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하늘의 별 된 안성기

“얼굴이 심하게 구겨진 인간이 밤이면 밤마다 영월 시내에 나타나 미인을 찾아 헤맨다고 합니다. 밤길 조심하시구요.”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한물간 가수 최곤(박중훈)이 DJ 박스에서 매니저 박민수(안성기)를 타박하며 내뱉는 멘트다. 늘 투덜대는 최곤을 살뜰히 챙기는 ‘박민수’는 배우 안성기가 그의 실제 성격과 가장 닮은 인물로 꼽은 캐릭터이다. 2006년 9월 개봉된 이 영화는 비만 오면 생각나는 명작이다. 자신의 어깨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박중훈에게 말없이 우산을 씌워주는 마지막 컷은 지금도 먹먹하다. 이 장면은 안성기의 애드리브로 탄생했다는데, 인간 안성기를 보는 듯해서 더 설득력 있다.
안성기는 국민배우다. 연기를 64년이나 오래해서, 잘해서만은 아니다. 입 양 끝에는 늘 선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밭고랑처럼 갈라진 눈가 주름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거절도 잘 못했다. 다양한 감투도 그래서 썼다. 2000년부터 스크린쿼터 수호천사단 단장을 맡고, 영화불법복제방지 캠페인 ‘굿다운로더’ 홍보대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가 유일하게 거절한 자리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다.
안성기는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등 고 최인호 작가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에도 여러 편 출연했다. 최 작가는 <최인호의 인연>에서 안성기에 대해 “천사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며 극찬했다. 말 그대로 그는 흔한 스캔들조차 한 번 없었던, 선한 영향력을 가진 천생 배우였다.
영원한 배우, 후배들이 닮고 싶은 선배였던 그가 5일 세상을 떠났다. “오래 연기하는 게 꿈이자 숙제”라 한 그는 2019년 혈액암을 선고받고도 영화를 하고 싶어 했다. 투병 중에 30㎏에 육박하는 갑옷을 입고 <노량: 죽음의 바다> 촬영에 임했다. 그 영화는 유작이 됐다. 2022년 대종상영화제에서 공로상을 받고 “나이를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최근 들어 시간과 나이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던 짧은 소감이 작별사가 됐다. “새로운 영화로 찾아뵙겠다”던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하늘의 ‘별’이 된 그는 우리 마음속에서 지지 않을 것이다. 특유의 쇳소리와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더는 들을 수 없어 많이 안타깝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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