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들] 애먼 서민 잡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이대로 좋은가

최근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물건을 팔고 대금을 받은 A씨는 다음 날 황당한 일을 겪었다. 중고거래에 사용한 계좌가 지급정지되었고, 모든 은행에 대한 비대면 거래가 제한되어, 카드 결제는 물론 공과금 납부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알고 보니 구매자가 보이스피싱 자금을 A씨의 계좌로 송금하였고, 보이스피싱의 피해자가 신고를 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범죄를 막기 위해 만든 법이 정당한 거래를 한 시민의 일상을 마비시킨 순간이다.
#'신속함'이라는 칼날에 베이는 선의의 피해자들
현행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4조는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신고만으로도 의심 계좌를 지급 정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특성상 자금 인출을 막기 위한 신속성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금융당국이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겠다며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지급정지'라는 칼을 휘둘렀으면서도, 그 이후의 대처는 그 누구보다 게으르고 태평하게 한다는 점이다.
최근의 보이스피싱은 과거와 달리 하나의 계좌에 입금된 돈을 수십 개의 계좌로 쪼개어 전달하는 '분산 세탁' 방식을 취한다. 이 과정에서 중고 거래 대금이나 물품 대금을 받은 소상공인, 개인들의 계좌가 대거 엮이게 된다. 단 한 번의 신고로 해당 명의인의 모든 금융권 비대면 거래가 중단되는 초강력 규제가 정당한 거래를 한 이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입증 책임은 국민에게, 책임 회피는 금융당국에
억울하게 계좌가 묶인 명의인이 이를 풀기 위해서는 동법 제7조에 따라 이의신청을 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서민들의 고통은 본격화된다. 본인이 '범죄자가 아님'을 스스로 소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래 내역, 채팅 대화록 등 소명 자료를 준비해 제출해도 금융기관의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수용 여부가 결정된다. 이 과정에만 최소 2주에서 2개월 가량이 소요되며, 만약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형사 절차가 진행되는 수개월간 해당 계좌는 물론 금융 거래 전반에 제약이 생긴다. 결국 피해자의 피해금을 돌려주는 '채권 소멸' 절차가 끝날 때까지 선의의 피해자는 금융 문맹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방치된다. 국가가 범죄 예방의 편의를 위해 국민 개개인을 모두 범죄자로 취급하고서는 과도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셈이다.
금융기관과 금융감독원은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은행은 고객의 평소 급여 수령 패턴, 범죄 이력 여부 등 정상 거래를 판단할 수 있는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이 그렇다"는 이유로 기계적인 계좌 정지만 반복할 뿐이다. 금감원 역시 실질적인 판단 시스템을 구축하기보다, 개별 은행과 개인에게 모든 짐을 지운 채 뒷짐만 지고 있다. 결국 또다른 피해자인 계좌 명의인들은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상대로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하고, 이 판결문을 통해 계좌의 지급정지를 푸는 방법을 도모할 수 밖에 없다.
#시스템적 보완과 법 개정이 시급하다
보이스피싱 근절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양산된다면 이는 법의 본래 취지인 '피해 구제'에 어긋나는 일이다. 금감원은 정상 거래 여부를 실시간으로 필터링할 수 있는 고도화된 시스템을 구축하고, 선의의 피해자에 대해서는 입증 책임을 완화해주거나 지급 정지 범위를 해당 금액 또는 해당 계좌로 한정하는 등의 유연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만약 필자에게 누군가가 '지급 정지 피해를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라고 물어본다면 필자는 '현금으로 거래하라'고 조언할 수 밖에 없다. 즉, 현행법이 가진 허술함이 계속된다면, 시민들은 이제 국가와 금융 시스템을 믿지 못하고 '현금 거래'라는 구시대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보이스피싱을 잡으려다 선량한 시민의 경제 활동까지 잡아버리는 우를 더 이상 범해서는 안 된다. 국회와 금융당국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의 독소 조항을 즉각 재검토하고 실효성 있는 개선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김수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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