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서 억울한 사람 없도록”… 6년째 시골 누비는 염성준 변호사

손덕호 기자 2026. 1. 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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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할아버지와 70대 할머니, 두 분 다 기초생활수급자셨습니다. 아드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법원에서 압류 결정문이 날아왔죠. 아들의 빚 1000만원이 부모에게 상속된 겁니다. 당장 갚을 돈이나 변호사를 쓸 수 없는 그분들에게 마을변호사가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법과 제도는 약자의 권리입니다. 몰라서 억울한 일이 없도록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올해로 6년째 강원도 원주시 등에서 '마을변호사'로 활동 중인 염성준(변호사시험 8회) 변호사는 지난해 12월 26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를 이같이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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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변호사]③ 염성준 변호사

[편집자주] 법전의 차가운 글자보다 이웃의 젖은 눈망울을 닦아주는 이들이 있다. 화려한 조명 대신 변호사 한 명 없는 섬마을과 오지 등 ‘무변촌(無辯村)’을 직접 찾아가 무료 법률 상담을 이어가는 마을변호사들이다. 어느덧 13년, 1228명의 변호사가 전국 1414개 읍·면·동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가장 낮은 곳을 향해 묵묵히 발걸음을 옮겨온 그들의 따뜻한 목소리를 담았다.

염성준 변호사가 지난해 12월 26일 마을변호사 관련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손덕호 기자

“80대 할아버지와 70대 할머니, 두 분 다 기초생활수급자셨습니다. 아드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법원에서 압류 결정문이 날아왔죠. 아들의 빚 1000만원이 부모에게 상속된 겁니다. 당장 갚을 돈이나 변호사를 쓸 수 없는 그분들에게 마을변호사가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법과 제도는 약자의 권리입니다. 몰라서 억울한 일이 없도록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올해로 6년째 강원도 원주시 등에서 ‘마을변호사’로 활동 중인 염성준(변호사시험 8회) 변호사는 지난해 12월 26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를 이같이 회상했다. 당시 염 변호사는 상속 채무가 재산을 초과한다는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신청할 수 있는 ‘특별한정승인’ 제도를 통해 노부부를 도왔다.

염 변호사가 마을변호사 활동에 매진하는 이유는 ‘법률 복지의 사각지대’를 체감했기 때문이다. 상속 한정승인 같은 제도는 몰라서 못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염 변호사는 “채권자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상속 한정승인은 국가가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정당한 제도”라며 “법을 몰라 빚더미에 앉는 이들에게 물어볼 곳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을변호사 활동을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염 변호사의 본업은 스포츠 업계 사내 변호사다. 공공기관과 대형 건설사를 거친 베테랑이지만, 일과가 끝난 뒤의 삶은 여느 변호사와 다르다. 퇴근 후에는 지역 주민들의 상담 전화를 받고, 주말이면 직접 차를 몰고 강원도와 경기도 일대를 누빈다. 아래는 염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마을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상담 사례는 무엇인가.

“대체로 제도를 몰라 대응을 못하는 사례가 많다. 고양시의 반지하 단칸방에서 몸이 편찮은 아버지와 함께 살던 취업준비생이 기억에 남는다. 살던 곳이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돼 이사를 가야 했는데, 당장 이사비를 마련할 형편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재개발 조합에 가면 이사비를 준다더라’는 말을 듣고 조합을 찾았지만, ‘임차인은 해당 없다’는 답만 들었다고 했다.

상담을 해보니 임차인도 토지보상법에 따라 주거 이전비와 이사비를 받을 수 있는 사안이었다. 조합에 직접 연락했지만 ‘줄 수 없다, 소송하라’는 입장이었다. 결국 행정소송을 진행했고, 무료 변론을 맡아 약 1100만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그 청년이 안도의 한숨을 쉬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젊은 사람들도 마을변호사를 찾나.

“있다. 고양시의 한 공동주택에서 만난 미혼모 사례가 그렇다. 생후 6개월 된 아이를 키우며 테라스가 딸린 빌라 꼭대기층 세대에 입주했는데, 사실상 옥탑에 가까운 구조였다. 우수관이 막혀 테라스에 고인 빗물이 집 안으로 흘러들어왔는데도 시공사는 ‘하자가 아니다’라며 조치를 거부했다.

그러던 중 건장한 남성 여러 명이 집에 들락날락하며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자, 떨리는 목소리로 ‘지금 와달라’고 연락이 왔다. 현장에 가보니 젊은 여성과 아기가 있는 집에 여러 사람이 드나드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즉각 제지했고, 이후 분쟁 해결의 물꼬를 텄다.”

─시골 마을에서 고령층과 상담할 때 어려움은 없나.

“처음엔 쉽지 않다. 다만 제 아버지 고향이 원주여서, 지역 명소나 특산물, 향토 음식 이야기를 꺼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의 거리가 좁혀진다. 어느 순간 손주나 아들처럼 받아주신다. 그렇게 신뢰가 쌓이면 그동안 쌓아둔 이야기가 쏟아지고, 그 과정에서 법률 쟁점이 드러난다.”

─마을변호사 제도가 활성화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마을 ‘이장님’을 잘 활용해야 한다. 시청이나 면사무소보다 이장에게 제도를 알리는 게 더 효과적이다. 시골에서는 이장이 외부와 연결되는 창구이자 네트워크의 중심이다. 한 번은 이장님 부름을 받아 경로당에 갔는데, 계시던 할머니들이 즉석에서 몰려와 질문을 쏟아냈다. 믹스커피와 절편을 나눠 먹으며 상담했던 기억이 난다.”

─사내 변호사로서 평일 활동이 쉽지 않을 텐데.

“우선 전화로 상담을 한다. 일주일에 한 명 정도는 유선 상담을 하고, 대면이 필요하면 시간을 낸다. 강원도는 한두 달에 한 번 ‘바람 쐬러 간다’는 마음으로 찾아가 한두 분을 만난다. 고양시는 가까워 카페에서 만나기도 한다.”

─마을변호사 경험이 본업에도 도움이 되나.

“그렇다. 흔히 접하기 어려운 사건이 많고, 소송 외에도 중재나 조정 등 다양한 해결 방식을 고민하게 된다. 마을 어르신들의 역할을 활용하는 법도 배우게 된다. 변호사로서 시야를 넓혀주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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