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하기만 한 참기름은 잊어라… 뉴욕 러브콜 받는 바로 이 맛

최다원 2026. 1. 9.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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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멋]
편집자주
내일은 오늘보다 맛있는 인생, 멋있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라이프스타일 담당 기자가 한 달에 한 번, 요즘의 맛과 멋을 찾아 전합니다.
2일 서울 중구 쿠엔즈버킷을 찾은 일본 관광객들이 가게를 살펴보고 있다. 임지훈 인턴기자

"배우 이광수씨가 나온 예능을 보고 관심 갖게 됐어요. 일본 방송에선 필수 코스로 소개되기도 했고요!"

매서운 추위가 계속되던 2일. 일본 오카야마현에 사는 하루(26)씨는 새해맞이 한국여행 중 빠듯한 일정을 쪼개 서울 중구의 한 골목 상점을 찾았다. 시린 손을 비벼가며 매대에 놓인 일본어 설명문을 유심히 읽던 그는, 함께 온 지인과 상의 끝에 손바닥만 한 유리병 두 개를 골라 들었다.

하루씨가 찾은 곳은 여느 20대 외국인 관광객들이 흔히 찾는 K팝 상품 판매점이 아니다. 화장품이나 액세서리가 배치돼 있을 법한 매장에 진열돼 있는 건 다름 아닌 참기름. 점원은 일본인 손님이 익숙한 듯 "쇼유(일본식 간장)와 비벼 먹으면 맛있다"는 요리법까지 안내했다.

투박한 소주병이나 네모반듯한 깡통에 담겨 있던 진갈색 참기름은 잊어라. 국내에서조차 올리브오일에 밀려 구식 취급받던 참기름이 웰니스 흐름을 타고 프리미엄 식품으로 탈바꿈 중이다. 해외에선 한식 열풍에 힘입어 전 세계 셰프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식재료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프리미엄' 장벽 낮춰

'참기름은 고소하기만 하면 그만'이란 세간의 인식에 변화가 생긴 건 2000년대 후반 들어서다. 참기름 풍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270도 정도에서 볶은 깨를 착유하는 기존의 '고온압착' 방식이 참깨의 영양소를 파괴하고 발암물질인 벤조피렌 등을 생성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강한 향과 짙은 농도의 '시장표'를 진짜배기로 여기던 소비자들은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참기름을 찾았지만 대기업 제품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감칠맛이 부족할뿐더러, 대량 생산을 위해 헥산 등 화학용매제를 이용하는 점에 심리적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 탓이다.

5일 서울 노원구 주부상회에서 김종호 대표가 판매용 기름을 정돈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이 무렵 대안으로 소개된 게 '저온압착' 방식. 160도 이하에서 볶은 깨를 짜내 항암과 항당료·항콜레스테롤 등 유익한 성분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맑고 가벼운 맛을 내는 게 특징이다. 참깨 본연의 향에 가까운 은은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올리브오일 대신 양식에 곁들여도 잘 어울린다.

물론 건강에 좋은들 진한 맛에 길들여진 대중의 반응이 처음부터 좋았을 리 없다. 2022년 중소벤처기업부의 '백년가게'로 지정된, 서울 노원구의 주부상회 정재서(70) 대표는 "1992년부터 저온에서 볶은 깨를 사용해왔는데 '콩기름 섞은 것 아니냐'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고 손을 내저었다.

낮은 온도에선 뽑아낼 수 있는 기름 양이 적어 생산이 까다롭고 가격은 비싸지는 한계도 있다. 2012년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프리미엄 참기름 시장 선도자로 평가받는 박정용 쿠엔즈버킷 대표는 "저온으로 짤수록 압력은 더 높여야 해 기계 고장도 잦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던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고급 참기름에 대한 선호가 확산했다. 농림축산식품부도 2022년 보고서에서 "건강을 이유로 아예 볶지 않은 생참기름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며 프리미엄 참기름 시장의 성장을 점칠 정도다.

고령화 역시 프리미엄 참기름 시장 확대의 배경으로 꼽힌다. 건강한 노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몸에 좋은 고가 식재료'를 원하는 소비자가 늘었다는 것이다. 최형민 영남대 식품경제외식학과 교수는 "소비층 연령대가 올라간 데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깨 종자 따지고 소용량 제품 찾고

박정용 쿠엔즈버킷 대표가 2일 서울 중구 공장에서 참기름 제조 기계를 점검하고 있다. 임지훈 인턴기자

프리미엄 참기름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깨 원산지와 품종에 대한 관심까지 커졌다. 품종별 성분과 맛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항산화와 인지기능 개선에 효과가 있는 '리그난' 함유량만 놓고 보면 같은 국내산이라도 2022년 개발된 '밀양74호'가 2013년 나온 '건백'보다 4배 높다.

계약 농가가 재배할 종자까지 국립식량과학원과 협력해 직접 선정한다는 박 대표는 "높은 온도에서 짜면 국내산이든 외국산이든 맛이 거의 똑같지만 실제로는 지역과 품종에 따라 각기 다른 맛이 난다"며 "같은 품종이어도 여문 정도에 따라 볶는 온도를 다르게 조절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올리브오일 시장에선 일찍이 자리를 잡은 '10mL 이하 소포장 제품'을 찾는 이들도 생겼다. 산패를 막고 건강보조식품처럼 간편히 휴대하기 위해서다. 1인 가구 증가도 이유 중 하나다. 캠핑이 취미인 김서영(31)씨는 "비싸긴 해도 뒤처리가 간편해 스틱형 참기름을 구비해 뒀다"고 밝혔다.

정 대표와 함께 주부상회를 운영하는 사위 김종호(47)씨는 "핵가족이 보편화되면서 40대 이상에서도 적은 용량을 선호하는 비중이 커져 작은 병 크기 제품을 추가했고, 2mL짜리 상품도 제작 중"이라고 말했다. 쿠엔즈버킷은 5mL부터 500mL까지 용량을 6가지로 세분화해 판매하고 있다.

2일 서울 중구 쿠엔즈버킷에 유박 등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푸드인 '베지파우더' 제품이 진열돼 있다. 임지훈 인턴기자

기름을 짜고 남은 깨 찌꺼기, '유박'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푸드' 연구는 농촌진흥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기존엔 비료나 사료로 쓰이는 게 전부였지만, 농촌진흥청은 유박에도 기능성 물질이 다량 남아있다는 점에서 착안해 2023년 단백질바나 시리얼 등을 제조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뉴욕 미쉐린 레스토랑 진출한 프리미엄 참기름

입소문은 해외까지 퍼졌다. 채식 메뉴를 선보이는 뉴욕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일레븐 메디슨 파크와, 또 다른 뉴욕 2스타 식당 다니엘은 쿠엔즈버킷에서 참기름을 납품받고 있다. 영국 최대 음식 사이트 중 하나인 BBC FOOD는 참기름이 들어간 요리법 376개를 소개하고 있다.

한국 참기름 인기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관세청에 따르면 참기름 및 분획물 무역수지는 2016년 198만9,000달러에서 지난해 1,038만9,000달러로 10년 만에 5.2배 급증했다. 같은 기간 수출 금액이 367만 달러에서 1,453만5,000달러로 4배 가까이 늘어난 영향이다. 수출 중량도 3.6배 증가했다.

다만 아직까지 해외에선 K푸드가 참기름과 같은 식재료가 아닌 가공식품 위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만큼 K콘텐츠를 활용한 홍보 필요성도 강조된다. 최 교수는 "한식 만들기 체험이나, 흑백요리사와 같은 요리 프로그램의 흥행을 활용해 프리미엄 참기름 시장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쿠엔즈버킷의 참기름을 납품받아 사용하고 있는 뉴욕의 일레븐 메디슨 파크. 홈페이지 캡처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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