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영화, 영화라는 삶 《하나 그리고 둘》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2026. 1. 1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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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양의 걸작…4K 리마스터링 재개봉
명작은 늙지 않는다…인생의 보편성을 닮은 걸작의 가치

(시사저널=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명작의 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바래는 것이 아니라 날로 선명해진다. 그리고 그 모양은 언제나 인생의 보편성을 닮았다. 삶은 영화를, 영화는 삶을 동경하며 서로 포개어진다. 대만 영화 뉴웨이브의 대표 기수인 에드워드 양의 연출작 《하나 그리고 둘》(2000)은 새천년의 포문을 연 작품이자 오래도록 사랑받아온 명작이다.

영화 《하나 그리고 둘》 포스터 ⓒ에무필름즈

뒷모습이 말하는 것들

《해탄적일천》(1983), 《타이페이 스토리》(1985), 《공포분자》(1986),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 등을 통해 급변하는 대만의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내면과 일상을 포착해온 감독의 유작으로도 유명하다. 한국에서 첫 재개봉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칸국제영화제가 매년 고전영화를 복원해 소개하는 부문인 칸클래식에서 4K 리마스터링한 버전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칸영화제가 공개한 선정 이유처럼 '현대 아시아 영화의 걸작 중 하나'라는 데 이견을 달기 어려운 이 작품을 극장에서 다시 혹은 처음 만나기에 적기인 셈이다.

결혼식과 장례식 사이,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한 사람의 죽음 사이. 《하나 그리고 둘》이 지긋하게 바라보는 지점이다. 그 안에 서로 다른 나이대를 살아가는 한 가족이 있다. 영화는 가족의 의식에 특별한 의미를 담아 극적인 사건으로 포착하는 대신, 이들이 살아가는 시간의 일부로 슬며시 포함시킨다. 외려 아무런 이벤트가 일어나지 않는 하루의 평범한 순간들이 여기에선 더욱 중요해 보인다.

가족을 부양하고 직업적 고충을 해결해야 하는 어른들이 저마다의 사정으로 짓눌리며 숨기는 것들이 점점 늘어가는 사이, 8세 양양(조너선 창)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고 싶다. 건물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 여자의 선글라스 낀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방금 전 행동이 실례라는 아빠 NJ(오념진)의 타이름에 양양이 대꾸한다. "아줌마가 기분이 왜 안 좋은지 궁금했어요. 뒷모습만 보면 알 수 없잖아요." 급기야 이 천진한 소년은 자신의 앞모습만을, 그러므로 영원히 절반의 진실만을 믿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NJ는 그런 아들의 작은 손에 필름 카메라를 쥐여준다. 그렇게 사람들의 뒷모습만을 찍는 꼬마 철학자이자 사진가가 탄생한다.

카메라를 쥔 소년의 모습은 《하나 그리고 둘》의 대표 이미지다. 세상의 작동 원리를 결코 한눈에 볼 수 없는 어른들이 그럼에도 매일 쏟아지는 삶의 난제들을 짐짓 능숙한 척 헤쳐 나가려는 사이, 소년은 나머지 반쪽을 집요하고도 부지런하게 수집한다. 주지하듯 양양과 그의 카메라는 에드워드 양 감독과 《하나 그리고 둘》의 분신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볼 수 없어 놓쳤던 순간들, 자신을 둘러싼 상황 이면에서 벌어지고 있던 것을 대신 포착해 주는 존재가 되고자 함은 이 영화의 부드러운 의지다. 각자가 보는 것에 영화의 포착까지 합쳐야 우리는 그제야 삶과 가장 비슷한 한 조각이라도 제대로 눈과 마음에 쥘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의 문제는 일견 복잡하면서도 그저 평범하다. 삼촌의 결혼식날 의식을 잃고 쓰러진 할머니가 누워있는 방은 모두가 찾는 고해의 장소다. 서로에게 결코 전해지지 않을 말들이 방의 침묵을 간간이 깨운다. 양양의 누나 팅팅(켈리 리)은 자신이 깜빡하고 내다버리지 않은 쓰레기를 할머니가 처리하려다 쓰러졌을지 모른다는 죄책감을 고백한다. 때마침 친구의 남자친구를 좋아하는 마음까지 피어오른 팅팅은 생기 넘치다가도 금세 움츠러든다. 아빠 NJ의 회사에서는 사업을 위한 해외 파트너 포섭이 한창이다. 일본 도쿄로 출장을 떠난 NJ는 오해로 얼룩진 채 소식이 끊겼던 첫사랑과 재회해 함께 과거를 돌이킨다. 엄마 민민(금연령)은 어머니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것을 기점으로 돌연 삶의 공포와 허무에 짓눌리기 시작한다. 급기야 그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쳐 집을 나가버린다.

영화 《하나 그리고 둘》 스틸컷 ⓒ에무필름즈

인간의 수명을 세 배로 늘려주는 것,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의 원제는 《일일(一一, Yi Yi)》이다. 하나하나, 중국어로는 개개인을 뜻하기도 하는 단어다. 가족을 구성하는 각 개인의 순간들을 통해 인생을 담으려는 영화의 마음을 함축한 단어다. 어리석은 실수와 해결하기 힘든 어려움들 사이에서, 때론 과거를 그리워하고 미래를 아득하게 두려워하면서도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렇게 한 사람이 통과하는 순간들이 크게는 모두의 삶과 닮아있다는 순환의 감각이 영화 전반에 드리워 있다. 도쿄에서 첫사랑과 과거를 회상하는 NJ의 목소리가 타이베이에 있는 팅팅의 상황과 나란히 겹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NJ는 분명 자신의 고유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건 그 시각 비슷한 상황들을 통과하며 아릿한 첫사랑의 실패를 경험하는 팅팅의 모습이다. 다른 시간대의 두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대한 순환의 일부가 된다.

삶이란 어느 날 벌어진 극적인 사건이 우리를 더 나은 일상이나 깨달음으로 데려다놓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는 일이라는 분명한 깨달음은 《하나 그리고 둘》이 우리에게 주는 '뒷모습의 사진'이다. 결혼식이 지루해 칭얼대는 양양을 데리고 나와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사주고, 만족해하는 아이 곁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NJ의 모습을 담은 별것 아닌 짧은 신 하나가 오래 마음에 머무르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의 일상은 온통 그런 순간들로 채워진다. 매일 아침 "한결같은 건 불확실함밖에 없는" 하루를 두려워하며 일어나지만 동시에 "매일이 처음"이기에 처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영화가 일러준 반쪽의 진실이자 삶을 살아가는 데 적당히 필요한 용기다.

이토록 현실적인 영화는 왜 필요할까. 그저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면 될 일이 아닌가. 같은 의문은 《하나 그리고 둘》 속에서 현실을 닮은 영화의 필요와 만족감을 이야기하는 또래 소년의 곁에서 팅팅도 떠올린다. 소년이 말한다. "우리 삼촌이 이런 말을 하셨어. 영화가 생겨난 후로 인간의 수명이 세 배로 늘었다고. 우리가 영화를 통해 두 배의 삶을 더 경험한다는 거지." 내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모양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시간을 내어주는 시간. 그렇게 영화의 삶을 통과하면서 우리의 영혼은 분명 더욱 넓고 풍요로워진다. 좀 더 충만한 영역으로 향한다. "사람들이 모르는 걸 알려주고,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양양의 마지막 고백까지를 경유한 에드워드 양 감독의 바람은 그렇게 완성된다.

문득 다시 건강해진 듯한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팅팅이 조용히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은 이 영화로서는 드문 환상성을 지닌다. 꿈일 것이 확실해 더 애틋한 화면 속에서 팅팅은 "왜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건가요?"라고 나지막이 묻는다. 그러곤 이내 스스로 답을 찾아 말한다. "제가 보는 세상은 너무 아름다워요." 그 조용한 확신과 가느다란 믿음은 《하나 그리고 둘》이 꾸는 꿈의 정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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