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안성기, '기쁜 우리 젊은 날'을 영정사진으로 선택한 이유 [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은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와 함께 한국 멜로 영화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1980년대 한국 멜로 영화들은 자극적인 설정, 과잉된 감정 분출, 에로 위주의 흐름이 강해 관객의 외면을 받곤 했다. 전두환 신군부 정권의 최루탄 가스가 거리마다 터지던 격동의 시기에 도착한 '기쁜 우리 젊은 날'은 절제된 감정과 세련된 연출, 따뜻한 색감의 조명과 설렘 가득한 음악으로 군부독재에 지쳐있던 젊은이들의 가슴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 안성기는 과거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보고 감독이 된 영화학도들이 수십 명에 달한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영화가 시작되면 무대 위에서 혜린(황신혜)이 공연하고, 카메라는 서서히 움직이며 객석에서 꽃다발을 든 채 앉아 있는 영민(안성기)을 비춘다. 그는 언제나 먼발치에서 혜린을 보며 사랑을 키웠다. "시간 좀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차나 함께 할까 해서요." 수십 번을 연습해도 막상 혜린 앞에 서면 부끄러움에 신발 끈을 고쳐 매는 영민. 겨우 성사된 만남에서 그는 직접 쓴 희곡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건넨다(이 영화의 조연출이었던 이명세 감독은 훗날 동명의 영화를 연출했다). 이후 가짜 성형외과 의사에 속아 미국으로 떠났다가 상처만 안고 돌아온 혜린에게, 영민은 변치 않는 진심으로 다가가 마침내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영민과 혜린의 제대로 된 '데이트 장면'이 없다는 것이다. 영민은 덕수궁 석조전에서 혜린을 만나 삶은 달걀과 사이다를 건네며 데이트를 꿈꾸지만, 혜린은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는 말을 남긴 채 떠난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뻔한 데이트는 그렇게 끝났다. 그러나 혜린을 위해 달걀 껍데기를 정성껏 까고, 캔 사이다를 조심스럽게 따는 영민의 모습에는 멜로 특유의 두근거림이 살아 숨 쉰다. 흔하디 흔한 데이트 장면 없이도 영화는 영민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로맨틱하게 그려냈다. 특히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안성기는 어수룩하면서도 뚝심 있는 짝사랑의 전형을 탁월하게 연기하며 작품의 품격을 높였다.
배창호 감독은 한 남자의 지극한 순애보를 '기쁜 우리 젊은 날'이라고 지었다. 안성기는 맑고 순수한 이미지로 젊은 시절의 기쁨을 형상화했으며, 그가 연기한 영민은 온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캐릭터의 전형으로 한국 영화사에 남았다. 진심을 다해 고백하는 그의 연기는 영화 그 자체에 대한 배우의 애정처럼 다가온다. 1987년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촬영장에서 찍은 사진이 그의 영정 사진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평생 영화만 사랑했던 위대한 배우는 따뜻한 눈빛과 입가의 미소를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
안성기는 그렇게 하늘의 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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