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광주전남 행정통합 (상)통합의 역사와 배경]"다시 합치자"…4번 도전 끝 성사되나
1차·2차 광주시 의지 약해 불발
3차 군공항·정부 지원 부족 등 무산
4차 급물살…대통령 파격 지원 약속

[편집자 주]이재명 대통령이 불을 붙이고 김영록 전라남도지사와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이 기름을 부은 '광주·전남 행정통합'이 2026년 벽두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광주광역시가 전라남도에서 분리된 지 40년을 맞는 해다. 그 사이에 3번의 통합 논의가 있었지만, 번번히 불발됐다. 이번에는 대통령이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서울특별시 수준의 특례도 주겠다고 하니, 양 시·도는 '물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며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남도일보는 3회에 걸쳐 이번 행정통합의 의미와 장단점을 분석하고, 정책적인 방향을 제시해본다.
◇전남과 광주의 탄생
행정구역(行政區域)이란 행정 기관이 그 권한과 행정 기능을 행사하도록 설정한 일정한 지역적 범위를 뜻한다.
국가는 효율적인 행정 집행과 관리, 정책 집행을 위해 영토를 여러 단계의 행정구역으로 나누며, 이를 통틀어 행정구역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도, 특별시, 광역시, 시, 군, 구, 읍, 면, 동 등과 같이 법령에 의해 정해진 단위들이 대표적인 행정구역의 예다.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의 머릿글자를 따서 지은 지명이다. 구한말인 1896년 전라도는 전라남북도로 나뉘었고, 이 때 전라남도의 도청 소재지로 당시 광주군으로 결정됐다.
그렇게 광주는 지난 2005년 도청이 무안으로 옮기기 전까지 109년간 전라남도의 도청소재지였다.
지난 1986년 당시 전두환 정부는 '광주직할시 설치에 관한 법률'을 공포하며 전남에서 광주를 분리했다. 1995년 직할시가 광역시로 명칭이 바뀌면서 광주광역시가 됐다.
◇3차례의 통합시도
이처럼 지역이 분리되면서 남남이 돼 버린 광주광역시에 전남도청이 자리하는 것이 문제가 됐다. 도청 이전 필요성이 제기됐고, 광주도심 공동화 우려가 일면서 다시 통합하자는 논의가 시작됐다.
분리된 지 불과 9년만인 1995년 통합 공약을 걸고 당선된 허경만 전남지사가 1차 통합 논의를 공식화했다. 1996년 1월 통합 전담기구인 도정발전기획단을 설치하는 등 구체화했다. 그러나 광주시가 같은 해 10월 통합 반대 건의서를 당시 내무부에 제출했다. 송언종 광주시장은 세수 감소 및 투자소홀 등 '통합 10대 불가론'을 역설했다.
1998년 민선2기 재선에 성공한 허경만 지사는 2차 행정통합을 추진했다. 2001년 7월 고재유 광주시장과 통합에 원칙적인 합의까지 성공한다. 광주시는 당시 "10월 말까지 광주시의회가 시·도 통합에 찬성한다면 적극 추진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그러나 광주시는 용역과제심의위원회를 통해 그 해 8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시·도 통합에 관한 시민여론조사용역안'을 부결했다. 소수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의 대표성과 비용 등을 문제삼았다.
같은 해 11월 허 지사가 "광주시가 통합 의지나 능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공식적으로 통합 무산을 선언하고 다음달인 12월 무안에서 신청사 기공식을 열었다.
3차 통합 시도는 지난 2020년 이용섭 광주시장이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김영록 지사가 이에 호응, 같은 해 11월 '통합 논의를 위한 합의문'에 서명했다.
연구용역까지 진행하는 등 진전이 있었지만, 군공항 이슈와 중앙 정부의 지원 부족, 여기에 법적 기반도 제대로 마련되지 못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4차 시도 '전광석화'
이번 4차 시도는 새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의지로 그 어느 때보다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5극 3특' 국가균형발전 정책에 맞춰 "행정통합 자치단체에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하겠다"는 등 파격적인 약속이 도화선이 됐다.
산업화에 뒤쳐져 전국 최하위 수준 재정자립도와 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 소멸 위기를 맞고 있는 광주·전남 입장에서는 가뭄에 단비와 같은 소식인 셈이다.
두 단체장은 지난 2일 공동선언문에서 "오월 영령들 앞에서 광주·전남 대부흥의 새 역사를 열기 위해 통합을 결단했다"며, 7월 1일 통합시 출범을 역설했다.
/박형주 기자 hispen@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