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보건복지부의 ‘과학적 추계’

보건복지부가 2027학년도 의대 입학정원을 결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가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의 과학적 추계를 근거로 매주 회의를 개최해서 설 연휴 전에 정원 규모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총선 승리를 노린 지난 정부의 얄팍한 꼼수로 촉발된 의정 갈등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늦어도 너무 늦은 일이다. 의대 입시에 관한 한 고등교육법에 분명하게 명시된 ‘대학입시 4년 예고제’는 확실하게 사문화(死文化)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다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추계위가 보정심에 보고한 ‘부족 의사 수’가 지난 12월 30일 언론에 요란하게 공개했던 공식 추계치와 달랐다. 2035년에 예상되는 부족 인원의 하한이 당초 1535명에서 1055명으로 480명이나 줄었고 2040년 부족 인원도 역시 689명이 줄어든 5015명으로 바뀌었다.
● ‘과학적 추계’의 민낯
추계위가 표결까지 거쳐서 12월 30일에 공개한 최종 결론 중에서 뒤늦게 의사 인력 공급의 추계치를 변경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의대 입학 인원에 ‘정원 외’ 인원을 반영했기 때문이라는 보도도 있고 의사면허 취득자 중 실제 임상 활동을 하는 비율을 95%에서 96.01%를 상향 조정했기 때문이라는 보도도 있다. 어쨌든 추계위가 공식 결론을 뒤늦게 변경한 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비정상이다.
‘과학적 추계’를 강조하던 추계위의 허술함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지난달 22일에는 2040년 부족한 의사 수가 1만4435명에서 1만8739명에 이를 수 있다는 중간발표로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했었다.
지난 정부의 ‘2035년 1만5000명 부족’을 핑계로 밀어붙였던 의대 2000명 증원에 반발해서 1년이 넘도록 고역을 치렀던 의대생과 전공의에게는 날벼락과 같은 소식이었다.
미래의 의사 인력 수급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과학적 추계’의 구체적인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추계위가 공식 발표에서 밝혔듯이 본질적으로 미래의 의료 이용 행태, 기술 발전, 근로 형태 등의 변화를 완전하게 예측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활용할 수 있는 자료와 방법론의 한계 속에서 모든 요소를 하나의 모형에 포괄적으로 반영하는 일도 쉽지 않다. 그런데도 “현재 시점에서 관측할 수 있는 자료”와 “합의할 수 있는 가정”을 토대로 추계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 ‘과학적 추계’를 강조하는 추계위의 힘겨운 현실이다. 사실 추계위가 강조해야 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합리’였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명백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추계위가 ‘과학적 추계’에 매달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자신들이 활용할 수 있는 ‘자료’와 ‘가정’의 범위 안에서 최대한 투명하고 성실하고 합리적으로 추계를 했으니 “믿어달라”는 뜻이다.
결국 추계위가 강조하는 ‘과학’은 추계의 구체적인 방법이 아니라 8명의 의사를 포함한 추계위 위원 15명의 ‘전문성’과 ‘권위’를 인정해달라는 일방적인 요청일 뿐이다.
그런데 추계위가 내놓은 ‘수요 및 공급 추계’의 결과가 지나칠 정도로 단순하다. 의료기관의 특성에 따른 시계열(時系列) 모형을 적용하면 2035년에 최대 13만8206명의 의사가 필요하게 된다는 것이 고작이다.
현대의 과학적 ‘측정’이나 ‘추계’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불확실성’에 대한 정보가 완전히 빠져있다. ‘과학적 추계’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상식도 지키지 못했다는 뜻이다.
추계위가 의대 입학 인원에 ‘정원 외 입학생’을 포함하거나 의사면허 취득자 중 임상 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이 조금만 달라져도 실제로 추계의 결과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한다는 상식적인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추계에 사용된 ‘자료’와 ‘가정’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은 것도 심각한 문제다. 관료적인 보도자료에만 의존하는 설득은 설득력이 없었다. 의료계가 추계위의 ‘성급한’ 결론에 격하게 반발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추계위가 내놓은 의사 수급 추계는 의료정책적인 판단을 위한 수치라기 보다 의대 입학정원의 증원을 정당화하기 위한 시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의료 소비 구조의 문제, 기술 발전, 의료 전달체계 개편 가능성, 전공의 수련 과정 정상화 가능성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 추계는 ‘그림의 떡’일 뿐
현재의 의대 입학정원 3058명을 영원히 고집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의대의 입학정원을 널뛰듯 늘이거나 줄일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보다 인구와 의료계의 규모가 2.5배나 되는 일본은 2008년부터 12년 동안 1795명을 점진적으로 확대해서 현재 942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의대 입학정원의 급격한 증가에 따른 어려움은 단순히 ‘해부학 실험실’ 부족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의대 졸업 후의 ‘수련’ 과정의 운영은 물론 군의관 수급에도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단순히 의사 인력 수급에 대한 추계는 그림의 떡일 수 있다. 의사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추계만을 근거로 의대의 입학정원을 함부로 늘일 수는 없다. 의사의 양성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적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의학 교육은 의대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증을 부여하는 것으로 끝나는 변호사 양성 교육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뜻이다.
실제로 독자적으로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전문의’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의료 현장에서의 ‘수련’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수련에 필요한 인력·시설·장비를 갖춘 ‘병원’을 마련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수련의(전공의)가 직접 환자를 진단·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만 한다. 충분한 수의 환자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7000억 원 이상의 투자가 필요한 초대형 상급종합병원도 매년 100명의 수련의를 수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의대의 입학정원을 1000명 늘이면 전국에 7조원의 예산을 투입해서 10개의 대규모 상급종합병원 수준의 수련병원을 세워야만 한다. 충분한 규모의 부속병원이 없는 지역의대는 실질적인 지역의사 확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현재 의대와 수련병원에는 2024년에 시작된 의정 갈등의 심각한 후유증이 남아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의과대학에는 의정 사태 이전 정원의 2배에서 4배에 이르는 학생이 몰려 있고 특히 2024학번과 2025학번의 학생들은 동시에 예과 1학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비정상이 계속되고 있다. 정상적인 의대 교육이 어려운 형편이라는 뜻이다.
현재 예과 1학년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4500명의 학생들이 의사면허를 받게 되는 2031년에 벌어지게 될 ‘전공의 수련 대란’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현재의 수련병원으로는 1500명 이상의 의대 졸업생이 수련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지역·응급·필수 의료의 문제는 단순히 의대 입학정원 조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의대 증원의 효과는 10년 후에나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현재 의료계의 문제는 대부분 정부의 정책 실패 때문이라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현재의 문제를 10년 후에 효과가 나타나는 의대 증원으로 해결하겠다는 시도는 종로에서 뺨 맞고 마포에서 화풀이하는 격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불합리한 추계와 잘못된 문제 인식에서 부실하게 추진하는 증원은 국민의 건강과 의료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의대 설립만으로 지역이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도 섣부른 것이다.
※필자 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 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3200여 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질병의 연금술》《지금 과학》을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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