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막커튼 치고 '몰래 수업'… '오후 10시 제한' 풀리면 사교육 불야성 열린다
반대 측 "지금도 잠 못 자… 새벽 1시에 잠들 것"
"학교, 학원 수업 합쳐 24시간 중 13시간 공부"
"심야 교습 열리면 대치동식 프로그램 전국화"
찬성 측 "시험기간 등 급할 때 오래 공부 원해"
"지금도 교육당국 단속 피하며 늦게까지 수업"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밤은 잠을 잊은 듯했다. 겨울비가 내리던 지난달 23일, 밤 10시가 되자 아이들이 건물을 일제히 빠져나와 거리를 가득 채웠다. 서울에서는 조례에 따라 오후 10시까지만 학원 교습을 할 수 있다. 이 시간만 되면 대치동 학원가에 인파가 넘치는 이유다. 자녀를 데리러 온 차량이 비상 깜빡이를 켠 채 도로변에 늘어서자 형광색 조끼를 입은 경찰의 손놀림도 분주해졌다. 이들은 연신 호루라기를 불며 교통 흐름을 정리했다. 인근 편의점도 붐비기는 마찬가지다. 학원에 가느라 끼니를 챙기지 못한 아이들은 라면 등으로 허기를 달랬다. 대한민국 사교육의 심장부인 대치동의 밤 풍경은 수십 년째 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올해부터 대치동 등 국내 학원가는 더 늦게까지 불야성을 이룰지 모른다. 서울시의회 다수당인 국민의힘 측에서 고등학생 대상 학원 및 과외 교습 시간을 0시까지로 늘리는 조례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학부모 등 사이에서 논란이 일자 상임위원회에 올리지 않았지만 올해 지방 선거 전까지 의견수렴을 더해 재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학원 시간 연장을 반길까. 대치동과 노원구 중계동 등 학원가에서 학생과 학부모, 학원 관계자 등 32명을 만나 의견을 물었다.
하루 수면 6시간 안 되는 고교생, 지금도 '과로 중'
"밤 12시까지 학원 문을 열면 잠이 부족해지겠죠. 다음 날 (학교 수업을 들을 때) 지장이 갈 거고요."
중계동 학원가에서 만난 중학교 2학년 강서현(14)양은 걱정스러운 투로 말했다. "'학원 시간을 연장하더라도 원하는 학생만 다니면 되니 문제 될 것 없지 않느냐'고 하지만 모두 늦게까지 학원에 다니는 분위기가 되면 나만 안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양의 말처럼 학원 교습 시간 연장을 부정적으로 보는 쪽이 가장 우려하는 건 학생의 수면·건강권 침해다. 학습을 '노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많은 10대가 과로하고 있는 셈인데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지금도 학교 수업 때는 졸고 학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는 악순환이 벌어지는데 교습 시간을 연장하면 공교육은 더 엉망이 될 것이라는 걱정도 있다. "학원 시간이 늘어나면 잠을 줄이고 수명을 깎아가며 공부하는 분위기가 될 것"(중계동에서 만난 16세 김모양)이라는 우려가 학생 사이에서 나온다.

실제 국내 초·중·고교생은 학원을 다니느라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아동·청소년 인권 실태조사(2024년 기준) 결과를 보면 설문에 응한 국내 고교생 절반가량(46.7%)이 '하루 수면 시간이 6시간이 안 된다'고 응답했다. 공부 때문이었다. '가정학습(숙제, 인터넷 강의 등)'이라는 응답이 25.5%로 가장 많았고, '학원·과외'(19.3%)라는 답이 뒤를 이었다. 논문 등에 따르면 청소년기 적정 수면 시간은 8~10시간인데, 이 정도 자는 학생은 100명 중 5명(5.5%)뿐이었다.
학원 관계자 사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적지 않다. 대치동 대형학원에서 일하는 한 강사(32)는 "학생들이 지금도 학원 끝나고 바로 침대에 누워도 오후 11시쯤 되는데 학원 시간을 연장하면 새벽 1시는 돼야 잠들 수 있어 너무 가혹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10시에 수업이 끝난 뒤 아이들이 추가 질문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설명해줘도 된다. 조례 연장의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고 반박했다.

김오영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과장은 "지금도 학교 수업을 9시간 정도 듣고, 학원에서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4시간가량 교습받을 수 있으니 24시간 중 13시간을 공부하는 셈"이라며 "학원법 16조에는 교육감이 학교 수업과 학생 건강 등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학원 교습시간을 정하도록 했는데 오후 10시까지 해도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른 법들도 청소년 보호를 위해 오후 10시를 제한시간으로 설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상 18세가 안 되면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일할 수 없으며, 게임산업진흥법 시행령상 청소년은 오후 10시 이후 PC방에 출입할 수 없다.
학원 시간을 늘려 주면 사교육 경쟁이 더 과열될 것이라는 걱정도 크다. 대치동 학원 원장 김모(38)씨는 "이곳은 제한이 풀리면 걷잡을 수 없어질 것"이라며 "(아이들을 더 학원에 남겨두라고) 학부모들의 등까지 떠밀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2시간 더 영업할 수 있게 되면 학원들은 맞춤형 상품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지금도 주말마다 충청권 수험생이 대치동에 와서 수업을 듣는다"면서 "심야 교습의 길이 열리면 평일에도 이런 상품이 깔릴 것이고, (대치동식 심야 프로그램이) 타 시도로 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학원 시간이 늘어나면 학부모 주머니에서 나가는 사교육비도 늘어날 수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국내 사교육비 지출 총액은 지난해 29조1,919억 원으로 10년 새 60%나 늘었다.
"대형 학원은 심야 스터디카페 운영…중산층 이하 아이들만 피해"
학원 교습 연장에 찬성하는 이들은 '학습권 보장'을 이유로 내세운다. 중계동에서 만난 고교 1학년생 양다인(16)양은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열정적인 학생도 많다. 늦게까지 공부하며 선생님께 질문도 하고 싶다"고 했다. 이모(16)양도 "시간이 연장되더라도 힘들면 집에 가면 된다. 시험기간 등 급할 때 더 오래 공부할 수 있는 건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중학교 1학년 딸을 둔 정모(43)씨는 "사교육비로 이미 월 130만 원을 쓰는데 교습 시간이 연장되면 비용 부담은 커지겠지만 좋은 대학만 갈 수 있다면, 잠을 줄여서라도 시키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현실론'을 거론하는 학생도 많았다. 지금도 불법·꼼수 영업으로 오후 10시 이후에도 아이들을 잡아놓는 학원이 많다는 것이다. 조명빛을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는 암막커튼이나 대형 스티커 등으로 창문을 가려놔 교육당국의 단속을 피하고 있다는 증언이 나온다. 중계동 학원가에서 마주친 이모(16)군은 "독서실은 늦게까지 해도 안 걸려서, 밤엔 학원이 운영하는 독서실에서 몰래 배운다"고 말했다. 김영찬 한국학원총연합회 서울지회장은 "시대인재나 메가스터디 같은 초대형 학원은 자체적으로 스터디카페를 운영한다"면서 "반면 생계형 학원은 스터디카페 창업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작은 학원에 다니는 중산층 이하 학생은 돈을 더 낼 수 있는 학생에 비해 그만큼 선생님에게 질문할 기회를 못 얻는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밤 12시까지 수업하는 시도가 있는데 왜 서울은 더 일찍 학원 문을 닫아야 하느냐"는 논리도 있다. 강원·경남·경북·대전·울산·제주·충남·충북 등 8곳은 고교생 대상 학원 교습시간이 자정까지다. 전남은 오후 11시 50분까지이고 인천·부산·전북은 오후 11시까지다. 학원 교습 시간 연장 조례안을 발의한 정지웅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은 "수능은 전국 단위 경쟁인데 서울 학생은 늦게까지 공부를 못 하니까 불법 과외를 받고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고 주장했다.

'서울이 역차별받고 있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목소리도 크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 일반고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2024년 80.1%로 17개 광역 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80%를 넘었다. 또 일반고 학생의 2024년 사교육 참여시간은 주당 10.1시간으로 다른 대도시 평균(8.6시간)보다 1.5시간 길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현재도 서울의 사교육 여건이 타 시도와 비교해 압도적 1위인데 학원 시간을 더 늘린다는 건 더 격차를 벌리겠다는 뜻"이라며 "교육 형평성을 따진다면 오히려 서울 학원 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학원 시간 연장이 일부 학생과 학부모에게 위안을 줄 수는 있지만 실제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중계동에서 중3 아들을 키우는 박모(51)씨는 "성적으로 직결되는 건 자습 시간이지, 일방향적으로 수업을 오래 듣는다고 근본적인 학습력 신장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학부모의 불안 심리를 달래주는 단기 처방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나연 기자 is2ny@hankookilbo.com
나민서 기자 ia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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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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