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거리가 ‘쓰레기 거리’로... 상가 텅빈 신촌, 겨울에도 악취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지하철 2호선 이대역 1번 출구에서 신촌 방향으로 250m 가까이 이어지는 대로변은 곳곳이 쓰레기 더미였다. ‘임대 문의’가 붙은 빈 상가 앞에 치킨 박스, 먹다 남은 컵라면 용기, 커피가 담긴 일회용 플라스틱 컵, 굳은 떡볶이 양념이 묻은 종이 용기가 키 높이까지 쌓였다.

근처 상가 앞은 바로 옆 고깃집에서 내놓은 탄 불판 수십 개와 빈 소주병 박스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한 70대 노인이 쓰레기 더미를 옮겨가며 폐지를 골라갔다. 연세대 4학년 조현우(24)씨는 “누가 신촌·이대 거리를 ‘청춘의 거리’라고 했느냐”며 “쓰레기 더미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학교 근처를 다니기 싫다”고 했다.

명동·압구정동과 함께 서울 ‘3대 황금 상권’이라고 불리던 신촌·이대 주요 대로변이 ‘쓰레기 하치장’이 되고 있다. 신촌·이대 일대 상권은 지난 2008년 이화여대가 학내에 영화관·편의점·식당이 모인 멀티플렉스를 조성하고, 2010년 연세대가 신입생을 송도 국제캠퍼스로 보내기로 하면서 쇠락하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온라인 주문·택배·배달 문화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소비 트렌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직격탄을 맞았다.
공실(空室)로 점포 없이 텅 비어 있는 상가가 늘자 주변 관광객이나 행인들이 이곳에 쓰레기를 잇따라 무단 투기하기 시작했다. 본지 취재팀이 지난달 31일부터 최근까지 이곳을 찾았더니 쓰레기 더미들이 점점 더 쌓이고 있었다. 그러나 치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겨울에도 악취를 풍길 정도로 쓰레기가 쌓이는 건 임차인을 구하지 못한 건물주들이 건물 소유권을 부동산 신탁회사에 넘기면서 ‘쓰레기 수거’ 책임 주체가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집합건물법에 따르면 신탁회사가 관리하는 건물 앞의 쓰레기 수거 책임은 임차인들로 구성된 ‘관리단’에 있다. 하지만 임차인이 없어 공실이 장기화되다 보니 관리단 자체를 구성하기 힘든 곳이 대부분이다. 구청이 신탁회사에 ‘청결 유지 명령’을 내릴 수는 있다. 그러나 이를 어겼을 때 과태료를 부과받는 건 건물주가 아닌 관리단이라 실효성이 없다. 전문가들은 “상권 침체 문제로 임차인이 없을 경우엔 건물 앞 미화 관리 책임을 누구에게 두느냐를 두고 법적 공백이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인근 상인들은 “안 그래도 장사가 안 돼 힘든데, 쓰레기까지 쌓이니 정말로 ‘죽은 거리’가 돼버렸다”며 울상을 지었다. 쓰레기가 쌓인 공실 인근에서 편의점 사장 A씨는 “지난 9월부터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해 점점 심해져 건물주에게 수차례 민원을 넣었지만 ‘관리 책임은 신탁회사에 있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했다. 또 다른 공실 주변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B씨는 “하도 쓰레기 냄새가 심해서 며칠 전 빈 건물 정문에 ‘쓰레기 무단 투기 금지’ 안내판을 직접 붙였다”고 했다.

서대문구는 “사유지인 개인 상가 앞에 있는 쓰레기는 상가 측이 치워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쓰레기가 하도 많다 보니 구청은 종량제 봉투에 담긴 쓰레기를 우선 수거하고 있다”며 “문제가 심각해지면 건물 앞 쓰레기들을 수거한 뒤 신탁회사에 사후 청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쓰레기가 쌓이는 공간에 구청이 쓰레기통을 설치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일부 상인은 쓰레기통을 점포 근처에 놓을 경우 손님들이 기피할 것이라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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