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호박, 시간을 품은 ‘정직한 단맛’…다른 식재료와도 잘 어울려

관리자 2026. 1.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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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완서는 호박을 못생긴 존재로 취급하는 세태가 못마땅했다.

"반들반들 윤기 나고 허리가 잘록한 애호박을 보면 뭐 해먹겠다는 애정 없이도 무조건 사고 본다"고 썼다.

애호박과 늙은 호박은 수확 시기만 다른 같은 계통일 수도, 아예 다른 품종일 수도 있다.

여름철 덜 자란 연한 녹색의 조선애호박을 가을까지 키우면 커다란 늙은 호박이 되지만, 시중의 늙은 호박은 청둥호박처럼 애초에 다른 계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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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이야기] 호박
씨 품고 꽃에서 자란 과일
비타민A·섬유질 많은 식재료
계절 따라 겉과 속 식감 달라
전이나 찌게에…감칠맛 배가
감태면 위에 고명으로도 별미
서울 광화문 근처의 한식당 ‘대접’에서는 감태면 위에 올려진 초록빛 애호박의 부드러운 단맛을 느낄 수 있다.

소설가 박완서는 호박을 못생긴 존재로 취급하는 세태가 못마땅했다. “반들반들 윤기 나고 허리가 잘록한 애호박을 보면 뭐 해먹겠다는 애정 없이도 무조건 사고 본다”고 썼다. 어디 외모뿐이겠는가. 호박이 시간을 품은 과일이라는 사실도 자주 무시된다. 식탁 위에서는 채소처럼 다루지만 식물학적으로 호박은 씨를 품고 꽃에서 자라나는 엄연한 과일(fruit)이다.

이 과일 속에는 계절의 시간이 담겨 있다. 여름에는 껍질째 먹을 수 있을 만큼 부드러운 호박이, 겨울에는 두꺼운 껍질 속에 고구마 같은 질감의 노란 속살을 숨긴 호박이 제철을 맞는다. 물론 이런 구분이 늘 칼같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애호박과 늙은 호박은 수확 시기만 다른 같은 계통일 수도, 아예 다른 품종일 수도 있다.

여름철 덜 자란 연한 녹색의 조선애호박을 가을까지 키우면 커다란 늙은 호박이 되지만, 시중의 늙은 호박은 청둥호박처럼 애초에 다른 계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늙은 호박을 밀어내고 인기를 끄는 단호박 역시 연중 내내 구할 수 있지만 맛과 질감·저장성 면에서는 겨울호박의 특성을 띤다.

호박은 최신 음식 트렌드와도 결이 잘 맞는다. 저지방·저칼로리에 비타민A와 섬유질이 풍부하니 건강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식재료다. 주키니를 길게 뽑아 면처럼 즐기는 유행은 비교적 최근 일이지만, 익히면 속살이 국수 가락처럼 풀어지는 스파게티호박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하지만 호박의 미덕은 단순함에 있다. 어릴 때 딴 호박이 더 달고, 된장찌개나 국수 고명처럼 소박한 자리에서 빛을 발한다. 얇게 썰어 부친 호박전은 그 은근한 단맛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요리다.

호박은 감칠맛을 품은 다른 식재료들과도 잘 어울린다. 19세기 조리서 ‘시의전서’에 기록된 호박선은 어린 호박에 칼집을 내고 고기소를 채워 쪄낸 요리다. 100년 전 음식이지만 TV 요리경연에 내놓아도 손색없어 보인다. 새우젓에 애호박을 볶아 들기름을 더해 먹는 방식 역시 한국인이 오래전부터 익혀온 단순해보이면서도 감칠맛을 극대화한 호박 요리법이다.

보관 기간이 짧은 여름호박과 달리 겨울호박은 전분 함량이 높고 수개월까지 보관이 가능하다. 노란색, 오렌지색, 때론 녹색 줄무늬를 띤 겨울호박은 날것일 땐 단단하지만 익히면 고구마처럼 달콤하고 부드럽게 변한다. 버터넛스쿼시 같은 겨울호박을 낮은 온도로 오래 가열하면 단맛이 농축되고 감칠맛이 깊어진다. 서구에서 호박파이와 수프를 즐기듯, 우리도 겨울이면 뜨끈한 호박죽을 찾는다. 오븐에 구워 꿀을 뿌리거나 그냥 쪄서 먹어도 좋다.

이제 식당을 소개할 차례다(홍보성 글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자비를 들여 취재한 기록이다). 박완서 작가는 못생긴 걸 호박에 비기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도시 사람들이 지어낸 거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도시 한복판 식탁에서도 호박의 빛나는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 광화문 근처의 한식당 ‘대접’에서는 비빔 감태수연면에 바지락살을 더하고 애호박과 달걀지단을 함께 올려 낸다. 연한 녹색이 감도는 감태면의 결을 따라 눕혀진 초록빛 애호박이 단정하고 아름답다. 호박은 그런 존재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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