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끼어들자 알아서 양보, 국내 자율차 기술 미국 90%…실증 실적은 10%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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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율주행차 어디까지 왔나
“와! 이런 세상이 올 줄이야”. 목적지만 설정하면 자동차가 스스로 운전하는 세상을 맞이한 소비자의 반응이다. 좁은 주차장에서 출구를 찾아 능숙하게 빠져나가고, 사람처럼 차량 흐름을 감지해 비보호 좌회전을 하거나 양보·방어 운전을 하는 모습에 입이 떡 벌어진다. 도착하면 당연히 주차까지. 지난해 11월 한국에 상륙한 미국 전기차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능 ‘감독형 완전자율주행(FSD)’을 처음 경험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자동차 시장에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는 감탄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판매량 기준 세계 3위인 한국의 자동차는 어떨까. 차원이 다른 세상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5일 오후, 실증차에 올랐다. 운전석엔 아무도 타지 않았다. 조수석에 안전요원이 탑승하지만, 위급 상황시 시스템을 끄는 역할을 할 뿐 운전엔 개입하지 않는다. 안전요원이 출발을 알리자 거대한 SUV가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곧이어 나타나는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는 코스인데, 스스로 깜빡이를 켜고 속도를 줄여 횡단보도 앞에서 정확하게 정차했다. 보행자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움직인다.

주행 질감만 놓고 보면 지난해 11월 국내에 상륙한 테슬라의 감독형 완전자율주행(FSD)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약 3㎞의 짧은 실증 구간을 무한 반복하는 형태여서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스스로 목적지까지 운전하고, 도착해서는 주차까지 하는 FSD와의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다. 박중희 라이드플럭스 대표는 “보다 안전한 자율주행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도로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예외상황 데이터를 확보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완성차를 만드는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라이드플럭스·마스오토와 같은 스타트업이 자율주행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자율주행업계에서는 국내 자율주행 기술을 레벨2(부분 자동화)와 레벨3(조건부 자동화) 중간 정도로 본다. 미국 자동차공학회(SAE)는 자율주행 수준을 5단계로 세분화했는데, 레벨2까지는 ‘주행보조’ 레벨3부터는 ‘자율주행’으로 본다. 테슬라 FSD는 공식적으로는 레벨2지만, 운전대에서 손을 떼도 되는 만큼 레벨3에 더 가깝다.

3월부터는 KGM과 손잡고 경기도 화성시에서 ‘레벨4 자율주행 카셰어링’ 실증과 서비스 운행에 들어간다. 트럭 자율주행 스타트업인 마스오토는 15t 이상의 대형 트럭에 레벨3 수준의 자율주행 시스템인 ‘마스파일럿’을 얹어 지금까지 200만㎞의 자율주행 실적으로 달성했다. 마스오토는 현재 육군과 주요 유통·물류업체와 협력하고 있다. 마스파일럿은 안전요원이 탑승하지만 주행은 모두 AI가 수행한다. 이 외에도 오토노머스에이투지·스트라드비전 등이 레벨3~4 수준의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
SAE의 자율주행 단계로만 보면 국내 기업의 자율주행 기술은 미국·중국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자율주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테슬라 FSD와 웨이모·바이두의 로보택시는 이미 3~4년 전 상용화한 반면 국내는 여전히 실증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업계와 전문가는 미국·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3~4년 정도로 본다. 김승기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국내 기술도 하드웨어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왔지만, 자율주행을 고도화할 수 있는 실증 실적이 미국·중국과는 상대가 안 된다”고 말했다.
실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내 전체 기업의 자율주행 누적 실증거리는 1306만㎞, 자율주행차 운영 대수는 132대다. 반면 미국은 웨이모의 누적 주행거리만 1억6000만㎞다. 웨이모는 현재 2500대를 운용하고 있다. 중국 역시 바이두 한 회사의 누적 주행거리만 1억㎞다. 운행 대수 1000대다. 국내 기업 전체의 실증거리가 미국이나 중국의 한 회사 실증 실적의 10분의 1도 안되는 것이다. 심지어 테슬라 FSD의 누적 주행 데이터는 지난해 3분기 기준 60억 마일(약 96억㎞)에 이른다.


정부도 최근 이를 인지하고 실증 노선·구간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5일 미국을 방문한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미국·중국에 많이 뒤처져 있기 때문에 자율주행에 대한 획기적인 지원(을 하거나), 뭔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해 국내 자율주행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을 중점 추진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당장 광주광역시를 ‘자율주행 시범도시’로 조성하는 등 100대 이상의 자율주행차가 동시에 다니는 실증 도시·구역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27년까지 레벨4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자율주행업계는 규제 완화를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이미 로보택시 등을 상용화한 미국·중국을 따라잡으려면 차량 지원 등 보다 강력한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중국이 이미 레벨4 단계의 데이터를 수집하면서 자율주행을 고도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뒤늦게 레벨4를 상용화하면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광복 KADIF 단장은 “자율주행은 자동차산업 한 분야에 머무는 기술이 아니다”라며 “가깝게는 물류산업부터 국방, 농기계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장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만의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글로벌 로보택시 시장만 해도 지난해 약 30억 달러에서 2034년 1900억 달러(약 280조원) 규모로 연평균 51.4% 성장할 전망이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2035년이면 미국 택시 시장 매출의 절반을 로보택시가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자칫 이 시장을 고스란히 미국·중국에 내줄 수 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자율주행은 미래 모빌리티에 있어 일종의 신경망인데 우리가 미국·중국산을 가져다 쓰면 한국은 제조업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며 “자율주행을 단순히 기업에만 맡길 게 아니라 국가적인 당면 과제로 접근해 조 단위 이상의 투자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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