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 업체가 수천억 코인 환전… 피싱자금 통 크게 세탁하다 적발
대표 “몰랐다” 주장에 경찰 불기소
규모 의심 검사, 녹취 확보해 구속

“월 매출 400억원, 월 급여 1천만원.”
지난해 4월 범죄수익 환수 업무를 위해 보이스피싱 사건 자료를 살피던 수원지검 김병진(변7·형사부) 검사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상품권 판매업체 대표가 스스로 진술한 수익금이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이다. 당시 경찰은 6천300만원 상당의 보이스피싱 인출책은 송치했지만, 피해금을 가상자산으로 환전해 준 혐의(사기방조)로 입건된 업체 대표 A씨에 대해서는 불송치했다. “보이스피싱 피해금이란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A씨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당 업체는 금융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불법으로 가상자산을 거래하고 있었다. 업체 측은 ‘직원의 일탈’이라고 주장했지만, 거래 규모를 보면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김 검사는 “한 사람이 하루에도 몇 차례, 일주일에 수십억원씩 환전하는 상황이라 범죄수익인 걸 알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이들이 바꿔준 가상자산 ‘테더’는 가격 변동성이 크지 않고 해외에서 현금화도 수월해 자금세탁 업체라고 확신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김 검사는 강현식 수사관과 수사에 나섰고, 압수수색으로 결정적 증거를 확보했다. A씨 등은 수사로 자금 흐름이 막히자 위성법인을 설립했는데, 해당 법인 대표 B씨의 휴대전화에서 자금세탁업체 실운영자가 수익금을 현금화하는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의 녹음파일이 대거 확인된 것이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상품권 업체로 위장한 자금세탁업체를 운영하며 2천억원이 넘는 범죄수익금을 세탁한 일당의 범행은 이렇게 드러났다. 수원지검은 지난해 7월~11월까지 범죄수익금 2천496억원 상당을 세탁한 혐의(범죄수익은닉규제법·특정금융정보법 위반)로 A씨 등 일당 5명(4명 구속)을 기소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지역의 한 경찰서장도 수사 정보와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7천9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김 검사는 사건의 전모 파악을 위해 검찰의 수사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당 업체를 찾은 보이스피싱 인출책이 많아 이미 다수의 경찰서에서 조사 중이었지만 큰 진전은 없었다”면서 “피해자 사건 접수로 시작하는 경찰 수사는 인출책 검거에 집중돼 자금세탁 범죄는 부차적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어 “검찰은 법리를 토대로 범죄 사실을 구성하면서 사건을 살피기 때문에 대규모 피해 상황과 경찰 비리 등 사건의 전모를 밝히기에 수월했다”고 부연했다.
/목은수 기자 woo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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