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천사가 된 존 윅의 포근한 코미디, 영화 ‘굿 포츈’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백수진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178번째 레터는 7일 개봉한 영화 ‘굿 포츈’입니다. 미국의 유명 코미디 배우 아지즈 안사리의 연출 데뷔작으로, 안사리가 각본과 주연까지 직접 맡았습니다. 여기에 ‘존 윅’의 액션 스타 키아누 리브스가 초짜 천사 가브리엘 역을 맡아 뜻밖의 귀여움을 뽐냅니다. 우스꽝스러운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리브스의 진지하고 심각한 얼굴이 코미디를 한층 극대화하는데요. 지난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꼽은 ‘2025년 최고의 영화’에 포함되기도 했답니다. 현대판 ‘크리스마스 캐럴’ 같은 이야기로, 새해를 산뜻하게 시작하고 싶은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영화 속, 인간 세계에서 활동하는 천사들은 마치 공무원 조직처럼 서열이 정해져 있습니다. 주인공 가브리엘(키아누 리브스)은 말단 중의 말단, 하급 천사인데요. 그가 맡은 일이라고는 운전 중에 휴대전화를 보는 사람들을 단속하는 것뿐. 운전 중 딴짓을 하는 사람의 어깨를 살짝 건드리면, 운전자가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다시 운전에 집중하죠. 커다란 날개를 단 상급 천사들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거나, 자연재해를 막는 등 멋들어진 일을 하는 동안, 가브리엘이 하는 일은 겨우 ‘운전 중 휴대전화 단속’뿐. 바쁘기만 하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지겨운 일을 반복하면서 가브리엘은 조금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됩니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인도계 이민자 아지(아지즈 안사리). 사고를 당할 뻔한 아지를 구해 준 뒤, 가브리엘은 그의 고된 삶을 지켜보게 되는데요. 아지는 앱을 통해 심부름을 대행하거나, 음식 배달을 하는 플랫폼 노동자입니다. 다큐멘터리 PD를 꿈꾸며 미국에 왔지만, 학자금 대출 때문에 허덕이며 “아메리칸 드림은 죽었다”고 말하는 염세적인 캐릭터죠. 하루 종일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녀도, 집세조차 마련하지 못해 주차장을 전전하며 차에서 잠을 자는 신세입니다. 주연 겸 감독을 맡은 안사리는 직접 배달 일을 해보고, 배달 기사들을 인터뷰하며 이들의 경험을 ‘웃프게’ 녹여냈습니다.
가브리엘은 절망에 빠진 아지를 구원하기 위해, 금수저 벤처 투자자 제프(세스 로건)와 그의 인생을 잠시 바꿔주기로 결심합니다. 아지에게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교훈을 주고 싶었던 거죠. 하지만 백만장자의 삶을 살게 된 아지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원래 인생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합니다. 익숙한 ‘왕자와 거지’ 이야기를 살짝 비틀어, 돈이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현실을 풍자하죠. 급기야 지나친 오지랖의 대가로 가브리엘은 천사에서 인간으로 강등되고,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몸소 깨닫게 됩니다. ‘역지사지’라는 다소 뻔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하지만, 천사의 시선으로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비추며 공감과 웃음을 끌어냅니다.

아지와 제프, 가브리엘까지. 세 사람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선, 아지가 자신의 삶도 충분히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요. 한 번 부자의 삶에 맛들인 아지는 좀처럼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도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가브리엘이 아지를 어떻게 설득할지 궁금해지는데요. 다소 낙관적인 엔딩이 아쉽게 느껴질 순 있지만, 양극화라는 무거운 주제를 유쾌한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솜씨가 돋보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팍팍한 인생에서 발견한 작은 희망은 무엇이었을지, 영화에서 직접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럼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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