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통일을 고민하고 평화를 이야기하는 지역 꿈꾸며” [지역에 사니다]
‘평화 주권’ 핵심가치로 시민들 뭉쳐

'창녕평화너머'의 정식 단체명은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창녕지부'다. 1년 전 이름은 '창녕겨레하나'였다. 남북 통일·교류를 기치로 11년 전 만들어진 이 단체 김희식(72) 대표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전형적인 통일·교류 관련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제가 사람들과 만나면서 남북 이야기를 잘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것보다 창녕 이야기를 많이 하죠. 특히 선거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데, 저는 보수 일색인 이곳에서 다른 표가 최소 35%는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생각이 달라도 서로 대화를 하려고 하겠죠. 정치적 입장이 달라도 서로 의식을 하고 견제를 하려면 그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
창녕에서 하는 통일운동
그의 말대로 창녕군의 보수정당 쏠림은 심각하다. 단적으로 창녕군의회 전체 11석 중 10석이 현재 국민의힘 소속이다. 참고로, 지난 10년간 창녕지역 대선과 총선, 군수선거에서 보수정당 외 득표율은 대부분 30%를 넘지 않았다. 하지만, 2018년 군수선거 때와 2024년 총선 때는 당시 민주당 후보 득표율이 31%를 넘었다.
그 정도로 하고, 과연 창녕에서 하는 통일운동은 어떤 양상일까?
김연숙(61) 창녕평화너머 사무국장이 활동을 하면서 감동했던 순간을 먼저 전했다.
"강연회나 영화상영 같은 걸 하다 보면 문득문득 놀란다니까요. 창녕엔 훌륭한 분들이 참 많은 거 같아요."
"구체적 사례가 있나요?" 이렇게 물었더니 친일파 규명 작업 선구자인 고 임종국 선생 추모 강연 때를 언급했다. 2024년과 2025년 연이어 강연이 있었다.

김연숙 국장 이야기가 계속됐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임종국 선생이 창녕읍에서 태어나셨더라고요. 그래서 작년과 재작년 선생 관련 대중강연도 두 차례 했어요. 그런데 평소에는 만날 수 없던 분들이 100명도 넘게 오셨어요. 특히, 영산면 분들이 많았어요."
영산면은 경남에서 1919년 기미년 3.1만세운동이 가장 먼저 일어났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반일 반외세 운동의 역사가 깊은 곳이다.
김 국장 말대로 임종국 선생은 1929년 창녕읍에서 태어났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의 친일파 연구에는 창녕에서 살았던 아버지 임문호가 포함됐고, 연구가 시작된 지점도 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밝히는 일이었다는 점이다.

어떤 단체인가
그 자리에 모인 창녕 시민들은 그대로 헤어지지 않았다. 임종국 선생의 생애를 듣고 생가터에 작은 비석이라도 만들자는 의견이 모였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지연되고 있지만 과제로 남아 있는 상태다.
임종국 선생 추모가 창녕평화너머 활동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김 국장은 "반일운동, 반외세 운동은 창녕평화너머가 지향하는 전쟁반대, 남북 평화·통일운동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우리 단체는 2009년 10월에 '우리겨레 하나되기 경남본부 밀양창녕지부'로 출발했어요."
우리 사회의 분단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통한 통일의 기운을 형성하고, 평화통일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취지였다.
"2014년 2월에는 창녕지부를 분리해 '창녕겨레하나'를 만들었죠.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면서 남북교류가 급격히 냉각될 때였죠. 마침, 2014년 일본 아베체제에서 일본의 재무장이 시작됐고, 재무장 반대운동도 벌였어요. 이 운동은 위안부합의 반대와 소녀상 건립, '노아베' 촛불, 강제동원 해법반대 범국민운동으로 확장됐어요."
우리겨레하나되기 밀양창녕지부부터 지금의 창녕평화너머에 이르기까지 10년 세월이 마치 100년처럼 부침을 거듭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양상은 이 나라 분단 현실을 극복하려는 교류협력, 통일운동의 부침을 반영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에 남북협상, 북미협상이 열리면서 다시 분위기가 좋아졌어요. 그때는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재개 범국민운동'이 진행됐죠. 창녕에서도 어려운 조건 속에서 남북교류를 복원하자는 열기가 있었어요.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남북 교류·협력은 중단되고, 우리는 '우리는 무엇을 하나', 혹은 '무엇을 평가해야 하나'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됐어요. 통일운동의 규모와 영향력은 현저히 줄고, 겨레하나는 단체와 운동의 전환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어요. 결국, 전국적으로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로 전환을 하게 됐고, 우리도 2025년 1월부터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창녕지부'로 활동하고 있는 거죠."
김연숙 국장은 "창녕평화너머는 '평화주권'을 핵심가치로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행동'을 조직하고, 함께 배우며 대안을 만들어가는 반전평화, 자주통일 운동단체"라는 점을 강조했다.

평화이야기
"회원들 면면을 소개해주실까요?"
"처음엔 회원들이 10명을 조금 넘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30명이 넘어요. 지금 대표는 김희식 선생님이시고요. 회원들은 50대부터 70대까지 주로 농민들이 많고 노동조합 활동하시는 분들, 사업가나 자영업자들 다양하시죠. 특히 남북교류가 활발할 때 들어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연중 주된 사업이나 활동은 어떤 게 있나요?"
"평화와 통일, 남북교류에 대한 강연회와 영화상영회는 매년 해왔어요. 작년 7월에는 처음으로 '평화학교'를 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계엄세력 실체와 미국', '트럼프 관세정책과 전쟁' 강의와 토론을 했죠. 이 행사는 앞으로도 계속할 계획입니다."
"활동하시면서 창녕이라는 지역, 창녕사람들과는 어떻게 어울리시나요?"

김희식 대표
다시 김희식 대표의 이야기다.
"1980년대부터 농민운동을 했어요. 창녕군농민회 회장도 했고. 주변에서 '미국이 싫어도 우짜겠노. 힘이 없으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라는 게 저는 싫었어요. 내가 힘이 없어서 시키는 대로 하는 건 몰라도, 내 아들까지 그렇게 만들어서야 되겠나 싶었어요. 그래서 2010년 너머 밀양창녕겨레하나에 들어가 통일운동을 시작했어요. 우리가 힘을 기르는 건 남북통일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지금까지 10년 넘게 하고 있는데 작지만 변화가 있어요. 처음엔 '빨갱이' 소리도 참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들어도 기분이 안 나빠요. 핏대 세워서 뭐라카던 분들도 지금은 분위기가 다르거든요. 북한에 대한 생각, 미국에 대한 생각이 그만큼 변했다는 거겠죠."
"앞으로 단체의 계획은 뭡니까?"
"어떻게 됐든 선거만 하면 보수 일색이 이곳에서 다른 표가 35%는 나와야 안 되겠나 싶어요. 그래야, 대화가 되고, 정치공간에서도 최소한의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지 않겠어요? 그게 우리 단체가 하는 대중강연에도 사람들이 더 많이 올 거고, 이 단체가 잘 되는 길이겠죠."
/이일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