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원 성폭력’ 의혹 과열 보도…“피해자다움 편견 키울 수 있어”

최근 정희원 저속노화연구소 대표에게 제기된 성폭력 혐의와 관련해 일부 언론의 선정적인 과열 보도로 ‘피해자다움 편견’ 등 성폭력 통념을 강화·확산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언경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은 9일 한겨레에 “정 대표가 유명인이고 성폭력 혐의를 받는 데 대한 뉴스 가치는 있기 때문에 언론이 관련 보도를 할 수 있다”면서도 “성폭력 혐의를 제기한 사람이 누구인지 드러날 수 있는 정보까지 제공하는 건 언론윤리에 맞지 않다”고 했다. 명확한 사실관계가 드러나지 않은 채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는 무죄추정 원칙은 물론 고소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 공개를 최소화해 피해자 보호 원칙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7일 연예전문매체 ‘디스패치’는 ㄱ씨의 얼굴 부분만 흐리게 처리한 사진을 공개한 데 이어, 그가 졸업한 대학 이름도 밝혔다. ㄱ씨를 법률대리하는 법무법인 혜석은 “디스패치 보도 뒤 1시간 만에 ㄱ씨가 졸업한 대학교의 졸업생 익명게시판에 ㄱ씨의 얼굴이 노출됐다”고 했다.
디스패치 보도 다음날인 8일 방송된 문화방송(MBC) 시사교양 프로그램 ‘실화탐사대’도 관련 사건을 보도한 약 25분 동안 총 9회에 걸쳐 ㄱ씨의 얼굴 등을 흐림 처리하는 방식으로 방송에 내보냈다. 실화탐사대 제작진은 정 대표 인터뷰 발언을 통해 ㄱ씨가 졸업한 대학·학과와 현재 다니는 대학원까지 공개했다. 9일 현재도 ㄱ씨의 얼굴이 드러난 사진을 소셜미디어(SNS) 등 온라인 공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언경 뭉클 소장은 “디지털 기술발전을 감안했을 때 언론이 (ㄱ씨의) 신분이 드러나기 쉽다는 걸 미리 인식하고 최선을 다해 노출시키지 않아야 한다. 얼굴을 가렸다는 걸로 책임을 면피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한국기자협회와 언론단체 등이 만든 ‘성폭력·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이나 국가인권위원회의 ‘성범죄 보도 권고 기준’ 등 가이드라인은 피해자·피의자의 인권 보장을 강조한다. 특히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이는 사건 사실관계가 다 드러나지 않은 경우에도 지켜야 할 원칙이다. ‘여성이 남성을 유혹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식의 성폭력 통념이 여전히 강한 사회에서, 자칫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끼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이 때문에 각종 가이드라인은 언론이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가해자·피해자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세세하게 전하면서 사건의 심각성을 희석하고 ‘개인 간 문제’, ‘구경거리’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도 경계하고 있다.
은수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언론이 팩트를 전달하는 데 있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한다. 일부 언론 보도는 ‘진짜 피해자라면 이럴 리 없다’는 프레임을 부추기며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성희롱·성폭력 피해자들은 ‘피해자다움’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내면화해서 신고 전 자기검열을 강하게 할 때가 많다”며 “성폭력 피해를 신고한 사람을 ‘공격’하거나 ‘가십거리’로 소비하게 만드는 방식의 보도는 다른 피해자들의 자기검열을 강화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정 대표 쪽에서 제공한 일부 자료만을 토대로 ‘성폭력은 없었다’는 단정적 표현을 쓴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언론이 정 대표가 제공한 자료와 주장을 당연히 다룰 순 있다. 하지만 ‘성폭력은 아니다’라며 단정한 뒤, 신고한 여성을 인격적으로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방식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다. 권 사무처장은 “사람들이 메신저만으로 소통하는 건 아니라서 언론이 얻은 정보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신고한 여성의 주장을 함께 검증하지 않고서 ‘여성이 거짓말한 것’이라는 인식을 주면 다른 성폭력 사건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문제적”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비판·우려에 대해 문화방송 쪽은 한겨레에 “특별히 밝힐 입장이 없다”는 실화탐사대 제작진 입장을 전해왔다. 디스패치 쪽도 한겨레 질의에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정 대표는 ㄱ씨를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신고했고, 이후 공갈미수·주거침입 등 혐의를 추가로 고소했다. ㄱ씨는 지난해 12월 정 대표를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 무고, 명예훼손, 스토킹처벌법 위반, 저작권법 위반 등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은 각 고소 건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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