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전태일 ⑥·끝] 기술교육 내세워 ‘열정페이’…손 습진에 허리·무릎 통증도 감내

강승규 2026. 1. 6. 16:0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⑥ 보조 미용사의 고달픈 삶
미용실 오픈하기 1시간 전에 출근
청소·정돈 등으로 숨고를 틈 없어
최저임금에다 주말·야간 근무까지
폭언·성희롱 겪는 감정노동 내몰려
산업재해 신청 절차마저 까다로워
매장 옮겨가면 경력 인정 못 받기도
보조 미용사가 고객의 머리를 정리하고 있다. 샴푸와 염색, 드라이 준비 등 눈에 잘 띄지 않는 손길들이 쌓여 미용실의 하루가 완성된다. <보조미용사 박모씨 제공>

AI 인터렉티브 뉴스 보러가기

보조 미용사의 하루는 미용실 문이 열리기 전부터 시작된다. 먼저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수거한다. 수건을 정리한 뒤 샴푸대와 거울도 윤기가 나게 닦는다. 이처럼 손님을 맞을 채비가 끝나야 비로소 영업이 개시된다. 보조 미용사들은 미용실에서 가장 먼저 움직이고, 가장 오래 서 있는 이들이지만 늘 '디자이너'가 아닌 '보조'라는 명칭이 따라 붙는다. 노동을 보호하는 법과 제도는 늘었지만, 현장 깊숙한 곳으로 갈수록 이들의 고달픈 삶의 모습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화려한 미용 산업의 이면에 가려져 있는 보조 미용사들은 지금도 자신의 노동이 어디까지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쉼없이 그리고 소리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국가데이터처 등에 따르면 보조 미용사를 포함한 국내 미용업 종사자는 약 20만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상당수는 5인 미만 개인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소규모 영세 사업장인 만큼 근로시간 관리나 휴게시간 보장, 산업재해 대응에서 제도 보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 쉬는 시간 없는 하루

대구 중구 동성로의 한 중형 미용실에서 일하는 20대 후반 보조 미용사 A씨. 그는 스스로를 "하루 종일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했다. 보통 오전 9시에 출근한다. 공식 가게 오픈 시간은 10시지만, 그 전까지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바닥 청소, 수건 정리, 샴푸·염색·펌 약품 재고 확인, 도구 소독, 샴푸대 정돈, 음료 준비….

손님이 몰리기 시작하면 손놀림은 더 바빠진다. 머리를 감긴 뒤 드라이 준비를 해야 한다. 염색약을 배합하고 나서 호일을 자르고, 파마 롯드(막대모양의 도구)도 정리한다. 예약이 빽빽한 날엔 식사 시간도 뒤로 밀리기 일쑤다. "지금은 못 먹어도 좀 이따 먹지"라는 말을 반복하며 일에 전념하다 보면 어느새 식사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다. 쉬는 시간은 명확한 '휴게'로 보기 어렵다. 손님 발길이 뜸해지는 짧은 시간에 잠시 숨을 고르는 정도에 가깝다.

"손님이 없을 때가 쉬는 시간 아니냐고요? 그때가 오히려 더 바빠요. 수건 돌리고, 청소하고, 도구 닦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쓸고…. 손님이 오면 곧바로 응대해야 하니까요." 미용실에서 '손님이 없는 시간'은 공백이 아니라 대기이자, 정비 시간이다. 그 정비를 누가 하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대개 같다. 보조 미용사다.

◆ 계약서와 다른 현장

미용사가 손님의 머리를 자르고 있다. <영남일보 DB>

A씨처럼 보조 미용사의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일부는 기본급에 인센티브(매출·실적 수당)가 붙지만, 보조가 직접 매출을 만들기 어려운 구조에서 인센티브는 '있으면 좋은 돈' 정도로 치부된다. 주말·야간 근무가 잦아도 연장수당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사례도 적잖다.

"계약서에는 적혀 있는데, 실제론 '다들 이렇게 한다'는 말로 넘어가요. 주말이 제일 바쁘니까 쉬기도 어렵고요." 근로계약서 작성 여부는 사업장마다 편차가 크다. 작성하더라도 근무시간, 휴게시간, 수당 산정 방식이 현장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보조 미용사 입장에선 문제 제기가 쉽지 않다. '승급'과 '평가'가 전적으로 상사의 판단에 맡겨진 구조에서 자칫 입바른 소리 하나는 당장 내일의 근무표를 바꿀 수 있다는 불안감이 늘 따라다닌다.

특히 보조 미용사 경력은 '실력과 태도'라는 명분 아래, 객관적 기준 없이 관리되는 경우가 많다. 언제쯤 디자이너로 올라갈 수 있는지, 또 어떤 기준을 충족하면 되는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보조 미용사는 계속 '보조' 신세가 된다. 시간은 계속 흐르지만 지위는 멈춰 있는 셈이다.

◆ 일상이 된 위험

보조 미용사의 손은 늘 젖어 있다. 샴푸대에서 물을 만지고, 염색약과 펌 약품을 다루며, 청소용 세제를 쓴다. 피부는 쉽게 갈라지고, 습진이 생긴다. 손톱도 많이 약해진다. 화학물질 노출여부는 냄새로 먼저 알 수 있다. 환기가 충분하지 않은 공간에선 두통이 자주 생긴다고 A씨는 전했다.

하지만 보호장구 착용은 '권리'가 아니라 '선택'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장갑을 끼면 손 감각이 둔해지고, 손님 응대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자연스레 멀리하게 된다. 마스크를 쓰면 손님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올 수 있어 벗게 된다. 서비스업 특유의 '고객 중심' 문화에 안전은 뒷전으로 방치돼 있다.

미용실 작업대 위에 가위와 빗, 드라이 도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하루 종일 반복되는 손놀림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 장비들로, 보조 미용사의 노동이 가장 먼저 닿는 현장이다. <보조미용사 박모씨 제공>

온 종일 서서 일하는 탓에 허리·무릎엔 통증을 달고 산다. 샴푸대에서 고개를 숙인 채 반복 동작을 하다 보면 어깨와 손목에 무리가 간다. 불만을 토로하면 정식 미용사들은 이런 통증은 대개 '원래 그런 일'이라며 곧바로 정리해 버린다. 고심끝에 산업재해 신청을 해보려 해도 절차가 까다로워 쉽지가 않다. 사실 A씨에겐 신청에 앞서 먼저 걱정되는 일이 있다고 했다. "신청하면 일하기 힘들어지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이 밀려와서다.

◆ '교육'에 가려진 노동

A씨의 말을 종합해보면, 보조 미용사에게 자주 따라붙는 말들이 있다. "기술 배워가니까" "경력 쌓는 거니까" "처음엔 다 그런 거야". 미용 교육을 받는다는 논리 속에서 노동의 가치는 점점 낮아지고 '지금의 고생'은 미래의 보상으로 미뤄진다. 하지만 미래의 보상이 반드시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업장을 옮기면 '교육은 다시 처음부터'가 되는 곳도 더러 있다. 이전 매장에서 쌓은 숙련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으면 보조는 계속 '초보'로 남게 된다. 다시 '경력 제로베이스'에서 일하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생계를 위한 몸부림이 될 수 있는 그 시간들은 '훈련 기간'이란 말로 쉽게 치환될 수 있다.

특히 미용업계는 개인 사업장 비중이 크고, 업장 규모도 다양해 노동관계법이 현실에 스며들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각지대는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제도가 현장까지 뿌리내리는 시간이 길어서 생긴다.

◆ 기준 없는 노동의 반복

보조 미용사 문제는 '개별 업장의 태도'로만 볼 수 없다. 개인사업장이 많은 업종 특성상, 기준이 없을수록 취약한 노동이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필요한 건 근로조건의 가시화다. 근무시간·휴게시간·수당 지급 기준이 선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실제 현장 운영과 계약 내용이 일치하도록 관리·점검도 이뤄져야 한다.

보조 미용사의 경력 인정 구조는 반드시 손봐야 할 과제다. 현재는 업장별 내부 기준에 따라 승급 여부가 결정되다 보니, 장기간 보조에 머무는 사례가 발생한다. 일정 근무 연한과 교육 이수, 숙련도를 기준으로 한 최소한의 경력 인정 체계가 마련된다면 보조의 시간은 '대기'가 아니라 '경험 축적'이 될 수 있다.

감정노동 보호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손님 응대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언이나 성희롱에 대해 '참는 것'이 아니라 대응할 수 있는 기준과 절차가 필요하다. 서비스업이라는 이유로 모든 감정을 노동자 개인에게 떠넘기는 관행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문제 발생 시, 사업주의 개입과 조치가 의무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지현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정책선전국장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다. <민주노총 제공>

현지현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정책선전국장은 "보조 미용사 도 명백한 노동자이지만, 실제 현장에선 교육생이나 견습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휴게시간·연장근로 수당 등 기본적인 보호에서조차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미용업계는 5인 미만 사업장, 프리랜서 계약 형태가 혼재돼 있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임금체불이나 부당한 근로조건 문제는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부담이 큰 만큼, 노동청 진정이나 노동단체 상담 창구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도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 제언]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현장 재량에 맡겨진 노동…이젠 공통 기준 세울 때"

정용옥 대한미용사회중앙회 달성군지회장 "교육 이름 뒤에 가려진 노동, 이제 바로 봐야"

보조 미용사의 노동 여건을 개선하려면 제도 정비가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선 근로조건을 명확히 드러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래야 근무시간과 휴게시간, 연장근로 여부, 수당 산정 기준을 계약서에 구체적으로 담고 실제 현장 운영 상황에 부합하는 지를 점검할 수 있다. 노동청의 지도·점검을 강화하고 표준 근로계약서를 현장에 정착시키는 노력도 요구된다.

경력 관리 방식에도 손질이 필요하다고 민주노총 등 노동자 를 대변하는 단체들은 목청을 높이고 있다. 실제 업장마다 그 기준이 달라 같은 일을 오래 해도 숙련정도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일정 근무 기간과 교육 이수, 기술 수준을 토대로 단계별 체계를 마련하면 보조 단계에서 장기간 머무르는 구조를 완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구 지역별 미용실 수. <그래프=생성형 AI>

작업 환경 역시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염색약과 펌 약품 등 화학물질을 반복적으로 다루는 만큼 보호장갑과 마스크 착용 기준을 분명히 하고 환기 설비 관리도 강화해야 한다. 하루 대부분을 서서 보내는 노동 특성을 고려해 휴식 기준을 별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고객 응대 과정에서 벌어지는 폭언이나 성희롱에 대응할 장치도 필요하다. 문제가 발생하면 사업주가 책임 있게 개입하고 노동자가 불이익을 걱정할 필요없이 곧바로 신고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미용업 종사자의 근로 기준을 업계 차원에서 운영하는 사례도 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견습 단계에서도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직무 단계에 따라 임금과 역할을 구분한다. 노동관련 전문가들은 국내 미용업계도 최소한의 경력 기준과 근로조건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소규모 사업장이 많은 업종일수록 근로 여건이 현장 재량과 관행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며 "근무시간, 휴게시간, 수당 지급, 경력 인정 방식 등이 사업장마다 제각각 운영되는 문제가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같은 구조에서는 노동자 권리 보호와 합리적 인력 운영이 모두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며 "표준 계약서와 업종별 기준, 경력 인정 체계 등 최소한의 공통 규범을 마련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용옥 대한미용사회중앙회 대구 달성군지회장은 "보조 미용사들은 기술을 배우는 과정에 있는 인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용실 현장을 실제로 움직이는 엄연한 노동자"라며 "매장 문을 열기 전 준비부터 영업 중 반복되는 샴푸·정리·청소·보조 업무까지 맡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현장에서는 이들의 노동이 교육이나 수련이라는 이름 아래 과소평가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지회장은 "정부는 소규모 미용업장의 특성을 보다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휴게시간 보장과 연장근로 기준, 표준 근로계약서 정착, 경력 인정 체계 마련 등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며 "보조 미용사의 헌신이 더 이상 관행과 인내로만 버텨지는 시스템이 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강승규기자 kang@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