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사로잡은 ‘왕실 금박’, 그 뒤엔 90년대생 전수자가 있다

김관래 기자 2026. 1. 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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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장인]⑤ 김진호 금박장 전수장학생
“AI 시대, 손으로 만드는 가치 지켜야”
금박, 카드지갑·키링 등 일상 소품으로

[편집자주] 이직이 흔한 시대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3년까지 한 직장에서 계속 근무한 사람은 10명 중 4명에 그쳤다. 특히 MZ세대(1980~2000년대생)는 안정성보다 성장 가능성과 개인의 가치를 우선하며 직장을 옮기는 데 주저함이 적다. 이런 시대에 이동 대신 한 우물을 택한 젊은이들이 있다. 속도보다 깊이, 유행보다 숙련을 선택한 ‘장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금박장 전수장학생 김진호(27)씨가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의 '금박연'에서 금박 작품 '까치와 호랑이'를 들고 서 있다. 김씨는 최근 국가무형유산기능협회가 미국 워싱턴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서 주최한 광복 80돌 기획전 ‘한국적 환대의 아름다움’에 이 작품을 출품했다. 세계적 인기를 누린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호랑이 캐릭터 ‘더피’의 원형이어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김관래 기자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 골목 안쪽, 한옥 한 채에 자리한 공방 ‘금박연’에서 김진호(27)씨는 국가무형유산 금박장 전수장학생 과정을 밟고 있다. 현재 공방 연구실장을 맡고 있는 그는 아버지인 김기호 금박장 보유자를 따라 전수 교육에 들어선 지 5년째다.

금박은 금을 머리카락보다 얇게 두드려 천이나 가죽 위에 문양을 찍어내는 공예다. 문양판에 풀을 바른 뒤 찍은 뒤 금박을 얹고, 다시 털어내야 문양이 드러난다. 공정에 따라 수개월, 길게는 1년 이상 걸린다. 김씨는 이를 ‘창조와 파괴의 미학’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붙인 것을 일부러 떼어내야 진짜 가치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김씨의 집안은 1856년 조선 철종 때부터 왕실 부금장의 명맥을 6대째 잇고 있다. 올해로 170년 역사다. 부금장은 직물이나 복식에 금박을 붙여 문양을 표현하는 장인이다.

김씨가 워싱턴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서 열린 광복 80돌 기획전 ‘한국적 환대의 아름다움’에서 출품한 '까치와 호랑이' 제작 과정. 세계적 인기를 모은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호랑이 캐릭터 ‘더피’의 원형이다. /금박연 제공

1대 김완형 장인에서 시작해 2대 김원순, 3대 김경용, 4대 김덕환에 이어 김씨의 아버지인 김기호 보유자가 5대째다. 지난 5일 이재명 대통령이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선물한 ‘용문 액자도’ 역시 김기호 장인의 작품이다. 용과 국화 당초 문양을 금박으로 표현해 왕실의 위엄과 번영을 상징했다.

김씨의 어머니인 박수영 금박장 이수자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연군주 노의’ 재현을 비롯해 ‘영친왕비 하피’, ‘의친왕비 녹원삼’ 재현 작업에 참여했다. 2대 김원순 장인은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에 기록됐고 3대 김경용 장인은 초대 국가무형문화재 금박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김씨는 어릴 적부터 금박 작업을 지켜봤지만, 처음부터 가업을 잇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며 다른 길을 고민하던 중 인공지능(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 오히려 손으로 다루는 금박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다고 한다. 다음은 김씨와 나눈 일문일답.

최근 김씨는 용 문양 금박을 작업하고 있다. 금박을 섬세한 도구로 다시 다듬는 과정이라고 한다. /김관래 기자

―금박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익숙하지만 늘 새롭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공예다. 문양판에 풀을 발라 천에 찍고, 금을 얹은 뒤 풀이 묻지 않은 부분의 금을 손으로 떼어내야 문양이 드러난다. 역설적으로 붙인 금을 일부러 떨어뜨려야만 진정한 가치가 나타난다. 창조와 파괴를 반복하는 작업이다.”

―전승을 결심한 계기가 있나

“처음부터 가업을 이을 생각은 없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해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그런데 AI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단순히 기술을 활용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창작에 회의가 들었다. 그 과정에서 창작의 본질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됐고, 개인의 철학과 역사, 불변성을 지닌 금박 일에 눈을 돌리게 됐다.”

―가업이 주는 무게가 가볍지 않을 텐데

“증조·고조할아버지부터 이어진 뿌리를 생각하면 책임감이 크다. 다만 국가무형유산 금박장 보유자에게 배울 수 있다는 점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노하우를 가장 가까이에서 접할 때마다 대단하다고 느낀다.

온 가족이 함께 작업하다 보니 일상 자체가 전수의 시간이 된다. 작업 시간은 물론 밥 먹고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조율과 수정이 이어진다. 아이디어 공유도 훨씬 자유롭다. 휴일에는 가족과 박물관을 찾아 유물을 보고 토론한다.”

그래픽=손민균

―금박을 처음 배우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미국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그림체에 익숙하다 보니, 붓의 선을 살려 한국적 문양을 그리는 일이 특히 어려웠다. 지금도 유물과 서적을 보며 공부하고 있고, 선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계속 연습하고 있다.”

―금값 상승의 영향은 없나.

“영향이 크다. 금박 작업은 재료비 비중이 높아 금값 상승이 곧 부담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항상 순금박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의 성격에 따라 다른 금속이 섞인 금을 쓰기도 한다.”

―전통 공예를 두고 ‘고루하다’는 편견도 있다.

“세계적 인기를 끈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더라도 전통 공예는 충분히 대중적으로 매력적일 수 있다. 물론 ‘올드하다’는 오랜 선입견을 깨는 과정도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금박 의복이나 공예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지 잘 모른다. 제작 과정과 가치를 함께 알린다면 관심도 자연스럽게 확장된 것이라고 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선물한 '금박 용문 액자'. /청와대 제공

―일상 제품에 금박을 적용하는 이유는.

“전통 공예가 과거 장식품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도 아름다운 일상품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가죽 카드 지갑이나 핸드백, 키링 등 일상에서 쓰는 물건에 금박을 적용하고, 전시회 출품이나 패션 브랜드와 협업도 이어가고 있다.”

―금박장 전수자로서 목표는.

“AI의 발전으로 많은 직업이 사라질 수 있는 시대다. 그럴수록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일이 지닌 고유한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통 공예가 대중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식을 계속 고민하고,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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