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위기 속에서 시를 다시 묻다…김익균 신간 출간

곽성일 기자 2026. 1. 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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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 120년, 일곱 시인의 ‘청년 시절’로 읽는 문학의 역할
시인은 길잡이 아닌 ‘발목을 붙드는 존재’라는 문제적 제안
▲ '청년의시읽기' 표지.

'청년'이라는 말이 더 이상 미래의 다른 이름이 되지 못하는 시대다. 경쟁과 불안, 혐오와 고립 속에서 청년은 찬가의 주체가 아니라 통계와 비극의 대상이 됐다. 이런 현실에서 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문학평론가 김익균의 신간 시인은 길 이끄는 자가 아니라 독자의 발목을 붙드는 청년이다는 이 질문을 한국 시 120년의 궤적 속에 놓고 정면으로 다룬다.

이 책은 1879년생 한용운에서 1999년생 차도하까지, 서로 다른 시대를 통과한 일곱 시인의 '청년 시절'에 집중한다. 저자가 말하는 청년은 특정 연령대가 아니다. 천상병의 표현을 빌리면, 청년은 '인생 전체와 대결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한 계절'이다. 김익균은 시인이 이 계절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그리고 그 시를 읽는 독자가 어떻게 다시 청년이 되는지를 묻는다.

이 책에서 시인은 길을 제시하는 스승이나 예언자가 아니다. 오히려 독자의 발목을 붙드는 존재다. 독자를 어디론가 데려가지 않고, 쉽게 결론에 도달하게 하지도 않는다. 대신 멈추게 하고, 되돌아보게 하며, 자기 삶의 좌표를 다시 계산하게 만든다. 저자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시는 하나의 해설로 귀결되지 않으며, 독자의 참여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 텍스트라는 인식이다.

1부에서 다루는 한용운, 서정주, 천상병은 문학사에서 이미 '이름이 굳어버린' 시인들이다. 독립지사, 친일 문인, 순진한 영혼이라는 고정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김익균은 이 이미지들을 해체하며, 이들이 청년 시절 어떤 선택과 균열, 모순 속에서 시를 썼는지로 독자를 데려간다. 예컨대 한용운의 출가는 종교적 결단만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근대 초 강원도라는 공간이 지녔던 지역적 역량, 전통 사회를 떠난 청년을 근대 문명으로 이끌었던 조건들이 함께 분석된다. 시는 개인의 깨달음이 아니라, 시대와 공간이 교차한 결과물로 다시 읽힌다.

서정주에 대한 접근도 단순한 '옹호'나 '단죄'가 아니다. 저자는 시적 성취와 친일 행적 사이에서 중립을 택하는 오늘의 독자들을 호출하며, 시를 읽지 않으려는 태도와 '시는 좋지만'이라는 유보적 감상의 한계를 동시에 짚는다. 시와 시인을 둘러싼 담론의 폭을 넓히되, 판단을 독자에게 유보하는 방식이다. 천상병의 경우에는 '떳떳한 가난'이라는 윤리적 태도를 통해, 전략과 목적론으로 환원되지 않는 시인의 행위를 사유한다.

2부에서는 허수경, 황병승, 황인찬, 차도하를 통해 동시대 시의 풍경이 펼쳐진다. 여성, 퀴어, 비인간이라는 더 적은 주체들이 등장하며, 시는 더 넓은 시야를 요구한다. 여기서 시인은 대중을 계몽하는 존재가 아니라, 동요하는 독자의 곁에서 함께 헤매는 존재다. 반딧불처럼 깜박이며 나타났다 사라지는 시인의 위치는, 오늘의 청년이 처한 불안정한 조건과 겹쳐진다.

이 책이 주목하는 또 하나의 핵심은 '독서 대중'이다. 김익균은 대중을 폄하하지도, 독서인을 추앙하지도 않는다. 대중매체에 휩쓸리면서도 독서를 통해 다시 자신을 세우는 이중적 존재로 독자를 규정한다. 누군가가 우리를 이끌어 주길 기다리는 대신, 홀로 설 때가 바로 시를 읽을 시간이라는 메시지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현재의 위기에 개입한다. 청년 자살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죽음의 시선 아래 두는 현실에서, 저자는 위기를 '비판의 대상'으로만 두지 않는다. "위기를 비판하기보다 나 역시 그 일부가 되고 싶다"는 고백은 이 책의 윤리적 출발점이다. 시와 독자는 청년의 감성에 오염되고, 그 오염 속에서만 새로운 사유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시인은 길 이끄는 자가 아니라 독자의 발목을 붙드는 청년이다』는 시를 쉽게 설명해 주는 친절한 입문서도, 정답을 제시하는 해설서도 아니다. 대신 시를 읽는 태도, 문학을 대하는 자세, 그리고 청년이라는 시간을 사유하는 방식을 근본에서부터 다시 묻게 한다. 시가 삶에서 멀어졌다고 느껴지는 순간, 저자는 오히려 그때가 시를 읽을 시간이라고 말한다.

독자의 발목을 붙드는 시인과 함께, 다시 청년이 되어 시를 읽는 일. 이 책은 그 불편하지만 필요한 체험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