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접목 전자현미경 분석으로 나노 구조 예측 길 열다

국내 연구팀이 유기고분자, 바이오 소재와 같은 ‘연성 물질(soft matter)’의 복잡한 자기조립 구조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자기조립 구조란 외부에서 복잡한 가공이나 조작을 하지 않아도 분자·이온·나노입자 등이 자연스럽게 스스로 모여 규칙적인 배열이나 구조를 형성하는 현상 또는 그 결과물을 가리킨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은 이은지 신소재공학과 교수팀이 인공지능(AI)을 투과전자현미경(TEM) 분석에 접목해 연성 물질의 복잡한 자기조립 구조를 ‘관찰’하는 수준에서 자동 분석·예측하는 단계로 확장하는 새로운 분석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6일 밝혔다.
TEM은 전자빔을 시료에 통과시켜 형성된 신호를 영상으로 만들어 나노·원자 수준의 미세 구조를 관찰하는 장비다. TEM으로 매우 얇게 제작된 시료를 통과한 전자의 차이를 이용해 내부 구조와 결정성, 결함 등을 분석할 수 있다. 구조와 조성을 함께 파악할 수 있어 재료과학과 나노기술 분야에서 핵심적으로 활용된다.
연성물질은 단백질과 세포막 같은 바이오 소재부터 고분자, 액정 등 합성 소재까지 폭넓게 포함한다. 분자들이 스스로 모여 미세한 나노 구조를 형성하는 자기조립 특성 덕분에 다양한 첨단 산업 분야에서 핵심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자기조립 구조는 차세대 백신에 사용되는 유전물질 전달 기술, 약물전달 시스템, 차세대 에너지 저장소재 등에서 소재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구조가 매우 작고 복잡해 정확히 관찰하고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연성물질은 주로 탄소·수소·산소 등 가벼운 원소로 구성돼 전자현미경 영상에서 구조의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전자빔에 의해 구조가 쉽게 변형되거나 손상되는 문제가 있다. 기존 전자현미경 분석만으로는 연성 물질 고유의 나노 구조와 자기조립 과정을 정밀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다.
연구팀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초저온 전자현미경(cryo-TEM), 전자단층촬영(ET), 실시간 액상 전자현미경(LP-TEM) 등 서로 다른 TEM 기법에 딥러닝 기반 인공지능(AI) 기술을 결합했다.
연구팀은 △복잡한 나노 구조를 자동으로 구분하는 구조 인식 △여러 장의 2차원 전자현미경 영상을 바탕으로 나노 구조를 입체적으로 구현하는 3차원 재구성 △자기조립이 진행되는 과정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석하는 동역학 해석을 자동화했다.
초저온 전자현미경 기술은 연성 물질의 본래 나노 구조를 거의 손상 없이 포착하는 역할을 했으며 전자단층촬영 기술은 이러한 구조를 3차원 형태로 재구성하는 데 활용됐다. 실시간 액상 전자현미경 기술은 용액 내에서 자기조립이 진행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관찰함으로써 구조가 형성되고 변화하는 과정을 시간 축에서 분석할 수 있도록 했다.
연구팀은 구조 정보를 기반으로 소재의 성능을 미리 가늠할 수 있는 물성 예측까지 연계하는 통합 분석 전략을 구현했다. AI를 접목해 방대한 고차원 전자현미경 데이터를 자동으로 처리·해석함으로써 구조와 물성 간의 상관관계를 규명하고 향후 구조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분석 체계를 구축했다.
연구결과는 전자현미경을 ‘보는 도구’에서 ‘이해하고 예측하는 도구’로 확장한 성과로 연성물질 연구 전반에 새로운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성과로 평가된다.
연구는 전자현미경 분석에 AI를 결합해 연성 물질의 자기조립 메커니즘을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이미지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재의 물성을 예측해 ‘이미지 기반 소재 설계’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가 크다.
연구팀은 향후 AI 기반 자동 분석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극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기능성 연성 소재 연구에 이를 적용함으로써 바이오의료 및 에너지 분야로의 확장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 교수는 “이번 연구는 전자빔에 민감한 연성 소재의 자기조립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이를 AI로 정밀 분석해 물성 예측까지 연결할 수 있는 분석 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이미지 관찰에 머물던 기존 분석을 넘어 데이터 기반 소재 설계로 확장될 수 있는 새로운 연구 방향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연구논문 제1저자인 윤준연 GIST 신소재공학과 박사과정생은 “방대한 고차원 TEM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나노 구조와 물성 사이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AI가 전자현미경 이미지로부터 물질의 특성을 예측하고 최적의 소재 설계를 제안하는 ‘소재 정보학’의 핵심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라고 설명했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엔피지 아시아 머티리얼즈(NPG Asia Materials)'에 지난해 12월 23일 온라인으로 게재됐다.
<참고자료>
- doi.org/10.1038/s41427-025-00629-0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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