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뿐인데” ‘보태보태병’ 부추기는 ‘돌잔치 스드메’···저출생 시대 역설?

박채연·백민정·강한들 기자 2026. 1. 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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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인천의 한 컨벤센터에 마련된 돌상과 아이의 모습. 이나영씨 제공

요즘 ‘돌준맘(돌잔치 준비하는 엄마)’들은 선배인 ‘돌끝맘(돌잔치 끝낸 엄마)’들로부터 “‘돌잔치 베뉴(장소·venue)’는 적어도 6개월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고 배운다. 스냅(사진) 촬영은 카메라와 아이폰 중 무엇으로 하는 게 좋은지, 드레스는 어떻게 해야 할지 등 챙겨야 할 게 많기 때문이다. 사실상 결혼식 준비를 방불케 할 정도다. 눈코 뜰 새 없이 준비하다 보면 어느새 아이는 첫 생일을 맞이한다.

최근 돌잔치를 놓고 이른바 결혼식의 ‘스드메(스튜디오촬영·드레스·메이크업의 줄임말)’ 준비만큼 힘들다는 얘기가 나온다. 코로나19 유행기 팍팍했던 주머니 사정에 직계가족 정도만 불러 식사하는 것으로 갈음했던 돌잔치가 다시 집안의 ‘성대한 행사’가 되고 있다.

우선 돌잔치를 준비하는 부모들은 SNS에 집중한다. SNS에서 ‘돌잔치’ ‘돌끝맘’ 같은 단어를 검색하면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부모와 아기가 풍성한 꽃과 음식으로 차려진 돌잔칫상을 뒤에 둔 채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영상이 쏟아진다. 올해 8월 첫 아이의 돌잔치를 계획하고 있는 장모씨(38)는 “SNS를 보면 요즘 또래 엄마들이 어떻게 돌잔치를 하는지 알 수 있다”며 “SNS처럼 아주 좋게는 못하더라도 형편이 되는 선에선 최대한 해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형편이 어떻든 아이는 자란다. 모든 아이가 맞이하는 돌에 우리 아이만 부족한 잔치를 벌이기 미안한 것이 부모 마음이다. 생애 딱 한 번 있는 돌이라는 점에서 모든 부모는 제 자식이 눈에 밟힌다. 이 심리를 아는 업체들은 가격에 ‘돌잔치 프리미엄’을 붙인다.

경향신문이 만난 돌준맘·돌끝맘들은 돌잔치가 ‘제2의 결혼식’ 같다고 입을 모았다. 부모들은 “많이 비싸죠”라면서도 최대한 좋은 베뉴, 드레스, 스냅촬영 등을 준비하고 있었다.

베뉴·헤메·스냅 작가·드레스까지…‘제2의 결혼식’된 돌잔치
지난 6일 서울 강서구의 한 돌잔치 업체에 ‘돌잡이 세트’ 예시가 마련되어 있다. 백민정 기자

지난 6일 찾은 서울 강서구의 A 돌잔치 베뉴 업체에는 ‘뷰 맛집’이라던 돌끝맘들의 블로그 후기대로 상담실 통창 너머로 탁 트인 한강 경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직원은 메인 홀 4개와 뷔페 공간을 비롯해 수유실, 피팅룸, 대기실 등을 보여줬다. 계약하지 않으면 사진을 찍는 것은 불가능했다.

실제 오는 5월30일 토요일 돌잔치를 문의해봤다. 1부(오전 11시30분 시작), 2부(오후 3시 시작) 시간대는 이미 가득 차 있었다. 3부(오후 6시30분 시작) 시간대도 홀 1개만 남아있었다. “돌 6개월 전엔 베뉴 예약을 해야 한다”는 돌끝맘들의 조언은 사실이었다. 일찍부터 돌잔치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2022년과 2024년 두 아이의 돌잔치를 했던 박선민씨(36)는 “베뉴를 10개월 전부터 알아봤다”며 “인기 있는 베뉴나 유명한 호텔은 예약이 빨리 찬다”고 말했다.

‘팔선고시’라는 말도 있다. 서울 신라호텔 내 중식당인 팔선은 돌준맘들에게 인기가 많아 여기를 예약하는 게 ‘고시’라고 불릴 만큼 예약이 쉽지 않다. 인터넷에선 인기 있는 돌잔치 베뉴를 대리 예약해준다는 업체들까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8일 인스타그램에 ‘돌 드레스’, ‘돌준맘’, ‘돌끝맘’ 등 키워드를 검색한 모습. 인스타그램 캡처

베뉴 예약은 시작일 뿐이다. 돌잔칫상을 꾸며줄 ‘돌잔치 디렉팅’, 부모와 아이의 드레스, 헤어 및 메이크업(헤메), 그리고 스냅 사진촬영 업체를 정해야 한다.

일부 베뉴 업체들은 제휴 업체들을 제시한다. 돌잔칫상이나 스냅 등을 제휴 업체만 이용하게 하는 식이다. A업체는 돌잔칫상, 돌잡이 용품, 포토테이블 사진인화 및 성장 동영상 등을 모두 포함하는 90만원짜리 ‘돌상 패키지’를 필수 상품으로 제시했다. 다른 업체를 활용하더라도 비용 할인은 따로 없었다.

다만 A업체는 드레스나 헤메, 스냅 제휴업체를 소개해주면서도 ‘필수 계약 상품’으로 설정하진 않았다. 드레스나 헤메 제휴업체는 A업체 내에 함께 차려져 있었다.

드레스 업체를 정하고 나면 돌잔치 한 달 전쯤 ‘피팅’을 하러 간다. 엄마나 아이의 드레스를 입어볼 수 있는 시간과 드레스의 개수가 한정된 경우가 많다. 돌잔치 당일 아이와 부모를 도와줄 ‘헬퍼’를 고용할지, 손님들에게 어떤 답례품을 제공할지 등 모두 부모가 고민해야 하는 것들이다.

돌잔치 한 번에 1000만원까지?…“평균 300만원은 들어”
지난 6일 한 육아카페에 올라온 돌잔치 관련 게시물. 네이버 카페 캡처

경향신문이 10명의 돌준맘·돌끝맘들을 인터뷰해 보니 돌잔치 총비용은 150만~550만원으로 다양했다. 헤메나 스냅을 모두 선택하지 않으면 150만원 정도로도 가능했지만, 평균 300만원 정도 들었다. 호텔에서 진행하는 돌잔치는 최대 550만원까지 올랐다. 온라인 육아 카페에선 ‘호텔 돌잔치에 1000만원 썼다‘는 후기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지난 7일 방문한 서울 중구의 B호텔은 10인 기준 코스요리를 포함해, 제휴 업체에서 제공하는 기본 돌잔칫상과 아기 한복 대여, 포토테이블 등을 합해 230만원을 제시했다. 다른 업체를 이용해도 가격은 고정됐다.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이라 차감은 안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7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호텔 연회장에서 상담사가 돌 상차림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백민정 기자

돌잔칫상은 ‘옵션’을 붙일수록 가격이 수십만원 뛰었다. ‘기본 제공’은 1단 조화에 과일과 케이크 모형, 실물 떡 3종류 및 돌잡이 용품 세트 등이 포함된다. 2단 조화를 선택하면 하면 22만원이 추가됐다. 기본에서 ‘전통’이나 ‘웨스턴’으로 돌잔칫상 종류를 바꾸면 11만~33만원을 더 내야했다. 포토테이블도 액자나 장식이 많아지는 ‘이벤트 포토테이블’을 하면 33만원이 더 든다. ‘제휴 업체 할인’은 없다.

B호텔이 제시하는 스냅 제휴업체는 55만원부터 120만원까지를 비용으로 제시했다. 앨범과 함께 원본과 보정본 사진을 더 주는 ‘앨범형’의 경우 ‘베이직’보다 10만원 더 비쌌다. 전속작가가 찍을지, 대표작가가 찍을지에 따라 15만~20만원 차이가 났다. ‘너무 비싸다’고 고민할 시간도 없다. 이 업체는 이미 5월 예약이 거의 다 차 있었다. 또 다른 호텔에서 돌잔치를 한 C씨(36)는 “돌잔치도 결혼식처럼 옵션이 계속 붙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돌잔칫상뿐 아니라 헤메나 스냅을 제휴 업체에서만 해야 하는 곳도 있었다. 정모씨(33)는 “부모 입장에선 여러 개 알아보기 힘들어서 그냥 제휴업체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자신이 운영하는 꽃집에서 직접 돌잔치를 준비했던 D씨(35)는 “이 직업이 아니었다면 어쩔 수 없이 업체를 껴서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가격은 상향 평준화…엄마들은 ‘댓글 알바’까지

불투명한 가격 정보로 사회문제가 돼 온 ‘결혼식 스드메’와 달리 돌잔치는 비교적 가격이 공개돼 있었다. 그런데도 옵션이 붙으면서 예측한 것보다 돈을 더 써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이나영씨(31)는 “가격을 확실하게 알려면 직접 가서 상담해야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더라”며 “홈페이지에 적혀있는 가격이 있어도 할인 혜택이나 옵션 추가금은 확실하게 안 나와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방문한 서울 강서구 한 돌잔치 업체에서 안내한 각종 할인 이벤트 내용. 백민정 기자

다수의 업체는 할인을 조건으로 엄마들에게 ‘댓글 알바’를 권한다. 육아 카페에 댓글 10~50개를 달거나 SNS에 홍보글을 3개씩 올리면 일인당 식대에서 1000~3000원씩 할인해주는 식이다. 최모씨(37)는 “돌잔치를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여기 계약했는데 좋더라’는 글을 쓰려니 난감했다”며 “소비자를 활용해 홍보하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호텔에서는 연회권을 묶어 팔기도 했다. 백승호씨(32)는 “연회권을 사면 레스토랑 할인이 되는데, 그래야 (비용이) 더 싸진다”며 “일회성으로 이용하는 사람에게 호텔을 더 이용하라는 거니까 상술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결혼식과 마찬가지로 ‘돌잔치 프리미엄’이 있다고 생각했다. 백씨는 “예쁘고 트렌디한 스타일은 비싸고, 이상하다 싶은 것은 저렴했다”며 “돌상도 현금가로 59만원을 받았는데, 과일이랑 떡만 먹을 수 있고 나머지는 다 재활용이었다”고 말했다. D씨는 “돌잔치 전문 메이크업 업체 비용이 30만원을 넘었다”며 “출장비와 질을 고려했을 때 고가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나영씨는 “돌잔치는 육아 때문에 알아볼 시간이 더 없으니까 가격 자체가 상향 평준화돼 있어도 그냥 업체 권유를 따르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모씨는 “하루하루 달라지는 아이의 모습을 담고 싶고 한 해 동안 잘 컸다는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건드리는 시장”이라며 “이 심리를 이용해 가격이 설정되면서 거품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아이만 못 해줄 수 없지’에 강해지는 ‘보태보태병’…SNS 속 흐려지는 돌잔치 본질
인천의 한 컨벤센터에 돌잡이 용품이 마련된 모습. 이나영씨 제공

전문가들은 ‘돌잔치 프리미엄’ 역시 저출생이 낳은 소비 현상의 한 단면이라고 지적한다. 아이 수가 줄면서 한 아이에게 자원이 집중되고 돌잔치 역시 사교육비와 유사한 소비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부모들이 아이에게 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해주고 싶다는 욕망이 돌잔치 같은 의례적 소비에 투영된다”고 말했다.

이 욕망에 SNS가 더해져 ‘돌잔치 평균치’는 더 높아졌다. 장씨는 “SNS에서 좋은 것을 보고 나면 다른 것은 별로 안 좋아 보이는 견물생심도 있다”며 “이전엔 내 옆집만 봤다면 이젠 (SNS로) 가장 높은 수준의 돌잔치도 보게 되니까 소비가 더 부추겨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육아 카페 이용자는 “결국 돌잔치도 ‘보태보태병(’여기서 조금만 더 보태면‘ 하다가 예산보다 훨씬 비싼 소비를 하게 되는 것)에 걸리게 될 거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돌잔치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는 자조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150만원쯤 들여 돌잔치를 한 김모씨(36)는 “잘 자란 걸 축복하는 자리보다는 보여주기식, 사진찍기용 같아 돌잔치 본질이 흐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돌잔체 업체의 과소 공급 문제를 풀어줘 소비자의 선택지를 넓혀줄 필요가 있다”며 “소비자들이 스스로 ‘이게 나한테 필요한가’ 등 정보를 선별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이나 캠페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채연 기자 applaud@kyunghyang.com, 백민정 기자 mj100@kyunghyang.com,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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