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교과서 데자뷔? ‘속도전’ 인공지능 계획에 교육계 우려

정부가 인공지능(AI) 전반을 아우르는 국가 행동계획을 발표했는데, 이중 교육 분야를 두고서 교육계가 우려를 표하고 있다. 교사와 연구자들은 AI 교육 의무화와 교과서·평가·대입 제도 개편과 관련된 내용이 충분한 논의 없이 ‘속도전’에만 방점이 찍혀 있다고 지적했다.
5일 취재를 종합하면 전략위는 지난달 16일 대한민국 인공지능 행동계획 가안을 공개하고 지난 4일까지 의견수렴을 진행했다. 대한민국 인공지능 행동계획은 AI 혁신을 산업·공공·교육 등 사회 전반에 체계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정부의 실행 전략 로드맵으로, AI 인재 양성, 산업 전환, 교육·평가 체계 개편 등 구체적 실행과제를 담고 있다. 이중 교육(인재) 분야는 초·중·고교 전학년 연속적인 디지털·AI 교육 필수 이수, 초·중등 국가 교육과정·교과서 체제 재구조화, 평가·입시 제도 혁신 등 12개 과제로 구성됐다.
의견수렴 기간 동안 교사·연구자들은 잇따라 의견서를 제출해 AI의 교육 도입이 “검증과 숙의 없이 속도전에 치우쳐 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충분한 준비 없이 추진됐다가 좌초됐다는 평가를 받은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과정과 유사하다는 비판도 공통적으로 담겼다.
AI 교육 관련 대부분의 정책 과제는 올해 1분기에 착수해 내년 중 마무리하는 빠듯한 일정으로 제시됐다. 김재인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교수는 의견서에서 서·논술형 평가에 AI를 도입하는 계획을 ‘속도전’의 대표 사례로 꼽았다. 김 교수는 “제도 변경을 위해서는 대조군을 설정한 비교 연구를 먼저 해야 한다”며 “정부는 올해 1분기까지 학습용 데이터를 구축해 AI 채점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 우수 모델을 발굴·확산한다고 하는데, 이는 타당성 검토도 없이 당장 밀어붙이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수험생과 학부모의 민감도가 높은 대입 제도를 AI 서·논술형 평가를 통해 1~2년 내 개편하겠다는 취지로 읽히는 구상도 무리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성철 부산 신명초 교사는 의견서에서 “입시 제도는 사교육 팽창이나 계층간 교육격차 심화 등 부작용까지 고려해야 해, AI를 통한 평가 방식을 도입한다고 쉽게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라며 “AI 기술의 도입만으로 평가의 공정성과 수용성이 확보될 것이라는 접근은 지나치게 기술에 낙관적인 관점에 기반한 것”이라고 했다.
인공지능 계획에는 국가교육위원회가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대입 제도 개편 방향을 올해 3분기까지 논의하도록 권고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창의·융합 역량 중심의 평가 체계와 대입 전형 연계 방안은 내년 4분기까지 국교위에서 심의·의결하도록 했다.
AI 교육을 기술 중심으로만 접근하면서 사실관계가 부정확하게 담겼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정현선 경인교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인공지능 계획 27쪽의 ‘초등학교의 경우, 5~6학년 실과 과목에만 정보·AI 교육이 일부 포함돼 있다’는 서술을 문제삼았다.
정 교수는 “초등 3~4학년 국어과와 도덕과에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자료 조사와 발표 자료 만들기, 매체 이용 성찰, 디지털 정보 사회의 문제점 탐구 등이 포함돼 있다”며 “기술 교육으로 AI 교육을 축소하는 관점을 바탕으로 계획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통제, 금지 중심의 윤리교육이 아닌 “능동적이고 비판적 참여와 성찰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AI 교육이 사교육·에듀테크 업계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인공지능 계획에는 민간 에듀테크 기업 참여 체계를 내년 4분기까지 설계하고, 올해 4분기까지 AI 보조교사 서비스 개발에 민간 기업이 참여하는 산업 협력 모델을 마련해 내년 1분기부터 상용화·조달 연계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재인 교수는 “AI 핵심 인재를 육성한다면서 사교육 업체에 의탁하는 형태가 재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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