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음모론자’ 미 보건복지부 장관, 아동 필수 접종서 독감 지우기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소아 예방 접종 지침을 전면 개정해, 아동이 반드시 맞아야 할 백신 종류를 기존 17종에서 11종으로 축소했다. 백신 음모론자로 유명한 로버트 에프(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이 취임 이후 본격적인 예방 접종 줄이기에 나선 것이다.
5일(현지시각) 질병통제예방센터가 발표한 이번 새 권고안에는 소아마비와 홍역 백신 등은 유지됐으나, 간염·독감 백신 등은 위험도를 따진 뒤 의료진·보호자 논의에 따라 접종하도록 변경됐다. 필수 접종 백신은 홍역, 볼거리, 풍진, 소아마비, 백일해, 파상풍, 디프테리아, 비형 헤모필루스인플루엔자균(Hib), 폐렴구균, 인유두종바이러스(HPV), 수두 등 11종이다.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A형·B형 간염, 뎅기열, 수막구균 백신은 특정 고위험군에게만 권고했다. 코로나19, 독감, 로타바이러스 백신 접종은 보호자와 의사가 논의해 결정하기로 했다.
미 보건복지부는 영국·덴마크 등 20개국과 비교해 미국이 “과도한 접종 국가”라며 이번 축소 배경을 설명했다. 미국은 연방정부가 아닌 주 정부가 꼭 맞춰야 하는 필수 예방 접종을 지정하게 돼 있지만,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통제예방센터의 권고 사항이 큰 영향을 미친다. 필수 예방 접종 목록에서 빠질 경우 미국 민간 의료보험 등에선 해당 백신을 더 이상 무료로 제공하지 않고 개인 부담으로 떠넘길 가능성이 높다. 미국소아과학회(AAP)는 이번 결정을 “위험하고 불필요한 조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케네디 장관이 해임한 헬렌 추 전 연방백신자문위원회 위원은 “이번 사태가 부모들의 혼란을 가중하고, 백신 접종률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미국 전역에서는 변종 바이러스로 인한 독감이 가파르게 확산하고 있다. 5일 시엔엔은 97~98년 시즌 이후 독감 유행이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질병통제예방센터 추산치에 따르면 이번 독감 시즌(12월~2월)에 최소 1100만명이 독감에 걸렸고, 12만명이 입원했으며 5000명이 사망했다. 독감 예방접종을 한 어린이들은 2019~2020년 시즌 대비 2025~26년 같은 시점에 42%에 불과하다고 시엔엔은 전했다. 의료진은 이번 독감 유행이 접종률 하락에 기인했다기보다는 최근 새롭게 등장한 ‘서브클레이드 케이(K)’라는 에이(A)형 독감 변이 탓이 크다고 보고 있지만, “독감이 심각한 시기에 독감 예방 접종 권고를 철회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해 보인다”(션 오리어리 미국 소아과학회 감염병위원회 위원장)고 우려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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