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타고 가는 북한산성…외국인도 반한 ‘K등산 맛집’[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북한산은 원래 ‘삼각산’이라고 불렸다. 최고봉인 백운대, 인수봉, 만경봉이 깎아지른듯 우뚝 서서 삼각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가면서 남긴 김상헌의 시에도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삼각산과 한강수는 서울을 상징한다. 삼각산이 북한산으로 본격적으로 불리게 된 것은 1711년(숙종 37년) 북한산성을 짓게 되면서부터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은 왜 북한산성을 지었을까. 새해 첫 산행으로 ‘북한산성 13성문 일주’에 도전했다.
●북한산성 13성문 종주
새해 첫 산행을 했다. 장장 9시간 동안 총 16.7km의 성곽길을 걸어 북한산성의 13성문을 일주하는 산행이다. 영하 10도의 날씨에 길고, 어려운 코스였지만 새해를 맞아 심기일전하기엔 좋은 기회였다.






북한산성 13성문 종주는 인증명소로도 유명하다. 블랙야크 100대 명산 챌린지, 11템플투어, 12봉우리 챌린지 등 총 20여 개의 인증을 받을 수 있는 ‘인증맛집’이다. 그래서 성문에 도착할 때마다, 봉우리에 오를 때마다, 사찰에 들를 때마다 휴대폰을 꺼내 GPS좌표를 기록하고, 인증샷을 찍으며 부지런히 산행을 한다.



나한봉에 있는 치성(雉城)에 올라서면 서울의 아파트 단지는 물론 한강, 여의도, 김포, 인천, 파주와 북한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양도성을 노리는 어떤 적군도 감시할 수 있는 그야말로 최적의 전망대다.

북한산성은 천혜의 화강암 봉우리를 성벽으로 연결한 요새다. 해발 100m의 낮은 계곡부터 760m의 능선부까지 성벽이 쌓여 있다. 낮은 곳에는 돌로 성벽을 높게 쌓은 반면, 능선부에는 성벽없이 여장(女墻)만 있는 곳이 있다. 네모난 구멍을 통해 적을 감시하거나 화살을 쏠 수 있는 시설물이다. 문수봉, 백운봉 같은 높은 봉우리는 자체가 성벽이다. 곳곳에 경비병들의 초소인 성랑(城廊) 유적지가 143곳이나 있다.



해발 4000m가 넘는 키나발루 산이 있는 나라여서 그런지 말레이시아 관광객들은 북한산의 아름다운 풍경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그들에게 싸온 김밥을 맛볼 것을 권하자 무척 즐거워했다. 외국인 등산객들이 SNS에서 꼭 해보길 추천하는 것 중에는 산에서 한국인 등산객들이 인심좋게 나눠주는 음식을 맛보는 체험이라고 한다.


영하 10도의 날씨. 평일의 북한산. 한국인 등산객보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더 많이 만났다. 이른바 ‘K등산’이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이 된 현장이다. 북한산성13성문 종주는 체력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도전이었다. 또한 인증샷을 찍기 위해 장갑을 벗을 때마다 손이 시려웠다. 그러나 알프스도 아닌데 서울에서 산을 9시간 넘게 탈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기도 하다. 그것도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는 명산이 바로 지척에 있다는 사실은 축복이다.

●왜 북한산성을 지었나
북한산성은 처절한 반성이 담긴 성이다. 임진왜란 때 임금이 의주로 피난을 떠나고, 병자호란 때는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했다가 항복하고 삼전도의 굴욕을 맞이해야 했다. 비참한 역사를 다시는 겪지 않으리라는 다짐으로 지은 성이다.



그런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강화도와 남한산성은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냈다. 남한산성은 들판에 고립돼 있어 적에게 포위당하면 구원병은 커녕 식량보급도 어려웠다. 강화도는 해전에 익숙한 왜적들에겐 난공불락이 아니었다. 또한 남한산성은 한강을 건너야 하고, 강화도는 바다를 건너야 했다. 왕실과 관료는 배를 타고 피난갈 수 있었지만, 배를 타고 피난갈 수 없던 백성들은 철저하게 유린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양란 이후 효종 때부터 북한산성을 새롭게 쌓아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됐다. 북한산성의 입지는 산세가 험하고 높아 적이 포위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커다란 잇점이었다. ‘한사람이 관문을 지키면 만 사람이 열지 못하는 지형’이기 때문이었다.


숙종은 1711년 “남한산은 나루를 건너기 어려우며, 강화도는 해구(海寇)에게는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오직 북한산(北漢山) 만은 지극히 가까운 까닭으로 백성과 함께 들어가 지키려고 한다(欲與民共守)”며 축성을 결정했다.

숙종이 북한산성에 대해 ‘백성과 함께 지키겠다’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전의 전란에서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홀로 도망갔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산성이다.
●승병들이 지은 북한산성
북한산성은 1711년 4월3일부터 10월19일까지 단 6개월만에 축성됐다. 험준한 산 속에 길이 11.6km, 내부 면적 5.3㎢이나 되는 산성을 쌓는데 어떻게 여섯달 밖에 안걸렸을까?
답은 승병들이었다. 조선왕실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 맹활약했던 승병들을 동원해 북한산성을 지었다. 팔도에서 올라온 승병들은 돌을 쌓아 성벽을 지었고, 북한산성이 지어진 후에는 수비까지 담당했다. 성내 군사 요충지에는 사찰 13곳이 건립됐다. 바로 승영사찰(僧營寺刹)이다. 승군을 주둔시키고, 무기를 보관하는 창고를 두어 산성의 수비와 성곽 관리를 하는 병영의 역할을 하는 절이다. 승대장 팔도도총섭이 머무는 중흥사를 중심으로 태고사, 노적사, 서암사, 경흥사, 국녕사, 부왕사, 진광사, 보국사, 용암사 등의 승영사찰이 세워졌다.





| ●맛집 |
| 추운 날 산행을 마친 후에는 따뜻한 음식이 그립니다. 연신내역 부근 시장골목 안에 있는 ‘원조두꺼비집 불오징어’는 50년 전통의 노포다. 오삼불고기 맛집이다. 철판 위에 통통한 오징어와 쑥산, 대파, 양배추가 산처럼 쌓여 나온다. 은은하게 퍼지는 쑥갓 향과 양념의 맛이 어우러진 불오징어는 감칠맛이 느껴진다. 하이라이트는 볶음밥이다. 오징어를 몇개 남긴 철판에 밥을 붓고, 매콤한 양념과 비벼먹는다. 볶음밥은 밑바닥이 살짝 누르게 먹어야 제맛이다. |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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