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아시아의 2035년 모습

2026. 1. 10.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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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
한국 전쟁이 끝난 이듬해 영국 외무상 앤서니 이든 경(Sir Anthony Eden)은 내각에 다음과 같은 비망록을 전했다. 제목은 ‘한국 전쟁 후 동아시아에서 영국과 서방의 정책’이었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한국 전쟁의 종결과 함께 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팽창은 끝이 났다. 러시아는 도박에 실패해서 힘을 잃었기 때문에 이제는 러시아의 남진에 관하여 우려를 할 필요가 없다. 이제 새로운 위협은 무엇인가? 중국은 약체이고 당분간은 산적한 국내 문제에 몰두하여야 하기 때문에 대외적인 팽창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든 경은 일본과 중국의 밀착을 경계했다. ‘일본의 산업 능력, 기술과 경영 등이 중국의 노동력과 시장과 결부하게 된다면 영국은 물론 서방 측에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다. 대책은 무엇인가? 중국을 국제적으로 고립시켜야 한다. 그리고 일본을 서방 측이 한 축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 서방은 일본이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어 정치와 경제 등 여러 영역에서 서방과 통합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의 비망록은 여러 측면에서 한심한 이야기였다.

「 10년 전 『아시아 2025』 기고에서
‘과거의부터의 해방’ 비전 제시
현실은 내 희망과 다르게 흘러
10년후 미래 모습도 걱정 앞서

오래전에 읽은 이 문서에 관한 기억이 떠오른 것은 10여년 전에 요청을 받은 과제 하나 때문이었다. 지난 2014년 영국 런던의 ‘아시아 하우스(Asia House)’는 이른바 아시아와 관련된 ‘저명인사(global leaders)’ 25인에게 10년 후의 아시아의 모습에 대한 글을 부탁했었다. 이 글은 『아시아(Asia 2025)』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필자도 가당치 않게 이 ‘저명인사’ 중의 하나로 기고 청탁을 받았다. 몇 차례 사양하다가 써보고 싶은 생각이 난 것은 바로 오래전에 읽은 이 문서가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이든 경은 저명한 정치인으로, 특히 국제 관계의 전문가로 인정 받는 사람이었다. 처칠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될 인물로도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인물이 한국 전쟁 같은 국제적인 대참사와 그 이후에 대한 예측을 이 정도 밖에 못했나’라고 생각하면 의아할 정도다.

한국 전쟁은 전투의 현장이 한반도에 국한되었지만 또 하나의 세계 전쟁이었다. 동서 간의 냉전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 이 전쟁을 계기로 세계는 마침내 정치와 경제 그리고 군사적으로 두 개의 세계로 나뉘게 되었다. 영·미를 비롯해 서방 측은 다시 군비를 강화하며 징병제를 실시했고 서독의 재무장이 현안으로 부상했다. 말하자면 대전이 끝난 지 불과 5년 만에 세계는 또다시 새로운 인류 차원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그래도 한때 세계의 패권자 지위와 역할을 누리던 영국의 지도자가 이런 시기에 이런 정도의 이야기나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더구나 일본과 중국이 연합해 일종의 블록을 형성한다는 것은 그 당시 상황에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나는 내 글을 현실성이 크지 않더라도 조금 이상주의적인 비전을 갖고 써볼 생각이었다. 나는 2025년의 시점에서 지난 10년간을 뒤돌아보는 것으로 글 골격을 잡았다. 제목은 거창하게 ‘과거로부터의 해방: 미래를 보기 위한 회고(Freedom from the Past: Looking Back to Look Ahead)’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당시 중국은 이미 경제와 군사 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었고 이것은 기존의 패권국인 미국과의 갈등을 시사하고 있었다. 동아시아 내에는 고질적인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과 일본이 중심이 된 영토 분쟁들도 그대로 있었다. 지난 10년간 동아시아는 난제들이 이상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닐지라도 더 좋은 미래를 향하여 나라들과 특히 사람들 사이에서 교류와 협력이 활발하도록 관리된 상황이 되었다. 과거사 문제는 지난 전쟁의 승자와 패자의 구분이 특정한 나라나 민족의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주의나 신념의 문제로 정리되었다. 즉, 잘못된 군사주의, 침략주의에 대한 민주, 자유, 평화의 승리로 모든 나라가 함께 승전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구시대의 저주인 ‘부국강병(富國強兵)’의 이념을 대체한 것은 ‘부민선린(富民善隣)’의 노선이었다. 경제는 국가 간의 협력과 민간 주도의 개방, 창의성, 학문의 자유의 실현으로 계속 향상하였다. 특히 한·중·일 세 나라는 국가보다 사람들의 공동체로서 매사에 교류가 심화돼 있다. 사람들은 결국 경제적인 번영이나 부패의 척결, 혹은 강대국의 건설이 국가 중심의 야심 찬 계획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억압과 강제 그리고 왜곡이 없이 대중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닫는다. 단지 북한은 아직 국제사회에 동참을 꺼리고 있지만 조금씩이라도 교류와 협력은 이어가고 있다.’

이 글이 쓴지 만 10년이 지났다. 세상은 내가 희망적으로 상정한 것과는 매우 다르게 흘러왔다. 아시아도 새로운 미래가 아닌 과거의 반복에 갇힌 것 같다. 이제는 2035년을 걱정하는 생각이 앞선다. 그렇지만 현실이 어려운 상황일수록 이상주의적인 비전을 잃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국도 그저 힘만으로 세계의 지도적인 위치로 부상한 것이 아니다. 국제 연맹, 대서양 현장, 네 가지의 자유, 국제연합 등…. 어려운 시기 새로운 세계 질서를 모색한 것은 이제 잊혀지고 있는 것인가.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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