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스케이팅 개성만점 엔딩, 빙판에 쓰러지는 이유

피겨스케이팅 올림픽 선발전에서 여자 싱글의 이해인이 빙판에 쓰러지는 모습은 평소 피겨를 즐겨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 같다. 일부에선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서 또는 모든 것을 다 바친 후의 허탈함 같은 동작으로 느끼는 것 같아 더욱 흥미롭다. 올림픽 무대가 절실했던 이해인의 상황을 보면 오히려 더욱 와닿는 해석일 수 있지만, 이해인은 프로그램 음악이 '카르멘'이었기에 비극의 주인공 카르멘이 죽는 장면을 연기로 나타낸 것이다.

'카르멘' 프로그램에서 마지막에 쓰러지는 장면은 시대를 풍미했던 피겨 여왕 카타리나 비트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카르멘 전쟁'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던 미국의 데비 토마스와의 대결이 워낙 화제가 된 가운데 비트가 보여준 '카르멘'의 마지막 장면은 깊은 인상을 남겼고, 국제빙상연맹에서는 특별한 이유없이 빙판에 쓰러지는 것을 금지했다. 비트 이후에도 많은 선수들이 '카르멘'을 연기했지만 빙판에 쓰러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이유다.

카르멘 연기의 마지막에 쓰러진 건 비트가 처음이지만 빙판에 쓰러지는 명장면은 1984년 올림픽에서 보여준 영국의 아이스댄스 팀 토빌&딘이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토빌&딘은 음악 '볼레로'에 맞춰 올림픽 역사에 남을 연기를 선보였다. '볼레로' 를 통해 두 사람이 보여주는 환상적인 호흡은 완벽했으며 피겨스케이팅 역사상 최초로 모든 심판으로부터 예술점수 만점을 받은 최고의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1984년 당시 피겨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서도 토빌&딘의 연기를 TV에서 반복해 보여주었을 정도로 피겨 역사에 남을 명연기였다. 전설적인 토빌&딘의 '볼레로'는 두 남녀가 빙판에 쓰러지는 것으로 끝난다. 특이하게도 얼음위에서 무릎을 꿇고 시작한 '볼레로'는 빙판에 쓰러지면서 마무리된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창의적인 안무를 선보인 이 작품은 피겨스케이팅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로그램으로 남아 있다.
카타리나 비트의 카르멘 마지막 장면은 워낙 큰 반향을 일으켰고, 국제빙상연맹은 빙판에 쓰러지는 동작을 금지한다. 동독 출신인 비트는 '심판을 유혹한다.' '지나치게 선정적이다.' 같은 비판을 받았고, 조금만 특별한 의상을 입어도 금지당하는 등 유럽과 미국이 주류인 피겨계에서 많은 견제를 받았는데, 쓰러지는 동작을 규제한 것도 비슷한 측면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런 저런 제약은 2004년 신 채점제가 도입되면서 달라졌다. 기술점수와 예술점수를 6.0 만점으로 평가해 순위만을 가리던 구 채점제에 비해 신 채점제는 기술 요소 하나하나를 점수화해 종합 점수로 순위를 가리는 방식이어서, 구 채점제에 비해 프로그램이 획일화 될 우려가 높았다. 그래서 과거의 일부 규제를 해제했으며 남녀 싱글과 페어 부문에서 빙판에 쓰러지는 것에 대한 규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비트처럼 빙판에 쓰러져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물론 피겨의 전설 카타리나 비트와 비교되는 불리함은 선수가 감수해야 할 몫일 것이다.

국제빙상연맹의 규제와 카타리나 비트와의 비교로 인해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빙판에 쓰러지는 엔딩 장면을 최근에는 자주 볼 수 있다. 이번 올림픽 여자 싱글에서 미국-일본 선수들과 금메달을 다툴 유력 후보인 러시아의 페트로시안은 이미 2021년 겨울 얼음위에 쓰러지는 엔딩 장면을 보여줘 화제를 모았다.

남자 싱글에서는 연기를 끝낸 후 빙판에 쓰러지는 선수들이 대거 등장했다. 모든 점프를 4회전으로 뛰는 역대 최고의 점퍼인 미국의 일리야 말리닌과 밀라노 올림픽 메달 후보인 프랑스의 샤오힘파는 그랑프리 대회에서 연기를 마친 뒤 마치 테니스 선수가 경기를 끝낸 것처럼 빙판에 드러 눕는 모습을 보였다. 두 선수의 공통점은 고난도 4회전 점프를 구사한다는 점이다. 과거와 비교하면 훨씬 강도높은 점프를 소화하는데다 말리닌과 샤오힘파는 백플립까지 선보이는 등 체력 소모가 극심한 편이어서 연기를 마친 뒤 쓰러지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정식 안무는 아니지만 안무처럼 느껴지는 이들의 동작은 올림픽에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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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윤 기자 (dream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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