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 백미 ‘韓의 시그램빌딩’… 곳곳엔 듬직한 거북이 기운이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꼿꼿·정갈한 건축가 ‘김종성’답게
군더더기 없는 ‘미시안 스타일’
경관조화·효율성 모두 만족시켜
故최종현 선대회장 요구에 맞춰
건물 구석구석 거북이 형상 배치
입구의 머리, 기단 모서리 앞발 등
추상적인 요소 찾는 재미도 ‘쏠쏠’
어떤 건축물은 건축가를 닮는다. 서울 종로와 청계천 사이에 우뚝 서 있는 ‘SK서린빌딩’이 그렇다.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검은색 외관, 오와 열을 맞춘 격자창, 자로 잰 듯한 접합부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이를 설계한 건축가 김종성이 떠오른다. 한 강연장에서 처음 마주한 그는 80대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꼿꼿하고 정갈했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은 건 이러한 건축적 성취보다 건물에 얽힌 풍수지리 이야기였다. 설계자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접근을 시도했다면, 의뢰인인 고(故) 최종현 선대 회장은 땅의 기운을 다스리는 지혜를 더하고자 했다.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건물이 지어질 땅의 모양과 형세(地勢)를 살핀 뒤 건물 곳곳에 거북이 형상을 배치하도록 했다. 풍수에서 ‘현무(玄武)’라 불리는 거북이는 북쪽을 관장하며 물을 상징하는 영물이다. 오행(五行)상 검은색(黑)이 물을 의미하기에, SK서린빌딩의 거북이 형상은 모두 검은색 돌로 만들어져 있다.
숨은 거북이 찾기는 청계천 방향으로 난 부출입구에서 시작된다. 계단 중앙에 놓인 검은색 둥근 돌이 바로 거북이의 머리다. 돌에는 맨 아래 가운데를 비워두고 8개의 점이 찍혀 있는데, 이는 주역 64쾌 중 13번째 괘인 ‘천화동인(天火同人)’을 뜻한다. ‘천화동인’은 하늘 아래 불이 타오르는 형상으로, “공동의 목표를 위해 사람들과 화합하고 교류하는 것은 길(吉)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상행위나 그 밖의 영리행위를 목적으로 모인 집단’, 즉 ‘회사(會社)’의 지향점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문구다.

두 번째 설은 ‘영구음수형(靈龜飮水形)의 지기(地氣)를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장수와 지혜를 상징하는 신령한 거북이(靈龜)가 물을 마시는 형상”을 뜻하는 ‘영구음수형’은 풍수지리에서 최고의 명당으로 꼽는다. SK서린빌딩이 지어진 땅은 경복궁 동쪽으로 흐르는 지세가 청계천 물길을 만나 멈춰 선 곳이기 때문에 거북이가 알을 낳고 물로 돌아간다고 해석된다. 두 번째 설에서 검은색 건물은 그 자체로 거대한 거북이의 몸통이 되어 청계천의 물기운과 조응하며 ‘수기(水氣)’를 완성한다.
합리적인 이성과 과학적 사고로 무장한 모더니즘 건축가들에게 풍수는 자칫 비과학적인 미신으로 비칠 수 있다. 장식은 배제하고 기능과 본질에 집중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기(氣)’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색한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종성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풍수지리가 현대 건축의 원리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현대 건축의 필수 과정인 ‘입지 분석’을 풍수의 ‘터 잡기’로, 바람과 물을 다루는 ‘친환경 공학’을 ‘장풍득수(藏風得水)’로, 거주자의 심리적 안정을 돕는 ‘환경 심리학’을 부족한 기운을 채우는 ‘비보(裨補)’의 개념으로 치환해 이해한 것이다.
물론 건물에 거북이를 새겨 놓는다고 해서 기업이 부침을 겪지 않거나 경영 위기를 피할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안다. 몇몇 호사가들은 정문이 후문보다 작다는 둥, 땅의 뒤를 받치는 산의 지세가 약하다는 둥 풍수적 결함을 논하며 이를 기업과 총수의 위기와 결부시킨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효험의 유무가 아니다. SK서린빌딩을 떠받치는 거북이는 회사의 번창과 구성원들의 무탈을 기원하는 회장의 바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2026년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역동적인 기운이 시작됐다. SK서린빌딩의 거북이 머리를 내려다보며, 인류가 지금까지 겪어 왔던 변화보다 더 큰 변화가 시작될 올해 서로의 평안을 빌고 감정의 안정을 줄 수 있는 내 마음속 거북이는 뭘지 생각해 본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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