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힐링속으로-대구를 걷다] 97. 군위 ‘사유원(思惟園)’ 숲속 길
가을빛 속 7㎞ 숲길 여정…걷는 순간, 풍경이 되고 질문이 되는 시간

"걷고, 멈추고, 생각하라"
가을빛이 짙어질수록 걷고 싶은 길이 있다.
바람과 빛, 고요가 어우러진 대구 군위군 부계면 팔공산 자락의 '사유원(思惟園)'이다.
단순한 수목원이 아니라, 숲과 건축, 사유가 교차하며 인간의 본래 마음을 비추는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 자연과 사유가 깃든 정원.
사유원은 '생각의 정원'이라는 이름 그대로,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명상형 수목원이다.
설립자인 유재성 회장은 일본으로 반출될 위기에 놓였던 수령 300년이 넘는 모과나무 4그루를 사들여 심으며 이곳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 나무들이 세월을 거치며 108그루로 늘어났고, 그 자리에 '풍설기천년(風雪幾千年)'이라 이름 붙인 숲이 만들어졌다.
이후 국내외 건축가와 조경가들이 참여해 '숲·건축·사유'라는 세 가지 축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완성됐다.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로 시자(Alvaro Siza), 조경가 김익진 등이 참여하면서 예술성과 철학을 겸비한 명소로 자리 잡았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목원'이라는 별칭이 따라 붙을 만큼 수준 높은 관리와 공간미를 갖추고 있지만, 입장객의 발길은 꾸준하다.

△ 숲길을 따라 걷는 명상의 여정.
대구 도심에서 차량으로 약 40~50분 거리. 부계면 팔공산 자락에 닿으면 '치허문(致虛門)'이라 적힌 입구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문을 지나 '비나리길'을 걷는 순간부터 마음이 서서히 느려진다. 숲의 향기와 나무의 그림자, 발아래 흙길의 감촉이 도시의 속도를 잊게 만든다.
전체 산책로는 약 7㎞, 코스를 천천히 둘러보면 3~4시간이 걸린다.
대부분 완만한 흙길이 이어져 있지만,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포인트가 곳곳에 숨어 있다.
건축물 하나, 나무 한 그루, 바위 위로 떨어지는 빛 한 줄기까지 모두가 '사유'의 매개가 된다.
△ 건축과 자연의 대화.
사유원에는 이름만큼 특별한 공간이 많다.
'풍설기천년'은 사유원의 중심부로, 수백 년을 버텨온 모과나무 군락이 바람과 눈, 비를 견디며 생명의 지속을 보여준다.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대표작인 '소대(巢臺)'는 새의 둥지를 형상화한 공간으로, 숲속 경사면 위에 조용히 자리 잡았다.
같은 건축가의 또 다른 작품인 '소요헌(逍遙軒)'은 한국전쟁 격전지를 배경으로 생명과 죽음, 그리고 평화의 의미를 담아냈다.
한편, '내심낙원(內心樂園)'은 가톨릭 신부 찰스 메우스와 김익진 조경가의 우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작은 경당이다.
이곳에서는 종교를 넘어선 인간 본연의 평화, 마음의 안식을 느낄 수 있다.
△ 빛과 그림자가 만드는 사색.
사유원은 계절마다 다른 표정을 지닌다. 봄에는 새싹이 돋아나 생명의 맥박이 느껴지고, 여름에는 푸른 숲이 짙은 숨을 토한다.
가을이면 황금빛 단풍과 붉은 철판 건축물이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든다.
특히 가을 햇살이 기울 무렵,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빛과 그림자의 조화는 '걷는 명상' 그 자체다.
'숲을 보기 위해 온 사람들도 결국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는 방문객의 후기가 이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유원은 자연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 같은 정원'이다.

△ 방문 전 알아둘 점.
사유원은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홈페이지 또는 전화로 일자와 시간대를 지정해야 하며, 관람 인원은 제한된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평일 5만원, 주말·공휴일 6만9000원(2025년 기준)이다.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며, 오후 3시 이후에는 입장이 제한된다.
편안한 운동화와 얇은 외투를 준비하면 좋다.

△ 걷다 보면, 나를 만나는 길.
사유원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걷고, 멈추고, 생각하라"는 메시지가 곳곳에 새겨진 이곳은 '자연 속 철학관'이라 불릴 만하다.
도심의 소음에서 벗어나 숲의 호흡과 나무의 시간, 건축의 울림을 느끼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속도가 조용히 낮춰진다.
가을의 끝자락, 군위 사유원은 걷는 이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그 물음에 잠시 멈추어 서서, 바람 한 줄기와 함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사유원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