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 은도 자고 나면 오른다…새해 '금속 랠리' 과열 조짐

배현정 2026. 1. 10.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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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 투자 열풍
“매회 완판입니다.”

금을 예금처럼 맡기고 이자까지 받을 수 있는 ‘골드 신탁’에 강남 자산가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하나은행에서 출시된 이후 9회차 연속 조기 완판되며 ‘품절 대란’을 빚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가입을 위해 방문했다가 한도 소진으로 돌아서는 고객이 많았다”며 “수요가 커 올해부터 판매 한도를 확대했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회차당 판매 한도를 40억원에서 50억원으로 늘렸고, 향후 최대 100억원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 상품은 24K 순금 30g 이상을 맡기면 만기 시 금 실물 원금과 함께 연 1.5% 이자를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은행은 맡긴 금을 유동화해 수익을 내고, 만기에는 금 실물 또는 현금과 이자를 지급한다.

실물 금속에 대한 투자 열기가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다. ‘품귀 현상’으로 중단됐던 소형 골드바 판매가 NH농협은행을 시작으로 재개됐다. 이 은행은 공급사인 한국금거래소 등의 물량 부족으로 지난해 10월 말부터 100g 이상 골드바만 판매해왔으나, 최근 3.75, 10g 단위 제품 판매를 다시 시작했다. 신한은행도 19일부터 10g 이상 골드바 판매를 재개할 예정이다. 금값 상승 흐름이 이어지면서 개인투자자의 매수 열기도 한층 달아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시중은행 ‘품절 대란’ 골드 신탁 한도 확대
골드러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해 말 급락으로 한풀 꺾였던 금과 은은 새해 벽두부터 반등하며 투자자들의 시선을 다시 끌어당기고 있다. 불확실성이 짙어질수록 가장 먼저 주목받는 실물 자산의 특성이 다시 부각되는 양상이다.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체포·압송에 나서며 국제 정세에 긴장이 번지자 글로벌 금융시장은 다시 경계 모드로 전환됐다. 8일(현지시간) 금 현물 가격은 온스당 4460.70달러로 마감했다. 연초 이후 상승률은 3.21%다. 금 외 귀금속의 오름폭은 더 가팔랐다. 같은 기간 은(5.8%), 백금(6.11%), 팔라듐(6.99%) 등이 일제히 상승하며 강세 흐름에 동참했다.

그래픽=이윤채 기자
이번 상승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귀금속 강세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지난해 국제 금 가격은 64% 상승하며 1979년 이후 최대 연간 상승률을 기록했다. 은의 상승세는 더 가팔랐다. 은 가격은 142% 급등해 1980년 ‘은 파동’ 당시 고점(온스당 48.7달러)을 45년 만에 넘어섰다. 국제 정세 불안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랠리가 단기 반등에 그칠지 아니면 구조적 강세 국면으로 이어질지를 두고 시장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시장은 아직 구조적 강세 쪽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JP모건의 나타샤 카네바 글로벌 원자재 전략 총괄은 최근 보고서에서 “금 가격 랠리는 직선적 흐름은 아니었지만, 구조적으로 가격을 끌어올리는 추세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평가했다. 중앙은행의 매수 확대와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기대, 달러 약세에 지정학·무역 갈등까지 겹치며 귀금속 전반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JP모건은 금 가격이 2026년 온스당 5055달러, 2027년 말에는 5400달러까지 오를 가능성을 제시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금값 목표치를 4900달러로 상향했고, 도이치방크 역시 중앙은행 매수와 ETF 수요 회복을 근거로 2026년 4950달러, 2027년에는 5000달러 상회를 전망했다.

금 랠리가 확산하는 가운데, 새해 금속 강세의 중심에는 은이 있다. 뉴욕상업거래소(COMEX)에서 은 선물 은 지난 2일(현지시간) 온스당 71.02달러에서 8일 75.14달러로 6% 가까이 뛰었다. 전자기판·센서·태양광 셀 등 고정밀 산업에 필수적인 전도성 금속이라는 점에서 산업 수요 확대와 공급 병목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다. 베스트셀러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저자인 로버트 가요사키는 은이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며, 올해 온스당 2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조규원 금 전략가도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재생에너지 확산으로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고, 각국의 전략적 비축 움직임으로 공급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핵심 광물 지정과 중국의 수출 관리 강화 역시 은 가격의 구조적 강세 기대를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구리도 강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닥터 코퍼(Dr. Copper)’로 불리는 구리는 경기 선행지표이자 AI 인프라의 핵심 원자재로, 지난해 런던금속거래소

기준 41.7% 올랐다. 희소 금속인 백금과 팔라듐도 각각 127.6%, 81.5% 급등하며 다른 자산군의 성과를 압도했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금리 인하 기대 속에서 지난해 원자재 시장은 귀금속과 산업 금속이 상승을 주도했다”며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의 경계가 흐려진 ‘에브리싱 랠리’ 국면이 실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금 64% 뛸 때 은 142% 폭등
그래픽=이윤채 기자
ETF도 원자재 투자에 대한 개인 접근성을 크게 넓혔다. 금값 급등이 이어진 지난해 ACE KRX금현물 ETF에는 2조3780억원이 유입됐다. 금 현물 ETF는 국내 금 현물 가격을 그대로 추종하면서 운용 보수가 낮다는 점이 강점이다. KRX금시장(한국거래소 금 현물시장)은 증권 계좌를 통해 1g 단위 매매가 가능하고 양도소득세와 부가가치세가 면제돼 절세에 유리하다. 다만 국내 금 가격이 국제 시세보다 높은 ‘김치 프리미엄’은 변수다. 국제 금 시세를 직접 추종하려면 금선물(H) ETF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조규원 전략가는 “지난해 20%에 육박했던 프리미엄이 현재는 1% 수준으로 낮아져, 현시점에서는 금 실물이나 KRX 금시장을 통한 거래 부담이 낮다”고 말했다.

다만 금속 시장의 변동성 확대는 유의해야 한다. 지난해 말 사상 최고가를 찍은 뒤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지며 가격이 급변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금 현물 가격은 지난해 12월 29일 장중 온스당 4581.30달러까지 올랐다가 하루 만에 4.59% 급락해 4343.60달러로 마감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증거금 인상 이후 매물이 출회되면서 은·구리·팔라듐 등 산업용 금속과 광산주도 동반 약세를 보였다.

특히 단기 급등한 은에 대한 경계감은 더 크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은이 밈 주식처럼 거래되고 있다”고 전하며 투기적 거래 양상을 지적했다. 황병진 연구원도 “금은 온스당 5000달러를 목표로 포트폴리오 안에서 계속 담아갈 수 있는 자산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할 것”이라면서도 “은이나 백금 등 여타 금속은 테마 자체는 강세가 유지되더라도 변동성은 상당히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반기에는 원자재 강세의 중심이 에너지로 이동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금속 랠리 가운데 지난해 국제 유가는 공급 과잉과 수요 감소 영향으로 18% 넘게 뒷걸음질 쳤다. 최진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에너지 섹터는 금 가격을 18~20개월 후행하는 특성이 있다”며 “상반기 또는 3분기까지는 금이 주도 자산 역할을 하겠지만, 하반기에는 유동성의 후행 효과로 주도 자산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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