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플러스+] 무관심·방치…이름만 거장의 고향

최우은 2026. 1. 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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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희생에 기댄 ‘ 박건호 유산 지키기’
원주 박건호 선양사업 지속 가능성은
어젯밤 이야기·단발머리 등
3000여 곡 발표 ‘국민 작사가’
2009년 기념사업회 출범
음악회·백일장 등 업적 기려
재정부담 ‘ 민간 몫’ 활동 한계
원주시 예산 지원 편중 극명
박경리 사업 대비 현저히 낮아
관리 소홀에 공원 비석 먼지만
지역문화 자산 공공지원 절실

“성공하려면 박건호 작사가의 노래를 따와야 한다는 속설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유명하지도 않고, 돈도 없어서 선생님 노래를 얻지 못했지만 선생님을 통해 많은 영감을 받아 ‘태클을 걸지마’, ‘안동역에서’가 탄생했죠.”

지난해 11월 19일 원주 치악체육관에서 열린 제2회 박건호음악회에서 가수 진성이 그의 히트곡에 대한 비화를 회상하며 전한 말이다. 한국 가요계에서 ‘박건호’라는 이름이 지녔던 존재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원주 출신 거장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지역사회가 다양한 기념사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대부분 민간의 힘에 의존하는 현실 속에서 지속 가능한 선양사업을 위해 공공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원주가 고향인 토우 박건호(1949~2007)

■원주가 낳은 대표 작사가 박건호의 삶과 음악

1949년 원주 흥업면에서 태어난 토우 박건호 선생은 1969년 시집 ‘영원의 디딤돌’을 펴내며 문학계 첫 발을 내디뎠다. 1972년 가수 박인희의 ‘모닥불’로 작사가 데뷔 후 3000여 곡을 발표했다. 이중 800여 곡이 현재도 대중에게 널리 불리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어젯밤 이야기(소방차) △괜찮아(이선희) △무정 부르스(강승모) △그녀에게 전해주오(소방차) △잃어버린 30년(설운도) △빙글빙글(나미) △잊혀진 계절(이용) △단발머리(조용필) △찰랑찰랑(이자연) △환희(정수라) △아!대한민국(정수라) △아침의 나라에서(김연자) △슬픈 인연(나미) 등이 있다.

그의 노랫말은 일상과 감정, 시대적 정서를 섬세하게 길어 올린 언어로 평가된다. 누군가의 삶을 대변하는 듯 하면서도 보편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으로 그의 작품은 세대를 잇는 노래로 남았다. 1982년 KBS 가요대상 작사상, 1985년 한국방송협회 ‘아름다운 노래’ 대상, 1985년 국무총리 표창 등 각종 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80년대 후반 이후 그는 뇌졸중 후유증과 여러 차례 신장·심장 수술 등 혹독한 투병을 이어갔다. 언어장애와 마비 증세 속에서도 끝까지 집필을 멈추지 않은 그는 2007년 12월 9일, 향년 58세로 생을 마감했다.
▲ 황량한 분위기의 박건호 공원에 동상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는 모습. 장기간 관리 소홀 탓에 글씨는 흙먼지에 덮여 식별이 어려울 정도였다. 최우은 기자

■ 남진·진성·송가인 등 대형가수 참여 불구 민간 중심 기념사업 예산 부족 한계

원주에서는 2009년 출범한 박건호기념사업회가 음악회, 백일장, 기념행사 등을 중심으로 선생의 업적을 기려왔다. 1회 음악회에는 가수 송가인 등이 참여해 고인을 기렸으며, 올해 열린 제2회 음악회에는 가수 남진을 비롯해 진성, 박현빈, 알리, 강진, 나태주 등 국내 정상급 가수들이 참여하며 관심을 모았다. 2700여 명이 객석을 가득 채웠고, 미처 티켓을 구하지 못한 시민들은 체육관 외부에서 공연을 지켜보기도 했다. 관객들은 4시간이 넘는 공연 동안 노래를 따라 부르며 환호와 눈물로 고인을 추모했다.

특히 음악회가 전면 무료로 운영된다는 점이 높은 시민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는 행사가 사실상 민간의 재정 부담 위에 세워져 있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무대 연출비만 약 3000만 원에 달하지만 입장료 수입이 없는 구조여서 비용 충당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올해 사업회가 확보한 강원도·원주시 지원금 1억 4500만 원 중 백일장 준비에만 2000만 원이 배정, 정상급 가수 개런티는 사실상 편성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출연진 일부는 고인을 기리는 마음으로 통상보다 낮은 수준의 출연료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태 박건호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이사회 출연금만 5000만~6000만 원인 데다가 재정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제 사비를 보태며 운영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음악을 통해 시민들이 따뜻함을 느끼고, 원주가 선한 영향력을 가진 문화도시로 성장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 지난해 11월 19일 원주 치악체육관에서 열린 제2회 박건호음악회.

■ 초라한 조형물에 문화자산 보존 위한 체계적 시설 마련 시급

현재 원주에서 박건호를 기리는 공간은 2008년 조성된 무실동 ‘박건호 공원’과 중앙동 문화의 거리 조형물이 사실상 전부다.

박건호 공원은 동상과 노랫말비가 세워져 있지만, 장기간 관리 소홀 탓에 글씨는 흙먼지에 덮여 식별이 어려울 정도였다. 주변 산책로 역시 휑한 분위기를 풍겨 시민들이 머물며 작품 의미를 되새기기에는 환경이 미흡해 보였다.

김종태 이사장은 “박경리문학공원처럼 전시, 기록, 체험이 가능한 공간이 없다 보니 작가의 세계를 깊이 있게 소개하기 어렵다”며 “선생님의 음악을 지역문화 자산으로 확립하려면 공공 차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시가 박경리문학공원 및 문학상 등 박경리기념사업에 최근 3년간 각각 △2023년 5억 2200만 원 △2024년 6억 3459만 원 △2024년 4억 4000만원을 투입한 반면, 박건호기념사업 예산은 △2023년 6000만 원 △2024년 5000만 원 △1억 1500만 원 수준에 그쳤다.
▲ 황량한 분위기의 박건호 공원에 동상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는 모습. 장기간 관리 소홀 탓에 글씨는 흙먼지에 덮여 식별이 어려울 정도였다. 최우은 기자

안정민 시의원도 올 9월 제259회 임시회 5분 자유발언에서 “기념사업회 차원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으나 시 차원의 선양사업, 관광자원화 사업은 거의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안 의원은 “대구 김광석 거리, 통영 윤이상 기념관처럼 원주도 박건호 선생의 친필 원고·음반·녹음자료 등을 보관·전시할 공간을 마련하고, 공연장에는 ‘박건호 아트홀’ 같은 명칭을 붙여 자연스럽게 시민들에게 기억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종태 이사장은 “박건호 선생의 곡은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이지만, 젊은 세대는 접점을 찾기 어렵다”며 “리메이크와 창작 프로젝트 등을 통해 세대 간 연결고리를 만들고, 선생님의 음악이 현재의 감성 속에서도 살아 숨 쉬도록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최우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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