 답변으로 채웠다. 그는 “오랫동안 뉴욕시는 ‘뉴욕은 부유하고 인맥이 넓은 사람들, 권력자들의 관심을 끌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들의 것’이라는 단순한 대답을 해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제·사회적 불평등 해소와 도시 내 다양성을 추구했던 이전 시장(빌 더블라지오·… 2014~2021년, 데이비드 딩킨스 1990~1993년)들을 언급하며 “(이들은) 뉴욕이 지하철을 운행하고 공원을 정리하는 사람, 비리아니와 소고기 패티, 피카냐와 파스트라미 샌드위치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도시가 돼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수년간, 우리는 그 유산을 되살릴 것”이라고 못박았다.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오른쪽)이 2026년 1월1일 미국 뉴욕시청 앞에서 열린 공식 취임식에 앞서 이슬람 경전 쿠란에 왼손을 올리고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뉴욕의 주인”을 위해 추진할 정책 역시 취임사에 포함됐다. 맘다니는 고물가와 양극화에 시달리는 뉴욕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시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주저 없이 권력을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부자 증세를 통한 무상보육, 무상교통, 주택 임대료 동결 등의 정책을 제시하며 “민주사회주의자로 선출됐기에 민주사회주의자로서 통치하겠다. 급진주의자로 낙인찍힐까 두려워 원칙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급진적이라는 표현은 극소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면서도 다수에게는 필수품을 박탈하는 사회체계에서나 들어맞는 표현”이라는 버니 샌더스 의원의 발언을 첨언하기도 했다.

‘부자 증세’로 불평등 해결 강조

“공산주의자”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비난에 더해 기존 정치세력으로부터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뉴욕 시민은 2025년 11월 선거에서 맘다니를 택했다. 적극적인 재정 정책과 행정력으로 불평등을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높은 점수를 받았고, 무엇보다 맘다니가 품은 이민자·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이 새 정치를 꿈꾸는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미국의 최대 강점으로 꼽혔던 다양성이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으로 파괴되면서, 맘다니 당선을 이에 따른 반발로 보는 평가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자를 범죄를 일으키고 국가 안보 및 경제에 해로움을 끼치는 존재로 묘사하지만, 맘다니는 민주주의와 평화에 필요한 핵심적 주체로 바라보고 있다.

맘다니는 트럼프에게 반감을 가진 유권자의 표심을 정확히 읽고 있다. 그는 “뉴욕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돌보는 사람이라고 인지하는 것과 같다”며 “나 같은 무슬림 소년이 일요일마다 (유대인 전통 음식인) 훈제연어를 올린 베이글을 먹을 수 있는 도시가 어디에 있겠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도시가 시민에게 돌아가야 작은 욕구도 충족될 수 있고, 아픈 사람도 건강해질 수 있으면 외로운 사람들이 뉴욕을 고향처럼 느낄 수 있다. 이것을 증명하려 한다”는 말로 취임사를 마무리했다.

뉴욕시장 맘다니는 벌써 트럼프 대통령의 대항마로 몸집을 키우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2026년 1월3일 새벽(현지시각)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미국으로 납치한 상황을 두고 둘은 정면으로 부딪쳤다. 맘다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해 이번 조치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전했다”며 “(이번 군사작전은) 주권국가에 대한 일방적 공격이자 연방법과 국제법을 위반한 전쟁 행위”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맘다니는 마두로 대통령 부부가 뉴욕에 도착한 상황을 놓고 “뉴욕 시민들의 일상에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 차원에서 필요한 조치를 하고 있다”고도 했다.

“마두로 납치는 전쟁 행위”

이제 막 취임한 맘다니가 취임 1주년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전한 모습을 놓고 미국 내 평가는 엇갈린다. 보수 진영은 ‘사회주의자가 마두로 같은 마약·테러 용의자를 두둔한다’는 비난을, 진보 진영은 ‘트럼프에게 공개적으로 맞선 첫 번째 시험대였다’는 긍정적 평가를 내놓았다. 시작부터 충돌한 두 사람은 당분간 정치적으로 대립 구도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백인우월주의·반이민·기독교를 지지하는 트럼프와 다문화주의자이자 무슬림 이주민인 맘다니는 뼛속부터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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