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전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복원 뒤 삼성 ‘숭산’ 프로젝트 재조명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7일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를 찾는 가운데 33년 전 청사 복원을 추진한 삼성의 '숭산(嵩山) 프로젝트'가 재조명되고 있다.
삼성물산은 중국과 정식 수교(1992년 8월) 이전인 1990년부터 중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던 중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가 흔적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을 알고 복원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7일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를 찾는 가운데 33년 전 청사 복원을 추진한 삼성의 ‘숭산(嵩山) 프로젝트’가 재조명되고 있다.

삼성물산은 중국과 정식 수교(1992년 8월) 이전인 1990년부터 중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던 중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가 흔적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을 알고 복원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때 복원된 청사는 1926년 7월부터 임시정부가 항저우로 옮겨간 1932년 4월까지 약 6년간 임시정부의 심장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오랫동안 민가로 방치되면서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각하게 훼손돼있었다.
삼성물산은 1990년 12월 ‘잘못 소개된 우리의 역사’라는 제목의 책자를 발간한 것을 계기로 문화사업 확대를 위해 사내에서 ‘이벤트 현상공모’를 실시했다.
당시 중국 상하이 출장에서 돌아온 유통본부 영업담당 이재청 부장이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복원 건’을 제안했고, 대상으로 선정된 해당 사업이 본사 경영회의를 통과하며 ‘숭산(嵩山) 프로젝트’로 명명됐다. 한국의 정통성을 드높이고 선인들의 애국정신을 계승하자는 고취하자는 취지였다.
삼성물산은 당시 문화부, 독립기념관의 협조를 얻어 1991년 중국 상하이시 측과 복원합의서를 채택했다. 그 건물에 거주하고 있던 주민들에게 이주 비용을 지원하고 계단, 창틀 등 세세한 부분을 손질했다. 수소문 끝에 1920년대에 사용하던 탁자, 의자, 침대 등을 수집해 회의실, 부엌, 접견실, 집무실, 숙소 등을 임시정부 당시 모습 그대로 재현했다.
1993년 4월13일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에 맞춰 진행된 준공식에는 김구 주석의 아들 김신 전 교통부 장관, 안중근 의사의 조카 안춘생 전 광복회장, 윤봉길 의사의 손자 윤주웅 씨, 최창규 독립기념관장, 삼성물산 신세길 사장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윤주웅 씨는 당시 삼성물산에 보낸 감사 편지에서 “할아버지가 비감한 마음으로 수시로 드나들었을 임시정부 청사가 복원되는 것을 보니 가슴이 벅차오르는 설렘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며 “참으로 다행히 이 건물이 이렇게 보존될 수 있게 노력해 준 삼성물산과 독립기념관, 우리 정부 관계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삼성물산은 상하이 임정 청사 복원사업과 함께 중국 내 산재해 있는 한국 문화재 실태조사를 시행해 1400여건의 문화재를 발굴하고 이를 종합해 중국과 국내에서 관련 책자를 발간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60대 이상 빚투가 7조7000억원…MZ의 2배
- [법조 인사이드] 리얼돌 수입, 6년 재판 끝 ‘합법’… “미성년 외형만 금지”
- [인터뷰] ‘한강버스’의 캡틴들 “안전이 최우선, 수심·항로·기상 철저 점검“
- 전쟁에도 ‘불닭볶음면’은 잘 팔려…고환율 시기에 주목할 종목
- 기술력은 韓이 앞서지만… 中, 자국 물량 발주 앞세워 친환경선박 시장 독주
- [르포] ‘3000원 한강버스’ 뜬다… 출퇴근 ‘대안’ 부상
- [비즈톡톡] 30여년 전 닷컴버블 최고점에 통신 3사 주식 샀다면… SK텔레콤만 전고점 돌파
- 한화에어로, ‘풍산 탄약사업’ 인수 추진… K9 자주포 시너지 기대
- “무기 재고 바닥났다”… 전쟁 장기화에 방산업계 웃는다
- “환자들 투석도 못 해줄 판” 전쟁 여파로 5월 이후엔 병원도 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